일본의 오늘을 만든 메이지 시대

[최재천의 책갈피] <메이지의 도쿄>

일본 관련 책을 부쩍 찾게 된다. 일본 이해 부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메이지 시기의 고관부인 중에 화류계 출신 여성이 많았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부인 우메코는 본디 시모노세키의 게이샤였다."

인력거는 메이지 시대의 산물이다. "메이지 30년대에는 도쿄에만 4만5000대, 전국적으로는 20만대 이상 되었다. 게다가 ‘리키샤(인력거)’라고 불리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까지 수출되었다."

베이스볼을 '야구(野球)'라고 쓰기 시작한 것도, '연설'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때다. "스피치를 번역한 단어인데 처음 사용한 사람은 후쿠자와 유키치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 설(說)을 말하고 석상(席上)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법(法)이 연설이다'라고 후쿠자와는 말했다. 그때까지 일본에서는 가두설법이나 좌담은 있었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의견(說)을 말하는 일은 없었다."

서양력을 도입한 것도 바로 이때다. "메이지 5년 연말은 실로 황당하고도 묘한 일이 벌어졌다. 왜냐하면 정령에 의해 지금까지의 태음력 대신에 태양력이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12월은 겨우 이틀 만에 끝나고, 다음 날인 3일은 다시 메이지 6년 1월 1일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와 유사한 투기가 벌어진 것도 이때다. "메이지 5년경에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갑자기 토끼 사육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애완동물이라기보다 투기의 대상이 되어 눈 깜짝 할 사이에 고가가 되었고 희귀종 토끼를 사들여 비싼 가격으로 거래하는 모임도 여기 저기 열렸다. 한 마리당 월 1엔의 토끼세를 부과하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 유사한 투기성이 있는 것으로 오모토(원예 식물)가 유행했다. 교토 주변에서 시작되어 메이지 10년대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 같다."

일본의 오늘이 있게 한 <메이지의 도쿄>를 글과 그림으로 설명한 좋은 책이다. <에도의 도쿄>도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한다. 정보 차원에서 1982년 중국에서 있었던 '군자란' 투기 열풍도 적어둔다. 투기는 지린성 창춘에서 시작되어 동북삼성으로 번져 나갔고, 84년 성정부가 개입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같은 해 저장성 일대에서는 '오침송'이라는 소나무 투기 사건도 있었다(우샤오보어 <격탕> 새물결). 한국 사회가 튤립 투기만을 이야기하고 일본의 토끼·오모토 투기나 중국의 군자란·오침송 투기에 대해서는 잘 인용하지 않는 것 같아서 굳이 이 기회를 빌려 적어둔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 <메이지의 도쿄>(호즈미 가즈오 지음, 이용화 옮김) ⓒ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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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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