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를 바꾼 식물, 차

[최재천의 책갈피] 세라 로즈 <초목전쟁>

세계지도가 식물(꽃)에 따라 그려졌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 영국과 중국, 두 제국은 두 꽃을 놓고 전쟁에 돌입했다. 양귀비와 동백(차)이었다.

양귀비는 마약인 아편으로 만들어져 18~19세기 중국에서 널리 이용됐다. 아편은 '명예로운' 영국동인도회사에 의해 독점적으로 판매됐다.

동백나무는 차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나라는 차라는 '액체 보석'을 독점하는 유일한 나라였다.

"동인도회사는 200년 가까이 중국에 아편을 팔고, 그 대금으로 차를 샀다. 반대로 중국은 인도에서 온 상인들로부터 아편을 사고, 차를 팔아 얻은 은을 마약 값으로 지불했다."

영국은 100년 동안이나 차에 외교적 접근을 시도했지만, 중국은 어떠한 비밀도 나눠주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재배하며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조차 서양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심지어 차의 이름조차도 수수께끼였다. 작설(雀舌)·용정(龍井)·옥녀봉(玉女峰). 이것들은 녹차인가, 홍차인가? 녹차 나무와 홍차 나무는 같은가 다른가. 동인도회사는 욕심꾸러기 중간상인을 다루기엔 지친 지 오래였고, 화를 돋우는 중국인들과는 이익을 조금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영국은 비슷한 차 재배 기후대인 인도에서 차를 생산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 차나무의 건강한 표본과 수천 톨의 씨앗, 뛰어난 기술자들의 수백 년 묵은 지식을 훔쳐야 했다. 이 임무는 식물 채집자와 원예사, 도둑과 스파이를 겸해야 했는데, 그가 바로 로버트 포천(Robert Fortune, 1812~1880).

"나는 중국인 복장으로 여행을 했다. 머리칼을 밀고 멋진 가발을 쓴 뒤 꼬리머리를 했다. 과거의 일부 중국인들도 매우 자랑스러워했을 차림이었다. 대체로 나는 내가 훌륭한 중국인이 됐다고 생각했다."

포천은 1849년 설날 직전에야 중국 내륙에서 상하이로 돌아왔다.

"저는 씨앗과 어린 묘목을 많이 입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게 돼서 매우 기쁩니다. 무사히 인도에 도착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것들은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입수했고, 일부는 유명한 차밭에서 구한 것입니다…"

포천이 더없이 귀중한 보물을 훔쳐갔다는 사실을 중국인들이 깨달았을 무렵에는 자기네가 입은 손실을 구제하기에 이미 여러 해가 지나있었다. 시행착오를 거쳐 히말라야산맥의 차밭은 포천이 보낸 차나무의 자손을 보유하게 됐다. 그리고 세계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는 산업 스파이를 넘어 히말라야산 차의 아버지라는 역사적 명예(?)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 <초목전쟁>(세라 로즈 지음, 이재황 옮김)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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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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