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인의 연설이 재미 없는 이유는?

[최재천의 책갈피] <시진핑 주석이 연설 속에 인용한 이야기>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로 일하던 2003년 7월의 한 글이다.

"저명한 학자 왕궈웨이(王國維)는 학문 연구에 세 가지 경지(治學三境界)가 있다고 논술했다.

첫 번째는 '어젯밤 찬바람에 푸른 나뭇잎 지고/ 나 홀로 누각에 올라 천애지각(天涯地角)의 먼 길을 바라보네'이고, 두 번째는 '허리띠가 점점 헐렁해져도 후회하지 않으리니/ 임을 위해 초췌해지는 것 그게 바로 멋이어라'이며, 세 번째는 '인파 속 천만 번 그를 찾아 헤매다가/ 문득 고개 돌려보니/ 그 사람 저쪽 희미한 등불 아래 있구나'이다.

지도층 간부들은 이론을 학습함에 있어서 세 가지 경지가 있어야 한다."

시 주석은 세 가지 경지로 이론 학습의 세 가지 단계를 설명한다. "지도층 간부들이 앞장서서 학습하고, 심도 있게 학습하고, 꾸준히 학습하며, 근면하게 학습해야 만이 학습에 근면하고, 사색에 능한 본보기가 되고, 사상을 해방시키고, 시대와 더불어 발전하는 본보기가 될 수 있으며, 학습한 것을 실천하고 실천하면 성과를 이룩하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언젠가 농담처럼 중국 지방정부 지도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책은 얼마나 두꺼웠습니까?" "정말 두꺼웠죠. 이렇게 한 서너 권 쯤 됩니다"하며 손짓으로 표현했다. "왕조 이름 외우기도 어려웠죠." 따라 웃었다. 그것이 중국 역사다. 마오쩌둥 주석 이래 중국 정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학습하고, 교훈을 찾아내고, 연설과 글 등을 통해 널리 전파해왔다. 그래서 중국 지도자들의 연설문 속에는 사실(史實)이 있고, 고사성어가 있고, 비유가 춤을 춘다.

시 주석은 특별히 이 부분에 특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시 주석의 연설문이나 글에서 인용한 고사성어나 명문장, 역사적 사실 등을 다시 해설한 책들이 여럿 있다. 이번 책은 <인민일보> 평론부가 저술했다. 읽어보니 어느 책보다 훨씬 쓸 만하다.

얼마 전 번역 출간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집을 쭉 읽어본 적이 있다. 적절한 비유와 전거, 미국 특유의 유머 감각이 놀라웠다. 이미 한국에 번역 출간된 시진핑 주석의 연설문집에 유머 감각은 허전하다. 하지만 역사적 전거나 고사성어가 상징하는 동양의 지혜는 알알이 박혀있다.

우리 정치인들의 연설은 왜 그리 재미없고 상투적일까. 들을 때는 그럴 듯하지만 왜 다시 소환되지 못 하는 걸까. 간단하다. 생각이 부족해서다. 학습하지 않아서다. 근본적으로 철학과 영혼이 취약해서다. 너무 냉소적으로 표현했나보다.

▲ <시진핑 주석이 연설 속에 인용한 이야기>(인민일보 평론부 지음, 김승일 옮김) ⓒ경지출판사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