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뇌병변장애인 유진우(30) 씨는 매해 설날이 다가올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휠체어를 타는 그가 고향인 전북 군산에 가려면 KTX를 타고 익산역에서 내린 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으로 집에 가야 한다. 그런데 열차의 장애인석은 한 대당 5석에 불과하고, 장애인콜택시는 운전원이 적어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 씨가 명절마다 부모님을 뵙지 못할까 걱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유 씨가 특히 불공평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 2년 전 고속터미널역에서 차표를 살펴본 그는 서울에서 군산까지 한 번에 가는 고속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고속버스에는 휠체어석이 단 한 석도 없다. 되짚어보니 유 씨는 평생 한 번도 휠체어를 타고 고속버스를 탄 적이 없었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 자체를 박탈당해 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교통 차별로 인한 고충은 유 씨만이 일이 아니다. 그의 지인 중에는 이동이 너무 어려워 20년째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도 있다. 장애인들에게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일상이라도, 교통수단이 없어 명절날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갈 수 없는 일은 특히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유 씨는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국가, 지자체, 운수회사들을 대상으로 시외고속버스에 장애인석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라는 소송에 나선다. 이번 소송은 유 씨와 더불어 전국 8개 권역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참여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역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유 씨는 "서울에서 군산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는데 나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타지 못한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 소송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이 소송에 나설 정도로 고속버스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전국 수십 곳에 기차역이 없을뿐더러 그나마 고향과 가까운 지역에 내려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광역 이동(지역 간 이동)'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대단히 번거롭기 때문이다. 이에 견줘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서 내린 뒤 지역 내에서 장애인콜택시를 탄다면 훨씬 쾌적한 귀경길이 가능하다.
사실 우리나라도 장애인들이 고속버스를 탈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2019년 국토교통부는 휠체어 전용 승강구·승강장치, 가변형 슬라이딩 좌석, 휠체어 고정장치 등의 설비를 마련한 고속버스를 3개월가량 시범 운행한 바 있다. 당사자들의 요구와 국민권익위원회 권고 등 모두가 평등하게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서울에서 부산, 서울에서 강릉, 서울에서 전주, 서울에서 당진 등 4개 노선에서 운용되던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는 이제 전국에서 단 한 대도 찾아볼 수 없다. 코로나 시기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 버스 운행을 중단했기 때문이었다. 2022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시외버스, 고속버스 중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버스의 수를 늘릴 것"을 권고했다. 당연한 권고를 한국은 4년째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런 퇴보는 시대 역행은 물론 해외 추세를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다. 대만의 경우 노선별로 하루 3번 이상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미국은 모든 버스에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차량을 도입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했다. 이밖에도 핀란드, 일본, 캐나다 등 많은 국가에서 고속버스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마련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우리나라 사법부가 휠체어 이용자의 고속버스 탑승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재판부는 금호익스프레스가 2026년부터 2040년까지 새로 도입하는 고속버스에 휠체어 리프트를 단계적으로 설치하도록 명령했다. 다만 이 판결은 전국 70여 개 시외고속버스 회사 중 단 한 곳에만 적용되며,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금호익스프레스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유 씨를 비롯한 장애인들이 바라는 세상은 특별하지 않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할 수 있는 세상, 함께 휴게소에서 간식을 나눠 먹고 함께 버스에서 곯아떨어질 수 있는 세상, 명절날 교통수단 걱정 없이 부모님을 뵈러 갈 수 있는 세상을 바랄 뿐이다. 시민들이 바삐 귀경길 기차를 타고 가는 13일 용산역에서 유 씨는 이렇게 외쳤다.
"장애인도 버스타고 명절에 고향가자!"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즉각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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