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용역노동자 정규직 전환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공단이 외국인 상담사 전환 배제를 주장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스템으로, 같은 일을, 또 필수적인 일을 해온 노동자들을 단지 '국적'을 이유로 차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1일 건보공단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외국 국적 상담사를 강원 원주에서 만나 수행하는 업무와 공단 조치의 문제점에 대해 들었다.
F5 비자(영주권)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미란 씨는 서울의 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 강원 원주로 이사한 뒤 2024년 6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업무를 맡은 한 용역회사에 입사했다. 그의 업무는 중국어 상담이다. 베트남어, 영어, 우즈벡어 등을 구사하는 상담사 18명과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 중 외국 국적자는 4명이다.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사회에 이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늘며 역할도 커지고 있다. 미란 씨만 해도 하루 80~100콜 가량의 상담을 수행하며 한국의 건보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의 민원 해결을 돕고 있다.
업무 전문성도 강하다.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는 1000페이지가 넘는 상담책자를 숙지해야 한다. 지속적인 법률 개정에 따른 변화를 파악하는 것도 필수다.
특히 외국어 상담사에겐 복잡한 비자 제도는 물론 건강보험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업장 업무 1번', '건강보험 자격 및 보험료 납부 2번' 등 7개 분야로 창구가 나뉜 한국어 상담과 달리 외국어 상담은 분야 구분 없이 언어별로만 나뉘어 이뤄지기 때문이다.
민원 해결을 위해 건보공단 지역지사를 직접 찾는 외국인과 직원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도 이들이다. 건보공단은 지사에 외국어 상담이 가능한 인력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지사로 찾아온 외국인과의 소통을 위한 통역이 외국어 상담사에게 맡겨지는 일이 잦다.
국적 다르다고 정규진 전환에서 배제한 건보공단
건보공단은 필수적인 동시에 같은 업무를 문제 없이 수행해온 외국어 상담사 중 한국 국적자가 아닌 이들을 골라내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정규직이라고는 해도 건보공단에 입사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 용역업체 대신 소속기관을 만들어 상담사를 고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처우 개선도 용역업체가 중간에서 가져가던 돈 일부를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선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조차도 외국 국적자에게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 공단의 입장이다.
"솔직히 배신감을 느꼈어요" 미란 씨는 말끝에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사그라든 미소가 마음 속 상처를 보여주는 듯 했다. "같은 공간에서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상담사로서 단지 국적 문제로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건보공단이 외국 국적자를 콕 집어 전환에서 배제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미란 씨도 공단에서 직접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다만 정규직 전환을 다루는 노사전협의체 회의를 기록한 문서에는 '고용안정 및 정보 보안에 대한 심층 검토 후 논의'라고 적혀 있었다.
미란 씨는 공단이 회의에서 제시한 그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외국인이 민간업체에서 일할 때는 없었던 정보 보안 문제가 소속기관에서 일하면 생긴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보안이 걱정되면 서약 강화, 관리 강화 등 노력을 기울이면 될 일이지 이를 외국인 차별의 근거로 삼는 것은 행정의 직무유기이기도 하다.
외려 건보공단 소속기관이 공적으로 건보 정보를 관리하면 여러 민간업체가 이를 관리할 때보다 보안 강화가 용이할 수 있다. 이는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가 정규직 전환 필요성을 처음 주장할 때부터 해온 이야기다.
"차별을 없애야 할 국가가 앞장서서 차별을 만들고 있다"
한국은 이미 1979년 '모든 형태의 인종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을 발효한 국가다. 하지만 '국적에 따른 차별'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공공기관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미란 씨는 답답함을 표했다.
"지금 펼쳐지는 상황은 차별을 없애야 할 국가가 앞장서서 '국적으로 차별해도 된다'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노사 갈등이 아니라 공공성 문제라는 생각도 해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일을 그만둘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미란 씨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개인적으로는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 이력과 2개 언어 구사 능력을 살리면, 이직을 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란 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우선 어려움에 처한 민원인들을 도우며 느낀 일에 대한 보람이었다.
"고객들이 언어 장벽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상담이나 통역으로 해결해 드릴 때 보람을 느껴요.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한국의 제도가 낯서니까 여러 번 전화하시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럴 때 하나하나 설명하며 도움을 드리면 감사하다고 하시는 분이 많아요."
다음은 동료의 얼굴, 한국 사회 곳곳을 지탱하고 있고 앞으로 그 수가 더 많아질 다른 이주민의 얼굴이다.
"그만두는 순간 이 문제가 개인적인 걸로 축소될 거잖아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싸워보자'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야 앞으로 이주민에 대한 차별도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
국가의 평등에 대한 태도 묻는 시험대
미란 씨와 같은 외국 국적 상담사들이 바라는 것은 특별 대우가 아닌 평등이다. 공단이 이를 허물 때 무너지는 것은 당사자의 존엄만은 아닐 것이다. 외국인 건보 가입자의 삶, 공단의 행정에 대한 신뢰에도 금이 갈 수 있다. 외국인 직원에 대한 건보공단의 선택은 국가의 평등에 대한 태도를 묻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모범 사용자'를 자임한 정부는 건보공단의 외국인 전환 배제 방침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 바탕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외국인 혐오 정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란 씨도 인터뷰에 응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안 좋은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있어요. 그래도 같은 일을 하는데 '국적으로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 국적을 말하면, 그냥 '그러냐'하고 다름 없이 대해주시는 분도 많이 만났거든요. 다문화 시대가 됐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많잖아요. 그 속에서 저희도 사회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오늘 외국인이 배제된다면 내일은 또 다른 이유로 누군가 배제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다행히 외국 국적 상담사들 곁에는 뜻을 같이하는 한국인 동료들이 있다. 6년째 공전 중인 정규직 전환 논의의 종결을 위해 지난 11일 단식에 돌입하며 김금영 건보고객센터지부장은 남은 쟁점인 상담사 경력 미인정, 인센티브제 도입에 대한 반대를 말하며 "외국인 상담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배제하는 것이 정규직 전환이 맞나"라고도 꼬집었다.
정규직화 논의가 또 다른 차별을 낳는 비극을 막기 위해, 국적이 다른 이들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들의 노력이 정부와 건보공단은 물론 한국사회의 값진 변화로 이어졌다고 기록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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