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를 진 원청 사업주의 범위 등을 담은 해석지침을 행정예고했다. 핵심 판단기준으로는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제시했고, 인력 운용 및 업무 배정·순서·방식에 대한 결정권을 원청이 가진 경우 등을 예로 들었다.
노동계는 노동부가 원·하청 교섭 문제에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 하청 노동자의 실질적 교섭권 보장이라는 법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노동부는 26일 '개정 노조법 제2조 해석지침(안)'을 발표하고, 다음 달 15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 노조법 2조의 핵심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지만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 결정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단체교섭에 응해야 할 사용자로 본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에 해당하는 사용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제시했다. 이어 "원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구조적으로 제약해 하청 사용자가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본질적·지속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로 이를 정의했다.
구조적 통제의 예시로는 △원청이 공정에 필요한 인력 수·자격·기능 등 인력 운용 틀을 지정·변경할 권한을 가진 경우 △원청의 생산공정 방식·교대운영과 하청의 교대제·근무시간이 상시적으로 연동된 경우 △원청이 세밀한 작업지시서·관리시스템 등으로 업무 배정·순서·방식 등을 결정하는 경우를 들었다.
그러면서 "구조적 통제는 원·하청 업무가 밀접하게 연계됐거나 작업공정이 상호의존적인 경우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수급인이 독립 설비를 갖추고 완제품·부품을 생산해 납품하는 통상적 물량도급 관계에서는 나타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며 "도급계약 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조적 통제가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부연했다.
노동부는 또 "조직적 사업 편입 및 경제적 종속성"을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의 보완지표로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원청과의 계약 없이 하청의 사업이 독립적으로 영위될 수 없다면, 원청의 지배력이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분야별 교섭의무·확대된 노동쟁의 대상 판단 기준도 제시
노동조건 전반이 아닌 특정 분야에 한해 원청이 교섭 의무를 지는지 판단하는 데 쓰일 지표도 제시했다. 제시된 지표에 따라 노동위원회가 교섭 필요성을 인정하면, 원청 사업주와 하청 노조는 해당 분야에 한해 교섭을 해야 한다.
노동안전 분야에서는 원청이 작업장, 설비, 안전예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경우 교섭 의무가 인정된다. 예컨대, 원하청 노동자가 한 공간에서 일하고, 원청이 해당 작업에 쓰이는 공간, 시설 등을 소유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통근버스, 휴게시설 등 복리후생에 대해서는 원청이 이에 대한 하청 노동자의 이용 가능 여부를 정하거나, 이용 기준 결정에 영향력을 가진 경우 교섭 의무도 지게 된다.
임금·수당에 대해서는 원청이 노동자 수, 노동시간 등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정하고, 임금 인상률·수당 기준 등을 제시하는 데 이르러야 교섭 의무가 인정된다. 반면 업무수행에 필요한 잠정 인원을 기준으로 도급 총액을 정하고, 개별 임금은 하청 사용자가 정하게 했다면 교섭 의무를 지지 않는다.
확대된 노동쟁의 대상에 대한 해석도 제시했다. 합병, 분할, 양도, 매각 등 사업상 결정은 정리해고·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
또 사용자가 단체협약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이행하지 않거나, 노동위원회의 노동쟁의 조정, 지방고용노동관서의 노사 교섭지도 등에서 단협 위반이 확인된 경우 노조는 이의 시정을 요구하며 쟁의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노동계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하청 교섭권 무력화될 것"
노동계는 노동부가 원청 사용자의 교섭 의무 판단에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 법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성명에서 원청의 교섭 의무에 대한 "노동부 해석지침은 불법파견 인정보다 더 엄격한 요건을 충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간접고용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화할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성명에서 이번 해석지침은 "원청이 하청에 대해 업무내용·작업방식·인력운용 등에 걸쳐 상당한 수준의 지휘 감독을 하는 경우에 한해 사용자성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며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확립하고 노사 간 대화와 교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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