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은 교섭권 보장 방안이 아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노동자에게 더 많은 교섭이 필요한 이유

2026년 3월 10일, 개정된 노동조합법(노조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노동자와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도 실질적 사용주라면 교섭에 응하도록 법을 개정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행 3개월도 남지 않은 지금 개정된 노조법이 실제 노동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말, 노동부가 내놓은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 때문이다.

노동부는 시행령 개정안을 노-사 간 교섭이 안정적이면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교섭 틀을 만들어가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노동부의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이 방안이라며 폐기를 주장한다. 노동자에게 교섭할 권리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20년이 넘도록 포기하지 않고 외치는 것일까?

교섭할 권리가 제한된 일터의 풍경

1987년 이전까지 노동자에게 근로조건이나 근무환경 같은 일터 전반의 조건은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가까웠다.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노동조합이 증가했고, 노동자의 교섭할 권리 역시 함께 확대되었다. 더는 일터의 조건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노-사 간 협상을 통해 결정해나가는 합의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년 만인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심화로 교섭할 권리의 실현 경로는 크게 위축되었다. 몸집 불리기 경영으로 위기를 맞이한 기업들이 수많은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직접고용이 아닌 하청업체를 거느리는 방식으로 고용구조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교섭할 권리를 뒷받침하는 노조법은 근로계약 관계를 맺은 경우에만 교섭의 의무를 부과하였기에 하청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 대기업과 교섭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교섭할 권리가 실현되지 않으면서 일터의 풍경 전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연속된 공정의 업무를 소위 핵심과 비핵심 업무로 구분하여 위험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비핵심 업무를 중심으로 하청업체에 외주화시키는 방식이 자본의 방침으로 자리 잡아갔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울 땐 가장 먼저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지만, 일터의 위험을 감지하고 대책이 필요하다는 하청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어줄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로 치부했다. 교섭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위장폐업을 했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면 원청은 발뺌하며 노동위원회를 거쳐 소송으로 들어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5년, 10년씩 시간을 끌며 노동자가 교섭을 포기하도록 유도했다. 하청 노동자가 파업을 감행해도 불법파업 딱지와 함께 손해배상 청구서를 받는 상황이 펼쳐졌다.

공공부문 역시 마찬가지다. 2018년 대통령과 만나 불법파견과 직접고용 문제를 "이야기하자"고 요구했던 서부발전 하청 노동자 김용균은 혼자 야간작업을 하다 사망했다. 그리고 바로 그 현장에서 2025년 또 다시 하청 노동자 김충현의 죽음이 또다시 반복되었다.

2022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시점부터 2024년까지 중대산업재해 전체 사망자 943명 중 602명이 하청 노동자로 집계되었다. 일터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대화와 협상의 권리가 없는 하청 노동자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일도, 위험에 대처할 역량을 기르는 일도 어려운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제도가 권리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하청 노동자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교섭할 권리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온몸으로 겪고 있던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모여서 만든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2022년 “이대로 살 순 없다”고 외치며 원청인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에 교섭을 요구했다. 이들은 삭감된 임금을 원상복구하고, 산재 사고조사 과정에 하청 노동자의 참여,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를 쇠창살에 가두면서까지 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든 이를 사들인 한화오션이든 원청 대기업은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에 응답하기는커녕 470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을 하청노동자에게 청구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은 다시 고공에 오르며 끝까지 진짜 사장과 대화 창구를 열고자 목소리를 높였고, 2025년 7월 한화오션이 성과급, 노동안전 등에 대해 하청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는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그리고 지난 10월 한화오션과의 협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청구한 손배를 취하하는 합의를 우선적으로 얻어냈다.

물론 이 합의만으로 한화오션이 다른 교섭에 성실하게 나서는 것도 아니고, 원청이 교섭의 테이블에 앉는다 하더라도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교섭의 자리를 하청 노동자 스스로 열어내며 최소한 일터의 문제를 하청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해온 것의 부당함을 드러낸 것이다. 더불어 노동자와 교섭을 통해 일터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책임이 원청에 있다는 원칙 역시 사회적으로 확인시켰다.

하청 노동자만이 아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와 같이 애초 근로계약 자체를 맺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교섭의 자리를 만들어 왔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택배 물량의 증가는 택배 노동자를 과로로 내몰았고, 한 해에만 16명이 과로사했다. 하지만 특수고용직인 택배 노동자들이 대책을 요구해도 택배 회사는 고용관계가 아니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택배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사고책임 조정, 택배 수수료 인상 등 실질적인 과로사 대책을 요구하며 노-사-정이 함께하는 '택배노동자 과로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라는 교섭 자리를 열어냈다. 그리고 2021년 두 차례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며, 분류 작업, 소위 '까대기'는 택배 노동자가 아니라 회사의 몫임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지금은 쿠팡까지 포함될 수 있는 심야노동 규제를 쟁점으로 세 번째 사회적 합의를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인 배달 라이더들도 교섭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왔다. 라이더에게 플랫폼 개발사, 운영사, 배달 대리점, 음식점 등 누구도 실질적인 사장이 아니라 말하기에 교섭 대상 자체를 지목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배달 노동자는 플랫폼 운영사와 배달 대리점 모두를 대상으로 협상의 테이블을 열며 이익을 얻고 있다면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내고 있다. 개발사와도 협상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아무리 회사가 기존의 고용관계를 비틀어 일은 시키며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도 노동자들은 모여서 말하고, 투쟁하며 스스로 일터의 조건을 바꿔왔다. 실질적인 교섭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일터가 어떤 현실을 마주하는지 고발하고, 그 현실을 만든 진짜 사장의 책임을 확인시켰다. 노동자가 모여서 말하면 어떻게 일터를 바꿔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노조법 개정은 바로 이 노동자들이 만들어온 교섭 위에서 가능했다. 기존 노조법의 한계 속에서 교섭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극한의 투쟁을 했던 이 지난한 과정은 자본의 책임 회피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이를 더는 반복하지 않고 노동자가 정당하게 교섭할 권리를 실현하며 일터를 바꿔내야 한다는 사회적 지지를 만들며 노조법 개정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교섭할 권리 보장, 노조법 시행령부터 폐기하라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들이 확인시킨 교섭할 권리의 사회적 필요성을 모른 척하고 싶은 모양이다. 노동부의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은 어떻게 하면 협상의 테이블에 앉기까지 더 복잡하게 만들지, 그리고 최대한 그 협상에 앉을 수 있는 당사자를 줄일지만을 궁리한 내용이 담겨있다.

먼저, 하청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교섭하기 위해서는 원-하청 간의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삼고, 다시 교섭단위를 분리시키는 방식이다. 여기에 교섭에 참여할 수 있는 하는 하청 노동조합을 정하는 것까지 국가가 대신 정해주겠다는 식이다.

이는 노동자의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는 과정이 될 수 없다. 지금껏 자본은 돈 되는 사업만 남기고 위험하고 이윤이 적은 사업을 수없이 외주화하며 교섭은 회피하고 이윤만 얻어왔다. 그런데 이 외주화가 노조법 개정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이들이 쪼개놓은 만큼 교섭할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외주화의 마땅한 책임을 확인시키지 않고 되려 자본과 공기업들의 교섭할 책임을 줄여주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나아가 하청 노조 중에 어떤 노동조합이 교섭장에 들어갈 수 있는지까지 기준을 마련해 국가가 정해주겠다고 하니 자본은 어용노조 설립과 같은 꼼수를 활용할 여지까지 확보한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더 많이 모이는 방향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또 노동부가 교섭단위 분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식은 그간 하청노조가 반복해온 지난한 법정 투쟁을 다시 이어가야 할 우려를 낳는 방식이다. 교섭단위 분리는 기존 법원의 판례에서 예외적으로만 허용되던 방식이다. 노동부가 가이드를 만들어 누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지 판단해준다 한들 사측이 거부하고 이를 명분 삼아 다시 법원 판단을 받겠다고 재판에 돌입하는 과정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전히 원청 대기업들이 교섭에 응하지 않기 위해 펼쳐온 꼼수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모로 봐도 정부의 시행령은 노동자의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사측이 또다시 교섭을 회피할 명분만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노동자가 협상장에 들어가기 위해 피땀 흘려가며 오랜 시간 돌고 돌아야 했던 것을 멈추기 위해 노조법을 개정했더니, 정부가 시행령으로 다시 한번 길을 헤매도록 만들고 있다.

교섭할 권리의 제대로 된 실현이 노동권을 확장한다

교섭할 권리는 그저 사용자와 협상하며 개별적인 노동조건만 개선해 내는 단독적인 권리일 수 없다. 노동자의 교섭할 권리는 모든 노동권과 연결된 권리다.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를 모아가는 첫 단계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없이 의미 있는 교섭은 불가능하고, 교섭할 권리 없이 내가 일한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요구하며 작업장 내 위험을 예방하는 대책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나아가 일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의 의견을 모아내고, 그 모아낸 의견으로 노-사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간 가로막혀온 노동자의 교섭할 권리의 실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키우고 일터를 바꾸어내는 힘으로 노조법 개정이 작동할 것이란 기대를 가져온 이유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 스스로도 광장의 민주주의에서 출발한 정부인만큼 일터 민주주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하며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조법 개정의 의의를 설명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섭할 권리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드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부터 폐기해야 한다. 정부 시행령 개정안의 원-하청 간의 교섭창구 단일화 적용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에 앞서, 애초에 단일 기업 내라 할지라도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제도는 노동자의 의견을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악법이었다. 이 악법을 들고 나와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시행령을 예고하니 벌써부터 중앙노동위원회는 움직이지 않을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한화오션이나 현대제철과 같이 하청노조와 교섭하라는 법원 판단을 이미 받은 대기업들이 교섭에 나서도록 움직여야 할 중앙노동위원회가 정부 시행령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눈치부터 살피는 것이다.

노동부가 교섭할 권리를 보장할 마음이 있다면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현장부터 살펴야 한다. 한국GM에서는 노조법 시행 직전인 지금도 하청 사업장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120명 모두를 해고하는 일을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고 일터의 풍경을 새롭게 만들어보자고 개정한 노조법이다. 정부는 그 취지를 거스르는 시행령 개정안은 철회하고 그간 외면해온 노동자의 교섭할 권리를 더욱 촉진할 방안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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