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먹었다고 벌금형? 검찰·법원 속살 드러낸 '초코파이 절도 사건'

법정으로 간 초코파이, 검찰·법원의 약자 보는 태도 시험대 되다

약자에게만 가혹한 사법체계의 속살이 가끔 극적으로 드러나는 때가 있다. 오석준 전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그가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에 대한 해고가 정당했다고 판결한 일이 알려진 일이 대표 사례였다. 요금 중 잔돈을 버스기사가 가져온 관행이 있었다는 항변은 차갑게 기각됐다.

여기에 오 전 후보자가 변호사에게 85만 원 향응을 제공받은 검사의 면직에 대해서는 "사회통념상 가혹하다"며 취소 판결을 내린 사실이 같이 알려지며 법원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뭇매를 맞았다. 그 결과 오 전 후보자는 끝내 대법관에서 낙마했다.

시민들의 질타에도 '버스기사 800원 횡령' 사건을 기소한 검찰과 유죄 판결을 내린 법원이 약자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 같지는 않다. 피해금 1050원이 걸린, 이른바 '초코파이 절도 사건'으로 불리는 일의 1심 판결 결과를 보면 말이다.

냉장고에서 과자 꺼내 먹었다고 기소한 검찰, 유죄 판결한 법원

사건의 출발은 사소했다. 지난해 1월 18일 오전 4시 6분경 전북의 한 물류회사 협력업체 보안직원 A씨가 허기를 달래려 원청회사 사무실에서 450원짜리 초코파이와 600원까지 커스터드 하나를 꺼내 먹었다.

CCTV로 이를 확인한 물류회사 소장 B씨가 A씨를 경찰에 절도죄로 신고했다. B씨는 이후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으며 도난품의 회수나 변상이 아닌 A씨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에게 절도죄를 적용해 사건을 전주지검에 넘겼다. 검찰은 절도액이 적은 점 등을 고려했다며 벌금 50만 원에 A씨를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A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혐의를 인정하면, 해고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였다.

1심 재판에서 A씨는 '평소 물류회사에 있는 화물차 기사들이 냉장고에 간식이 있으니 먹어 된다고 했다'며 자신의 행위는 관행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주지법 형사6단독 김현지 판사는 A씨의 행위에 절도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벌금 5만 원을 선고했다.

해고 우려가 현실화할 수도 있는 상황. 물러설 곳 없던 A씨는 항소에 나섰다. 지난 18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는 사건을 담당한 판사마저 "각박한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며 당혹스러움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법원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오명 벗을 수 있을까

이 즈음 사건이 언론이 보도되며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서는 당장 "초코파이 하나 먹었다고 재판까지 가야 하나", "대한민국 인심 살벌하다" 등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도 페이스북에서 "기소유예로 종결하면 됐을 사안"이었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이전까지 자신도 찍힐까 두려워 나서지 못했던 동료들도 A씨에게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항소심에서는 A씨와 함께 일한 수십 명이 작성한 '나도 초코파이 먹었다'는 내용의 탄원서가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불편했다면 구두경고나 협의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사소한 일이 법정까지 가게 된 것은 A씨가 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에 의해 제기됐다. 냉장고가 있던 사무실 CCTV에 찍힌 협력업체 보안직원이 A씨만이 아닌데, 그에게만 소송이 제기됐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뒤늦게나마 검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건을 담당한 전주지검은 지난 30일 "초코파이 절도 사건에 대한 시민위원회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민위 결정에 구속력은 없지만, 검찰은 통상 권고를 받아들여 왔다.

이런 가운데, 이 사건의 다음 공판은 오는 30일로 예정돼있다. 이번 일이 검찰과 법원이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오명을 벗는 출발점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피해금 1050원이 걸린 사건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지난달 30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금 1050원의 '초코파이 절도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