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자리 없애진 않아…되레 늘어난 새벽·로켓배송,규제할수 있나"

[이재명 정부, 어디로 가나 ③]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 비상계엄, 그리고 대통령 탄핵으로 초래된 조기 대선으로 이렇다 할 준비없이 출범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고 주어진 업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발했지만 추경 편성, 민생회복지원금, 미국과 관세 협상, 정부조직 개편 등 굵직한 사안들을 처리했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대체로 무난하다. 지난 9월 19일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60%였다. 이는 대선 때보다도 높은 지지율이고 비슷한 시기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 중에는 세 번째로 높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재명 대통령의 "퇴임하는 마지막 그 순간 국민의 평가, 즉 마지막의 지지율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처럼 아직 임기는 4년하고도 8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은 12·3 비상계엄으로 제기능을 못했던 국가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시간이었다고 한다면 남은 기간은 국민이 체감할 만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프레시안>은 창간기념으로 이재명 정부가 어디에 주목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좀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노동, AI, 재생에너지, 여성, 저출산, 부동산 등 6개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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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초반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산업재해 대응이었다. 중대재해 근절 국무회의 공개, 산재사망 발생 기업 질타, 산재사망 대통령 직보 지시 등 조치가 이어졌다. 지난 15일에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범정부 차원의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산재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에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다른 분야의 노동정책은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다가올 AI 시대, 저출생·고령화 시대의 일자리 격변에 대한 대응 방안이 대표적 예다.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의 저자인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을 만나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물었다.

이 국장은 과거 기술변화 때와 마찬가지로 AI 시대에도 일자리의 총량 감소보다는 질적 변화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AI 산업정책을 짤 때부터 기술 변화로 일자리를 잃을 사람들의 이직을 지원하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방안을 세우는 것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 이 국장의 조언이다.

이 국장은 또 한국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는 사회적 서비스라며, 해당 분야의 일자리를 전문적이고 매력적인 직업으로 만들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이밖에 그는 △종합적 이주노동 정책 수립을 위한 이민청 설립 △최저임금 논의를 '을 대 을의 싸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본질적 제도 개편 등을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노동 분야 과제로 언급했다.

다음은 지난 9일 온라인으로 한 이 국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연합뉴스

프레시안 : AI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도 큰 틀에서 보면, AI를 다음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 다만 AI가 일자리를 뺏을 거라는 우려가 있다. 일부 직종은 벌써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더 광범위하게 일어날까?

이상헌 : 어려운 질문이다. 줄어드는 것이 일자리의 총량이 아닐 거라고 답하긴 하지만, 사실 아무도 모른다.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10년 이상 됐지만, 아직 초기 단계 같다. 다만 일자리의 총량만 놓고 보면, AI가 지금까지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은 별로 없다.

'무슨 소리냐? 우리 주위에 일자리가 많이 없어졌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일부 영역에서 일자리가 없어진 건 맞다. 다만 새로 생긴 일자리도 있다. AI 관련 기술자(engineer) 일자리는 굉장히 많이 늘었고, 간접적으로 늘어난 일자리도 좀 있다.

또 AI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면이 있지만, 업무능력을 증강하는 면(augmetation)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강한가에 대한 분석이 다 다른데, ILO가 가진 틀(frame)로 분석하면 현재까지는 대체 효과보다 증강 효과가 6배 정도 크다.

프레시안 :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도 큰 기술변화가 있을 때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이상헌 :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고 난리가 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언론이든 연구든 큰 주목을 받는다. 다만 실제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기술 때문에 일자리 총량이 줄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1980년대 후반에도 퍼스널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노동의 종말이 온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사무직이 다 없어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일자리는 늘었다. 컴퓨터를 만드는 데 많은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0여 년 전에도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던 디지털 혁명으로 실업률이 10%포인트 이상 오를 거라고 했다. 지금 결과를 보면, 일자리 총량에 별로 변화가 없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만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을 너무 강조해서 선정적으로 문제를 다루면, 논의가 뒤죽박죽이 되면서 정작 필요한 정책을 논의하기는 어려워진다.

프레시안 : AI 시대의 일자리 문제를 생각할 때 정말 중요하게 봐야 할 건 무엇인가?

이상헌 : 총량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일자리가 파괴되고 생겨나는 과정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일자리가 파괴되고 있는 직종을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예를 들어 초급 직무(entry level job)가 많이 없어졌다. 처음 기업에 진입할 때 하게 되는 직무가 특히 사무직에 많다. 그런 직무는 벌써 AI가 할 수 있게 됐다. 노동자, 특히 청년 입장에서 보면, 그냥 일자리가 없어진 게 아니다. 경험, 숙련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거다. 그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없고 경력(career)을 쌓을 수도 없다.

역으로 기업은 초급 직무할 사람을 안 뽑고, 그 위 수준의 직무를 할 사람부터 경력직으로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줄었다. 아무도 그런 사람을 키우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사무직 초급 직무처럼 없어진 일자리는 중간 정도 질을 가진 일자리가 많다. 새로 생긴 일자리가 그만큼의 질을 갖고 있냐면 아닌 것 같다. 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면서 이미 일자리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일자리의 양보다도 이런 걸 걱정해야 한다.

우리는 왜 플랫폼 기술 대응에 실패했을까

프레시안 : 결국 AI가 일자리의 질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 같다. 대응방안을 묻기 전에 먼저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이상헌 :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나는 단순하게 생각한다. 첫째, 살려고 일하는 거니까 '산업안전'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둘째,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거니까 그럴 수 있을 만큼은 받아야 한다. '소득안정성'이다.

여기부터는 결이 좀 다르다. 셋째, 우리는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사회에 기여한다. 다만 하는 일이 다를 뿐이다.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차별당하거나 모욕당하거나 불공정한 상황에 처하면 안 된다. '존중'이다.

넷째, 일터에서는 순간순간 다양한 일이 일어난다. 앞의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 생길 때 문제제기하고 수정할 수 있는 힘을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소리'의 문제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를 낸다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프레시안 : 듣고 보니, 가장 최근의 기술변화인 플랫폼과 관련해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긴 것 같진 않다.

이상헌 : 플랫폼과 관련해 가장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진 직종 하나가 창고, 배달업이다. 여기를 보면, 사건사고가 많고 돌아가시는 분도 많다. 좋은 일자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자리가 후퇴한 면이 있다.

우리가 해야 했을 일을 안 하고 손 놓고 있다 보니 이런 노동 문제를 자초했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관심을 갖고 정책적인 준비를 하려는 노력이 좀 없었다.

프레시안 : 한국 아닌 다른 나라의 상황도 비슷한가?

이상헌 : 플랫폼 등장 이후 일자리의 질이 나빠진 게 국제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한국은 정도가 좀 심하다. 먼저 속도를 높이는 시스템이 노동강도 강화와 결합해 굉장히 강하게 도입됐다. 새벽배송, 로켓배송이 대표적이다. 또 한국의 플랫폼이 굉장히 독과점적이다보니 일자리의 질이 더 나빠지는 면도 있다. 산업안전도 확실히 한국이 떨어진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라이더가 속도에 쫓겨 죽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은 다반사다.

프레시안 : 왜 그렇게 됐을까?

이상헌 : 한국의 디지털 시스템이 잘 돼있는 면도 있지만, 결국 배달은 사람이 하는 거다. 알고리즘으로 계산해 요구하는 짧은 시간 안에 배달이 이뤄져야 하는데, 유럽에서는 그렇게 일 시키기 어렵다.

소비자 이해관계가 결합돼 어려움이 커진 면도 있다. 기업과 노동자 간 문제라면 협상이나 논쟁을 할 여지가 좀 더 있다. 그런데 속도 이야기가 나오면, 기업이 소비자 혜택, 편익 이런 걸 집어 넣어놓고 쏙 빠진다. 그러니까 플랫폼 노동자가 기업과 협상하기가 참 힘들다.

설령 더 좋은 노동관행을 가진 제품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소비자가 있더라도 한국의 플랫폼이 너무 독점적이다. 플랫폼을 벗어나서 소비행위를 하기가 쉽지 않다. 배달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을 벗어나서 일하기 쉽지 않다.

프레시안 : 기술변화 앞에 일자리의 질 혹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결과 플랫폼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빠졌다는 이야기 같다.

이상헌 : 나는 한국이 어디로 갈지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로켓배송을 규제할 수 있나'라고 생각한다. 이걸 해내면 새로운 모델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걸 못하면, 뭔가 거대한 시장구조의 변화가 없는 한 그런 힘은 없다고 봐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소비자도, 정부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노동자도 로켓배송을 규제하면 수입이 줄어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노동자가 당장 원하는 걸 못하게 막는 것도 정책의 역할이다. 특히 안전이나 노동시간 문제는 기업도 그렇지만 노동자도 근시안적일 수 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근시안적인 행동을 막는 규제와 정책, 법이 필요하다.

▲2025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 행진에 참가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을 비롯한 배달 노동자들이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산재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약식 추모 집회를 마친 뒤 용산 대통령실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AI 시대, 좋은 일자리를 늘리려면?

프레시안 : 이제 다가올 AI 시대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어떤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까?

이상헌 : 일자리의 양에 대한 고민보다도, 어떤 일자리가 없어지고 어떤 일자리가 생기는지에 대처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일자리가 없어진 곳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긴 곳으로 기업과 노동자를 잘 이동시켜야 한다. 이걸 잘 하는 나라가 산업화, 선진화에 성공했고, 노동시장이 강화됐다. 못하는 나라는 뒤로 쳐졌다.

선도적인 사회적 투자가 굉장히 많이 필요한 일이다. 사실 모든 기술변화는 산업정책에 기초해 일어난다. 새로운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가 만들어질 때는 엄청난 규모의 공공투자가 들어간다. 그에 따라 새로운 산업이 육성되기도 하고, 뒤처진 사업이 앞으로 나오기도 한다.

프레시안 : AI에 투자하겠다는 말은 정부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상헌 : 한국은 산업정책을 펼 때 자본 중심 투자를 너무 많이 한다. 사람에도 투자해야 한다. 'AI를 키우면 경제성장이 된다' 이렇게만 볼 게 아니다. AI를 키우면, 사람들이 먹고 살만한 일자리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는지, 그 일자리를 더 많이, 더 좋게 만들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야 하고, 이게 산업정책, 공공투자의 핵심적인 일부분이 돼야 한다.

한국은 이걸 잘 못 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를 고민할 때도 숫자를 아무렇게나 계산한다. 1000만 개 하는 식으로 대충 만든다. 그러지 말고 정부가 투자정책을 세울 때 일자리 문제를 중심에 놓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면, 내 경험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프레시안 : 사회적 투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 새로 생긴 좋은 일자리로 가지 못한 건 결국 개인의 준비가 부족해서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상헌 : 특히 한국이 그런 것 같다. 사람을 한 일자리에서 다른 일자리로 이동시키는 문제를 이야기하면, 개인적 책무로 생각한다. '네가 학원에 다니면서 새로운 걸 배워야지', '10년 후에 어떤 일자리가 생길지 잘 예상해야지'하는 식이다. 너무 가혹하다.

직장을 옮기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다음 직장에 다닐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갖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직장을 때려치우면, 먹고 살 돈이 없다. 이직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정책적, 사회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개인이 순조롭게 좋은 직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험이 됐든, 노동 정책이 됐든, 훈련 정책이 됐든,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자리 이동을 지원해야 한다. 그걸 안 하면 사회적으로 숙련 인력이 부족해지는 현상도 생긴다. 기업과 정부가 숙련에 투자를 안 하는데, 어떻게 숙련 노동자가 있을 수 있나. 기업이나 정부나 숙련 인력이 없다고 난리인데 정작 본인들이 해야 할 투자는 안 한다.

프레시안 :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변동과 관련해 또 해야 할 일에는 무엇이 있나?

이상헌 : 노동법도 바꿔야 한다. 지금 노동법도 충분히 포괄적이어서 조금만 손 보면 배달노동자 등을 다 포괄할 수 있다는 분들도 있다.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실제로는 정치도, 사회도 노동법을 좁은 범위에만 적용되는 걸로 생각한다.

이걸 넘어서려면, 모든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법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기업이나 시장은 굉장히 혁신적이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도 뭔가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 낸다. 뭐 하나 막으려고 규제하면 그걸 뛰어넘는 걸 또 만든다. 움직이는 타겟을 쫓지 말고 포괄적인 틀을 만들어서 '어떤 형태의 일을 하든 최소한 이 정도는 보장한다'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 AI만 돌파구가 아니다"

프레시안 : 모든 일자리 변동이 기술변화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술변화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볼 때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상헌 : 한국이 기술변화에 대해 너무 큰 흥분 상태인데, 사실 지금 한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늘릴 가능성이 제일 큰 분야는 사회적 서비스다. 사람이 서로 돌보고 지지하고 지탱하는 서비스와 관련된 일자리가 몇백만 개 이상 만들어질 거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거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공공이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해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질도 높여야 한다. 한국 공공부문 고용 비율이 전체 고용의 10% 정도인데, OECD 평균은 20%를 넘고, 북유럽은 30% 가까이 된다. 이 차이가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투자에서 비롯된다.

프레시안 : 일자리의 양이 아닌 질 관점에서도 사회적 서비스에 좋은 가능성이 있나?

이상헌 : 돌봄은 한두 번 쓰고 말 서비스가 아니다.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쓸 이유가 없다. 그러면 20, 30년 일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 한국은 그렇게 안 하고 돌봄 분야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사회적 편익 관점에서는 오히려 손해다. 사람을 쓰고 자르고 하면 일자리의 질이 낮아질 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받는 서비스도 나빠진다.

산업정책적 관점을 갖고 사회적 서비스 분야에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돌봄을 맨손 노동으로 두면 안 되고, 다양한 기술과 자본을 동원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노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실제 유럽에서는 사회적 서비스가 전문직이라 젊은 사람들이 공공부문에 취업할 때 이 직업을 택한다.

프레시안 : 사회적 서비스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저출생 고령화와 관련 있나?

이상헌 : 맞다. 사회적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대응 방식은 세 가지다. 첫째, '가족끼리 자격증 따서 돌보면 돈 좀 줄게' 하는 식으로 알아서 하라고 놔두는 거다. 둘째, 돌봄을 전문직으로 만드는 거다.

셋째, 이주노동자를 쓰는 거다. 첫째 방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실 둘째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이 방법밖에 없다. 이주노동자가 사회적 서비스에서 주류가 되는 순간 둘째 방식은 쓸 수 없게 된다. 경로의존성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급속하게 늘어날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의 질이 나빠지면, 부작용이 클 것 같다.

이상헌 : 사회적 서비스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건 청년 고용 문제기도 하다. 지금 '그냥 쉬었음' 청년이 많다. 이 문제의 해법으로 사회적 서비스에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청년들이 쉬는 이유가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 아닌가.

새로 생긴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로 채우면서 일자리의 질을 계속 낮추기만 하면 청년 실업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바로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끊임없이 임금 인하 압력에 시달릴 거다. 그러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 2024년 8월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주노동 문제, 준비 너무 안 돼 있다…이민청부터 만들어야"

프레시안 : 안 그래도 이주노동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한국 노동시장이 정규직, 비정규직에 더해 이주노동자까지 삼중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상헌 : 한국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나 대책이 정말 없다. 아직도 논의 수준이 '미등록이냐 등록이냐' 이 정도다. 지속적인 노동력 부족 현상에 구조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땜빵식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

이주노동자는 하루 이틀 있다 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일터든 공동체에서든 계속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각도에서 총괄적으로 고민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조금이라도 조정된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다.

많이 늦었지만 이민청부터 만들어야 한다. 법무부가 불법이니 합법이니 하는 관점에서 이주노동자를 다룰 게 아니라 국무총리 산하에 모든 부처, 모든 영역을 총괄해 대응하는 부서를 만들어 체계적 대응방안을 고민하면 좋겠다.

프레시안 : 한국사회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감축을 말하는 기사에는 좋은 댓글이 많았는데, 이주노동자 실태조사를 지시했다는 기사에는 반응이 반대였다.

이상헌 : 대통령이 애를 쓰긴 하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체계적인 기반이 없다. 그래서 좋은 정치적 제스처가 정책이나 제도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다.

이주노동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하면, 갈등이 굉장히 심해질 거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발이 일자리를 차지한다는 데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이주노동자가 들어오면,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업종의 임금이 낮아진다. 최저임금 올리기도 더 힘들어질 거다. 그러면 일자리의 질이 전체적으로 하방 압력을 받는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데 역설적으로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지속되면, 청년들의 정치적인 지향도 변할 거다. 조만간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런 갈등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몇백 년 전부터 이주노동자와 같이 산 나라들도 지지리 궁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역사도 없고, 준비도 정말 안 돼 있다. 어떻게 될지 예측불허다.

최저임금, 본질적 개편 고민할 때 됐다

프레시안 : 일자리의 질을 이야기하며 최저임금 문제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나?

이상헌 : 취약계층, 이주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소득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임금의 중요성은 더해질 거다. 그런데 지금 제도로 다루기에는 최저임금 논의가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프레시안 : 왜인가?

이상헌 : 여러 이유가 있지만, 최저임금 논의가 잘 안 되는 핵심적인 이유는 최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 간 갈등이 논의의 대부분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영업자는 경영자이면서 노동자다. 자영업자가 영업을 하기 힘든 이유의 상당 부분이 피고용인에게 주는 임금뿐 아니라 시장이나 경영에서도 온다. 이걸 전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임금만 보면, '을들의 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한국에 프랜차이즈 회사가 많다. 여기도 굉장히 독과점적이다. 프랜차이즈에 속한 자영업자가 통제할 수 있는 비용은 임금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정해져 있다. 인테리어도, 물건값도 본사가 정한다. 그러니 자영업자는 최저임금만 나오면 핏대를 올리며 싸울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헌 :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게 최저임금 문제에 접근하려면, 자영업자가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프랜차이즈 수수료, 신용카드 수수료 이런 여러 비용을 건드려야 한다. 그래야 최저임금 논의도 건설적으로 갈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구성도 문제다. 노사정 3자가 들어가서 결국 공익위원 중심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이 방식도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합의가 거의 안 된다. 역사적 시효를 다했고, 이제 최저임금 제도의 본질적 개편을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난 6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 4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재해 해결이 먼저라는 판단은 맞다…비관론 피해야"

프레시안 : 정부를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해야 할 일과 관련해 이를 정리해달라.

이상헌 : 가장 먼저 산업재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금 정부의 판단은 맞는 것 같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빈도나 강도가 많이 심하다.

둘째, 공공투자, 산업정책, 재정정책을 좋은 일자리 창출과 더 긴밀하게 연계해 고민해야 한다. 너무 AI, AI만 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사회적 서비스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 가능성도 크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비슷한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주노동자는 이미 한국경제의 굉장히 중요한 축이고 큰 변수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고민하는 건 결국 취약계층 일자리를 고민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프레시안 : 쉽지 않은 과제가 참 많아 보인다.

이상헌 : 해야 할 일이 많고 뭔가가 많이 얽혀 있어서 그런데, 나는 아주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한국의 노동시장이 해방 이후에 벌써 7, 80년 됐다. 그 역사를 보면 이룬 것도 많다. 고질적인 비관론은 피했으면 좋겠고, 뭔가를 자꾸 더 좋게 만들려고 해야 한다.

이걸 다 합쳐서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하지만, 각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선수들은 다 따로 있다. 논의는 많이 됐으니까, 정치권이 그걸 잘 모아서 어떻게 해결할지 잘 고민해서 결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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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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