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행정지침 개정을 통한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기간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양대노총이 정부가 비상한 시국을 틈타 국회를 우회해 장시간 노동 근절이라는 주52시간제의 입법취지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애초 정부·여당은 반도체특별법 입법을 통한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 주52시간제 적용 제외를 꾀했지만, 야권이 막아선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12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특별연장근로는 재난,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등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 노동시간을 주52시간 이상으로 늘릴 수 있게 한 제도다.
이번에 발표된 특별연장근로 보완방안의 골자는 노동부 행정지침인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업무처리 지침'에 3개월로 규정된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1회 최대 인가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특례를 만들고, 이를 통해 기업이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할 때 3개월을 기간으로 두고 세 번 연장할 수 있는 현행 방식과 6개월을 기간으로 두고 한 번 연장 가능한 특례 방식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행정지침 개정은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등을 정부 차원의 조치만 거치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노동부는 이르면 다음 주 중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 연장 작업이 마무리되고 실제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기대 중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이날 회의에서 "반도체 산업의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핵심 인력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절실하다"며 힘을 실은 상황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이 당론 채택한 반도체특별법 중 연구개발 주52시간 예외 조항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가 난항을 겪자, 입법 논의를 회피하기 위한 우회로를 뚫어 연구개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리겠다고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전날 김문수 노동부 장관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관계와 만난 자리에서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특별연장근로 3개월은 R&D 성과가 나오기엔 짧은 기간이다. 6+6개월 정도면 기업들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가 싶다. 행정조치여서 오래 걸릴 것도 없다"며 군불을 뗐다.(☞관련기사 : "노조 없어 감동"이라던 김문수, R&D 노동시간 늘리기에 '안간힘')
민주당 정책위원장인 진성준 의원실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반도체특별법 국회 논의 상황에 대해 민주당이 주52시간 예외 조항은 안 된다고 밝힌 뒤 "진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특별연장근로 기간 확대 관련 당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노동계는 즉각 정부를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성명에서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근절해 노동자 생명을 지키고 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하기 위해 도입한 주52시간 상한제의 입법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불법 계엄으로 촉발된 어수선한 시국을 틈타 자본의 요구에 충실히 복무하는 노동부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부 산하 부서와 다를 게 무엇인가"라며 "노동부 장관도 본분을 망각한 행보를 중단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전호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은 "노동자의 건강권은 외면한 채 사용자의 편의만을 위한 행정지침 개정으로 사회적 합의 없이 노동시간 연장을 추진하려는 꼼수"라고 정부의 특별연장근로 기간 확대 시도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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