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에 윤석열이 나타나 독을 풀었다

[박세열 칼럼] 정부·여당은 선관위 개혁의 주도권을 쥐어야

110석 의석을 가진 국민의힘의 장동혁 대표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믿기 어려운 일도 발생했다. 인천광역시장 선거 송도1동과 송도2동 관내사전투표에서, 유정복 후보와 박찬대 후보의 득표수가 완전히 일치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며 "투표소 2곳에서 유정복 후보와 박찬대 후보의 득표수가 완전히 일치할 확률은 5억9000만 분의 1"이라고 말했다.

흔한 통계의 착시를 제1야당 대표가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그 지적 수준이 믿기 어렵다. 만약 단 두 개의 투표소만 존재한다면 그 두 개의 투표소에서 같은 득표율 수치가 나온다는 건 확률적으로 엄청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4460만 명이, 전국 1만4200개 투표소에서 7700명의 후보자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은 확률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경쟁하는 두 유력 정당 후보의 지지율 차이 폭은 5~10% 수준의 범주에 불과하다. 비슷한 인구수로 묶인 투표 단위에서, 비슷한 득표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부 같은 숫자가 나올 경우는 확률적으로 더 커진다.

역대 선거에서도 동일 득표수가 나온 사례들이 수십곳이다. 이를테면 사전투표가 없던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과 정동영을 찍은 득표수가 동일한 투표소가 수십곳 나왔다. 무엇보다, 왜 부정선거를 획책하기 위해 랜덤 투표소 득표 수를 정확히 의도적으로 맞추는 짓을 하겠는가. 그리고 누구를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인가. 한국판 '프리메이슨'이라도 존재한다는 건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오류가 뻔히 보이는데, 반사회 세력이 재생산하는 음모론을 제도권 정당 대표가 덥석 문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원래 발단은 서울 송파구 등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실제 투표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생겼다. 참정권 침해 이슈는 중대한 문제다. 선관위가 생긴 이래 이런 저런 부정 투표 의혹들은 끊이지 않았으나, 투표 용지가 부족해 발생한 건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선관위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윤어게인'이 발빠르게 나섰다. 서울 송파 투표소 등 수십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사태가 벌어지고, 혼란이 이어지자 '윤어게인' 세력은 이걸 '부정선거' 프레이밍을 강화할 기회로 여겼다. 송파 올림픽공원으로 향해 시위대에 스며들어 '부정선거' 구호를 섞어 넣었다.

윤어게인 세력에 대한 사회적 재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불법 내란을 획책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독재를 꿈꿨던 윤석열의 복권을 지지하는 '윤어게인'은 정치 세력으로 보기 어렵다. '정치적 우파'와 구별되는 이들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정립한다. 즉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선관위), 사법부(서부지법), 공권력(중국 경찰), 언론 등이 이들의 타깃이다.

반공 기독교 근본주의로 귀의한 윤석열은 옥중에서 이 '윤어게인 세력'들을 "믿음의 형제들"이라고 표현하며 "늘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은 성경의 이사야를 인용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억압에서 벗어나 메시아를 맞이하는 희망을 담은 내용으로 혁명이 임박해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참으로 가소롭고 뻔뻔하기 그지없다.

유권자의 권리로서 '재선거'를 요구하고 '선관위 책임'을 규탄하던 시위의 흐름에 난입한 이들은 "투표함이 바꿔치기 됐다", "모종의 세력(북한, 중국,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이재명 세력 등)이 개입해 개표 결과를 조작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유포하며 체육관에 들어가려는 국가대표 주니어 여성 핸드볼 선수들마저 '프락치'로 의심한다. 야당 대표의 모친은 갑자기 '중국인 화교'가 되었다. 투표권 침해에 분노해 거리로 나온 2030 청년들의 에너지를 '윤어게인', '부정선거론'으로 전유한다.

윤석열의 망상적 '부정선거론'은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행정적 오류를 정략적 음모론으로 확대해 선거 제도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그리고 진보, 보수 막론하고 정치에 대한 신뢰를 공격한다.

이런 류의 음모론은 보통 선거에서 패배한 지지층이 그 결과에 불복하면서 표출하는데, '윤어게인' 세력은 선거에 승리한 '오세훈 세력'(국민의힘 보수파)마저 적으로 돌리는 행태를 보인다. 승패와 상관없이 민주주의 시스템에 '독'을 풀어넣음으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선관위 개혁이나, 공정한 사후 처리가 아니다. '탄핵 불복 및 윤석열 명예회복'이라는 반사회적 목표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분노를 종속시키려 하는 데 있다. 이들의 혐오감과 피로감 유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사회 혼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하여 '윤어게인'은 정치 세력이 아니라 반사회 세력으로 분류돼야 마땅하다. 비단 투표용지 사태 뿐이 아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거나, 시스템 오류로 생긴 균열을 찾아다니며 '독약'을 푼다.

가장 큰 문제는 선관위다. 선거 사무 행정의 공백이나 시스템이 망가진 것보다 더 문제는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세력에게 빌미를 던져준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윤어게인'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 제도권 정치인들이 주도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집권 여당과 정부는 이 사태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선관위를 해체하는 수준의 개혁의 주도권을 강하게 잡아 나가야 한다.

▲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됐던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황교안 전 총리와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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