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헌법재판관들은 꼭두각시이고 실제로는 흑막 뒤의 '헌재TF'가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탄핵심판을 조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헌법재판소가 존폐를 염려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극우진영에서 확산하는 '헌재 음모론'을 여당 대표가 공식 제기한 데다, 독립된 헌법기관인 헌재의 존폐까지 논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권 위원장은 또 민주노총 전 간부의 간첩활동 혐의 수사를 명분으로, 야당을 향해 "민노총 극렬 간첩 세력에 끌려다니는 비굴한 연대"라고 맹비난하는 등 북풍(北風) 공세를 펴기도 했다. 당 안팎 조기 대선 분위기에 잦아들 것으로 전망됐던 국민의힘의 '반(反)탄핵' 정치투쟁이, 극우성향 강성지지층이 제시하는 음모론까지 인용한 채 오히려 강화된 모양새다.
권 위원장은 20일 오전 국회 비상대책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창립 37주년을 눈앞에 둔 헌재가 존폐를 염려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며 "지금 헌재를 둘러싼 논란들은 일부 편향된 재판관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재에서 진행 중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겨냥, 헌재가 "졸속적이고 불공정한 재판진행", "정치적 편향성"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권 위원장은 특히 윤 대통령 변론 과정에서 나온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TF 대본' 발언을 꼬투리 잡아 '헌재 음모론'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권 위원장은 "헌법재판관들은 꼭두각시이고 실제로는 흑막 뒤의 '헌재TF'가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탄핵심판을 조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국민적 비판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헌재가 'TF는 단순히 서기 역할을 수행한다'는 입장을 급히 내놨지만, 재판일정이나 증거채택과 같은 주요한 의사결정에서 (TF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해당 '헌재TF 음모론'에 직접적으로 힘을 실었다. "(TF를 구성하는) 헌재 재판소 연구원들 상당 수가 문재인 정권 시절 유남석 당시 헌재소장에 의해 임명됐고, 유 소장은 우리법연구회 창립멤버"라며, 여당 측이 주장해온 '우리법연구회 카르텔'론을 재차 제기하기도 했다.
권 위원장은 이에 더해 "대통령 탄핵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고 있는 한 매체에서 '대통령의 대리인들이 총 사퇴해도 대통령이 법률가 자격이 있기 때문에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는 헌재TF 발 단독보도가 나왔다"며 "TF가 재판과정에 영향력 행사하는 건 물론이고 이들이 특정매체들과 유착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권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헌재의 권위가 인정받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권 위원장은 앞서 지난 17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선 '여당이 사법기관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다'는 취지의 언론계 지적을 듣고 "헌재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발언 수위를 조절한 바 있다. 그러나 불과 사흘만에 이를 뒤집고 헌재의 권위는 물론 존폐까지 거론해가며 다시 '헌재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권 위원장이 'TF음모론'의 명분으로 제시한 문 대행 발언은 지난 13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 당시 나왔다. 당시 윤 대통령은 조태용 국정원장에 대한 직접 신문을 요구했지만, 문 대행은 재판관 전원에 의해 기 합의된 재판절차에 의해 직접 신문이 제한된다고 이를 거부했다. 문 대행은 이를 설명하면서 "자꾸 오해를 하시는데 이게 제가 (재판을) 진행하는 대본이다. 이건 제가 쓴 게 아니다. TF(태스크포스)에서 다 올라온 거고, 이 대본에 대해서 8분(의 재판관)이 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즉 8명의 재판관이 이미 재판 진행 절차 등을 논의했고, 헌법연구관들로 구성된 TF는 재판관 간의 합의대로 대본을 작성했으며, 재판관은 다시 이 대본을 참고해 재판을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권 위원장은 이 같은 맥락을 무시하고 'TF가 대본을 통해 재판을 조종한다'는 취지로 주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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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권 위원장은 북한·민주노총·민주당을 한 데 묶어 '극렬 간첩 세력 연대'라고 맹비난하는 등, 이른바 북풍 요소를 활용한 야당 때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권 위원장은 먼저 민주노총 전 간부가 간첩활동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들어 민주노총을 겨냥했다. 그는 "(민주노총 간첩단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총파업을 전개하고 반정부시위를 벌이고 심지어 선거에도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며 "대규모 반정부집회 주도해온 민노총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노동계로부터 '반노동적'이란 평가를 받는 노동개혁으로 인해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과도 이미 갈등을 빚었다. 노조활동을 과도하게 억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광양 곤봉폭행사건' 이후엔 민주노총이 아닌 한국노총이 나서서 '반 정부 투쟁'을 공식화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상황을 제쳐두고 노조의 집회를 '간첩활동의 결과물'로 몰아붙인 것이다.
권 위원장은 "몇 명의 간첩들이 우리 노동시장을 망가뜨리고 더 나아가 우리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려 하고 있다. 더 이상 이들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민주노총 간첩설'을 이어가더니, 돌연 "그럼에도 민주당은 민노총 극렬세력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하다"고 화살을 야당 측에 돌렸다.
그는 "반도체 특별법에서 주52시간 예외조항을 넣는 것조차 민주당은 민노총 뜻을 받드느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외면하고 있다"며 "이 정도면 민노총 국회지부로 민주당 간판을 바꿔야 할 정도"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윽고는 "민주당이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면 민노총 극렬 간첩세력에 끌려다니는 비굴한 연대부터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북한 간첩과 야당을 연결하기까지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석상에서 최근 선고유예 판결이 난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 1심 재판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그 또한 이 과정에서 "(강제북송 사건은) 김정은 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인권을 잔인하게 박탈한 것", "김정은·문재인의 평화쇼 실체"라고 맹비난하는 등 북한과 야당의 연결고리에 힘을 실었다.
권 원내대표는 최근 '민주당은 중도 보수' 발언을 내놓은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서도 "본인은 과거 미군을 점령군이라 부르고, 재벌해체를 운운하고, 당 주류는 과거 운동권 시절 반체제 운동을 해왔는데 이제와서 오른쪽을 운운한다"며 "모순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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