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가 힘들다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연금개혁이 말하지 않는 연금약자 ④] 초고령 사회에 살아갈 미래세대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38살 김선미 씨는 1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꼬박꼬박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왔다. 선미 씨의 부모님도 많지는 않지만, 다달이 국민연금을 받는다. 이를 떠올리면 마음 한 켠에 작은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미래의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기 어렵다.

익히 알려진 대로라면, 선미 씨가 연금을 받기 시작하고 몇 년 되지 않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 그 즈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선미 씨의 아이가 소득의 30%를 보험료로 내야 할 것이라고도 한다. 제대로 된 정책 대안 없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인구 절벽" 현상이 몇년 째 지속되고 있는 상황은 반전을 떠올리기 어렵게 만든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방안으로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 보장 의무를 지금보다 명확하게 담는 법 개정이 거론되곤 하지만, 선미 씨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그것만으로는 연금 재정에 압박을 가하는 "저출생"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답답한 현실이지만, 선미 씨는 국민연금 덕분에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제도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면 보험료를 올릴 의사도 있다고 했다. "우리만 생각하면서 살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힘들다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선미 씨의 지론이었다.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에서 한 아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60년 노인부양비 1대1 근접 전망…추정 연금 보험료 29.8%

지난해 발표된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연금추계위)의 제5차 재정추계 결과를 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0년 최대치인 1755조 원에 도달한 뒤 줄어들기 시작해 2055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현행인 9%와 40%로, 기금 투자 수익률은 연 4.5%(1988~2023년 수익률은 연 5.9%)로 가정한 결과다.

기금고갈 전망은 흔히 국민연금 불신의 소재가 되지만, 선진국 중 한국보다 큰 규모의 기금을 쌓아둔 나라는 일본과 노르웨이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의 공적 연금은 기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적립식'이 아니라 같은 세대의 생산가능인구가 낸 보험료로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운영된다. 한국 역시 언젠가는 이 길을 걷게 될 확률이 높다.

문제는 가파른 고령화 속도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OECD 국가 평균 1.49, 한국 0.78이었다. 연금추계위는 2050년까지 합계출산율이 1.21명으로 오른다는 가정 하에 국민연금 기금 고갈 5년 뒤인 2060년 노년부양비가 94.2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18~64세 생산가능인구 1명이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노인의 수가 1명에 근접하는 것이다.

여기에 2060년 평균수명이 88.8세라는 연금추계위의 가정을 덧대면, 해당연도에 소득대체율 40%로 계산된 국민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생산가능인구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29.8%로 추정된다. 현행 9%의 3배를 넘는 수치다.

9%의 보험료를 낸 세대의 연금 보장을 위해 29.8%의 보험료를 내는 상황을 미래세대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국민연금법을 두고 세대 갈등이 일지는 않을까.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미래세대는 현재의 연금개혁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또 다른 연금약자이기 때문이다.

▲ 서울의 한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신생아실. 비어있는 침대가 눈에 띈다. ⓒ연합뉴스

'들어오는 돈 늘려야'는 일치, '나가는 돈 늘려야'엔 이견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민연금에 들어오는 돈을 늘려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연금개혁공론화위원회 시민숙의단 설문에 부쳐진 소득보장안과 재정안정안에도 보험료율이 현재보다 인상된 13%, 12%로 모두 담겼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여야 의원들도 보험료율 4% 인상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공감대가 있는 데다 실제 보험료율 인상은 5~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행 과정의 거부반응도 크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문제는 나가는 돈도 늘릴 것인가다. 지난 4월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를 보면,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국민연금연구원 연구를 인용해 "(소득대체율이) 이대로 가면 2080년대에도 노인 빈곤율이 29.8%"고 "기초연금을 40만 원 올려도 25%"로 "OECD 평균보다 10~20%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고 가입기간도 늘려 국민연금으로 95~100만 원을 받고 기초연금을 더해 노후 최소생활비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이미 연금개혁을 한 OECD 국가들의 경험이 주는 교훈이 있다. 고령화 시대에 미래세대로 더 이상 부담을 넘기지 않는 것"이라며 "OECD 평균 소득대체율은 42.3%, 보험료율은 18.2%로 보험료율 수준이 소득대체율 절반에 가깝다"고 했다. 이어 "노인 빈곤층은 국민연금 소득이 없거나 연금 가입기간이 짧은 저연금자"라며 "소득대체율을 올려도 노인 빈곤은 감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증세 등으로 마련한 조세 재원을 공적연금에 투입해 들어오는 돈을 늘릴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지만, 이번에도 전장은 용처다. 세금을 쓴다면 빈곤 노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기초연금과 저기간 가입자를 위한 크레딧 지원 등에 써야 한다는 주장과 제도 신뢰 보장 등을 위해 국민연금에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해외에서 보기에는 어떨까. OECD가 지난 2022년 9월 발표한 <한국 연금제도 검토 보고서>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연금개혁 방안은 합리적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이었다. 높은 노인 빈곤 해결을 위해서는 의무가입 연령 상향을 통한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장, 매월 급여의 8.33%가 적립되는 퇴직금의 퇴직연금화 등이 제시됐다.

소득보장파와 재정안정파 간 오랜 대립이 드러내듯 노인 빈곤 해소라는 연금 본연의 기능을 고려하면서도 다가올 고령화 사회 앞에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치권에는 차선 혹은 차악의 해법이라도 찾아야 할 책임이 있다. 22대 국회와 정부는 그 책임을 다했다고 기록될 수 있을까.(⑤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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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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