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특권 내려놓기, 민주당도 동참하라

[복지국가SOCIETY] 설익은 공약 대신 기득권 타파부터

선거의 계절이 곤혹스럽다. 단 1표의 권리 행사일 뿐이지만 청년의 뛰는 심장처럼 미래를 꿈꾸던 때가 없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대중의 비판을 두려워할 때까지는 그랬다. 이제 그 뛰는 심장 자리에 우려와 한숨이 자라났다. 그들의 눈과 귀는 더 이상 우려와 한숨을 듣고 보지 못한다.

덜 깨끗하기 경쟁, 넘나드는 윤리적 기준들

대통령과 여당의 국정 수행 행태가 워낙 하루하루 살얼음판이다 보니 야당은 그 많은 실책에도 다시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었다. 진영논리가 극에 달했던 입시 비리 사태를 딛고 조국 전 장관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바로 집권여당과 정부 그리고 민주당의 합작품이다. 자녀의 입시 관련 비리가 문제 된 당시 당사자의 변명보다 더 참담했던 것은, 그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동정심들이 도를 넘어 비호세력으로 변질되어 버렸던 점이다. 그래도 여당의 누구보다는 비리가 가볍지 않느냐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급기야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유명 작가의 탄원서가 등장했고, 일부 대학교수들의 성명서까지 뒤따랐다.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조롱과 가십거리였을 그 범죄행위들을 두둔하고 방어하는 그 흐름에 나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그들이 들이대는 잣대는 기득권에 너무도 관대했다.

물론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먼지털기식 검찰 수사가 극히 위험한 수준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범죄행위 자체와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할 다른 문제였음에도 그들은 이를 구분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 원칙들이 어느새 무너지고 합리적 이성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입으로 변질되면서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보통의 시민이 바로 방금까지도 철통같이 지켜 온 그 기준이 권력자들의 비리 경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지켜본다는 것은 참담한 경험이었다.

의도와 상관없이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부정행위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윤리적 기준은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졌다. 우리 사회에 진보의 의미가 존재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진보에서 그런 기준은 존립 근거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고 서민 삶이 위기인 상황에서도 혈세를 쏟아부으며 여전히 여당의 치졸한 공격에 맞대응이나 일삼는 민주당을 보고 있자면, 그저 서로의 비리들을 내면화하며 담합하는 공범자들을 보는 것 같다. 자신들의 비리 정도는 누구보다는 깨끗하지 않느냐며 이전의 기준치들을 별 생각 없이 무시하는 순간, 더 부정한 자의 뒤에 숨어 덜 깨끗하기 경쟁이 시작될 뿐이다. 우리의 인식 기준이란 이렇듯 별 저항감 없이도 뒷걸음칠 수 있다.

이번 선거도 그 예상을 저버리지 않았다. 민주당의 공천 잡음에 참담함을 느낀 지지자들의 허탈감이 극에 달했던 선거였다. 지난 총선의 반칙을 반성하기는커녕 또 여당을 따라 위성정당을 만드는가 하면, 자기 사람들로 채우기 급급했던 뻔뻔함에 실망한 지지자들이 우왕좌왕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역시 '저들보다는 낫지 않느냐'며 승부수를 띄웠다. 이런 와중에도 선거는 생존 투쟁이라며 연일 투표를 독려하는 영혼 없는 메시지들이 오고 갔다. 뽑을 사람이 없는데 누굴? 덜 악한 사람이라도 뽑아야 한다는 그 맹탕의 논리다. 난생 처음 나는 투표하지 않았다. 더는 그들과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질 때 당장의 우리 사회가 어떻게 위태로울 수 있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만의 잔치에 쫓기듯 투표하고는 다시 낙망하는 일을 이번만큼은 멈추고 싶었다.

조국혁신당의 '부당한 기득권 내려놓기' 공약을 지지한다

그럼에도 마음은 어느새 선거 결과에 가 있었다. 지금의 국정 방향을 제어할 수준에 안도했다. 외형적으로나마 민주당의 독식을 막고 조국혁신당으로 분할되어 나타났던 민심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국혁신당에 걸었던 기대는 딱 거기까지였는데 그들의 '의원 특권 내려놓기' 공약을 보며 실낱같은 기대가 되살아났다. 회기 중 골프 금지, 국내선 항공 비즈니스 탑승 금지 및 의원 특권 이용 않기, 주식 신규 투자 및 코인 보유 금지, 부동산 구입 시 당과 사전협의 거치기, 보좌진에게 의정활동 이외의 부당 요구 금지 등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어느 정도의 부패는 융통성 쯤으로 용인하는 우리의 정치풍토에서는 꽤 참신했다.

불공정하게 취득한 기득권을 토대로 부당하게 이권을 독식하고 있는 풍토에서 자신들부터 그 고질병들을 수정해 나가겠다는 것 아닌가. 판·검사의 전관예우, 공공기관의 부정·부당행위, 정치인의 불필요한 각종 의전과 혜택, 그 기득권들이 곳곳에서 국가재정을 파탄내고 공정경쟁을 해치고 있다. 최근의 사과 파동을 추적했던 MBC <PD수첩>에는 우리의 일상적 먹거리조차 대기업에 장악된 유통망의 실태가 그대로 보도되었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어떤 정당이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면 어땠을까? 온 국민이 겪었던 사과, 대파 파동이었던 만큼 아마 지금의 선거 결과와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이처럼 문제의 원인이 분명한데도 왜 개선하지 못할까? 각종 기득권 카르텔이 서로 공고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누가 이 문제에 손댈 수 있을까. 그런데 새로 창당한 정당이 자신들부터 이런 고비용 구조의 기득권을 타파하겠다고 나섰다.

자신들의 기득권은 당연한 권리라도 되는 듯 좀처럼 내려놓을 생각이 없으면서 국민에겐 조금씩 양보해 분배와 정의를 함께 실현하자고 말한다면 통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민주당과 야당의 정책들이 늘 현실적, 구체적이지 못하고 상대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조국혁신당이 또 다른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회연대임금제를 예로 들어보자.

사회연대임금제에서 터진 설익은 공약, 제대로 공부하는 정책을 내놓길

조국혁신당이 내걸었던 사회연대임금제는 논의가 무르익기도 전에 사방에서 공격부터 받았다. 왜 그랬을까? 공격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내던져진 공약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다.

스웨덴의 사회연대임금제를 단순한 임금 나누기로 생각했다면 시작부터 문제다. 그 합의 안에 얼마나 많은 변수가 내포되어 있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옷이 비바람을 막아줄 훌륭한 옷으로 보인다고 해서 우리와 그들의 환경 차이,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그 옷을 바로 들여와 우리에게 입히려 한다면 어떨까? 이 분명한 논리가 정치인과 진보정당에서는 흔히 무시된다. 만약 임금 격차가 우리 사회에서 문제 된다고 진단했다면 문제의 역사적 근원부터 따라가 보는 것이 순서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내놓기까지의 치밀한 연구 과정은 늘 생략되고 설익은 정책부터 내놓기 일쑤이니 실행 단계에서는 늘 좌충우돌이고 결국 밀어붙이기의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실책들을 줄줄이 경험했다. 정의로운 방향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결국 독재방식의 밀어붙이기 유혹 앞에서 좌절당하기 마련이다.

스웨덴의 사회연대임금제는 그 실현 기반부터 우리와 다르다. 우선 스웨덴의 도입 시기가 80년 전 상황이라는 점에서부터 지금 이를 도입하려 할 때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려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교육시스템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치열한 경쟁구조에서 살아가도록 구조화되어 있어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대중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스스로 쟁취했다고 여기는 현재의 조건들을 이참에 조금씩 내려놓는 게 어떠냐고 설득한다? 그들이 스스로 그럴 의사가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번 의대 입학 정원 증대와 관련한 의사 파업에서도 경쟁체제의 부작용들이 사회를 어떻게 파탄 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비록 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이 문제 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의사 증원의 문제는 한 나라의 의료 정책에 해당하는 문제다. 국민의 건강권 앞에서도 치열한 사적 경쟁 구도는 멈추지 않았고 밀어붙이기의 달인인 정부조차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스웨덴은 우리보다 느슨한 사회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얻을 고액 연봉 대신 느슨한 삶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나라다. 노동조건의 경우도 개별 기업별로 고립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산별노조 특성을 가진 나라다. 각 노동자가 개별 기업이 아닌 전체산업에 대한 균형감을 이미 경험했고 그런 경험들이 연대임금제 합의의 한쪽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후 연대임금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기반에 그물망 같은 사회적 안전망도 있었다. 스웨덴은 합의 이후에도 그런 보완 장치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왔다.

그런 그들의 합의가 아무리 부러워도 전후 상황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분석도 없이 갑자기 공약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퇴행적 발상일 뿐이다.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을 과감히 퇴출하는 방식을 택한 스웨덴과 달리 우리의 경우는 전체 고용률에서 약 90%를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조국혁신당의 공약은 우리 사회에 이미 형성돼 버린 고질적인 기업 환경들, 그런 환경에서 고용되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노동자 삶의 패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설익은 정책이다. 한방에 해결하겠다는 생각에 앞서 지금의 임금격차를 지탱하는 구조적 문제를 먼저 살피고 기초부터 준비해야 한다. 거대 담론 이전에 현실의 사회적 환경을 이해하고 구조적 문제부터 치밀하게 개선하려는 노력, 우선되어야 할 간접적 정책들이 많다. 스스로 설명할 수도 없는 정책을 어찌 실현할 수 있겠는가. 합의의 당사자들이 불편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기조는 민주당의 25만 원 민생안정지원금과 기본소득에서도 나타난다. 도무지 정책의 지속성이란 걸 엿볼 수가 없다. 경기 부양이 목적이라면 1인당 1000만 원쯤은 지원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전체 금액이 당장의 지역경제 살리기에 작다고 할 수 없고 그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막연히 마중물 주장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후에 어떤 경로를 통해 이 예산의 지출 효과를 추적해 갈 것이며 어떤 식으로 지속성 여부를 판단할 것인지 구체적 방안이 없다. 이런 일회성 정책이 과연 한 나라의 정당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기본소득의 경우도 그렇다. 그 가치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거니와 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정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신중하고도 치밀한 실천적 접근이 없는 한 지지받기 어려울 것이다.

고비용구조에 기대는 기득권 타파에 동참해야

우리 사회는 자신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에 대해서조차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왜 그럴까? 사회적 합의란,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내 것도 내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의결 방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를 고비용 구조로 내모는 기득권 세력이 기를 쓰고 이를 방해한다. 한쪽에서는 온갖 기득권과 비리가 용인되는 환경에서 다른 한편으로 정의로운 정책들이 설득될 수 있을까? 민주당이 복지, 분배, 사회정의, 이 모든 것들을 진정으로 실현하고 싶다면 조국혁신당이 내 건 기득권 내려놓기 공약부터 동참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고비용 구조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지치고 힘든 일이다. 각종 비리와 청탁, 그리고 불공정 경쟁의 온상이 되는 그 기득권을 위해 온 국민이 고비용 구조를 떠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산업 전반은 효율성이라는 이름 하에 다단계 하도급 형태로 운영된 지 오래다. 과연 기업이 효율성을 달성해 저비용 구조가 되었는가?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기형적인 산업재해율, 약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하도급 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검은 거래들이 고스란히 우리 사회가 지출해야 할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전 구조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우선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계약을 가려낼 철저한 기준과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 이후 이들 기업 간 업무 격차는 어느 정도인지, 격차가 있다면 그 격차를 인정할 만한 하도급 임금 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하고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런 기반이 우선된 이후에야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수준을 좁혀나갈 중소기업 지원 정책도 의미 있게 실천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기득권과 비리의 개입 없이 돌아갈 수 있는 기본 토양을 다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옳은 것이라면 무조건 밀고 나가려는 습성처럼 무모한 것이 없다. 지속적으로 실천가능해야 좋은 정책이다.

▲김진희 노무법인 벽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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