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직업이지 특권이 아니다

[의료권력을 말하다 下] 복지수급 자격까지 결정하는 의료권력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을 시작으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수차례 반복되었고 보건의료체계를 마비시킬 정도로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김재천 HIV/AIDS인권활동가와 이도연 건강돌봄연구활동가, 박주석 장애인건강권활동가는 <프레시안>에 의료계 집단행동의 본질로 정책 거버넌스의 지나친 의사 의존성을 지적하면서 그 안에서 의사집단이 어떻게 의과학 지식을 권력화하고 의료권력을 정치적으로 행사하는지를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들 세명은 '의료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연대'에서 다른 두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전공의 집단사직, 의사집단파업을 보면서 정당한 파업할 권리라는 공감보다는 그들의 저런 권위의식이 어디서 온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들의 권위의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의사집단의 권위의식은 오로지 의과학 지식을 소유한 의료전문성 위에서만 쌓아올린 오만함과 자만심이다. 의사집단의 의료전문가로서의 권위의식은 지난 17일 의협 비대위원장이 정부의 조치에 대해 "의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표현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연일 쏟아지는 기사에서 그들의 발언을 보면 의사를 신성불가침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과도한 권위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는 이유는 비의료 영역에까지 의료권력이 확장되어 있는 것이 한몫하고 있다.

의사집단은 의료 영역이 아닌 복지영역(근로능력평가/산업재해)에까지 개입하고 있다. 개인에 대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도 의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국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장애유형(Types)과 정도(Degree)를 판정하지만, 그 판정기준에서 의학적 기준의 비율은 90%를 넘어간다. 기초생활수급을 위해서는 근로능력평가가 필수이고, 이 근로능력평가는 전적으로 질병 상태와 부상 유무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에 대한 판단은 의사에 의해 절대적으로 이루어진다.

근로능력은 질병과 부상 외에도 돌봄, 직무적합성, 산업분포, 임금체계 등 굉장히 복합적인 사회적 상황이 작용함에도 불구함에도 의사의 의료적 판단에만 의존한다. 질병이 없더라도 집에 돌봄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노동을 할 수 없다. 그 사람의 적성과 특성에 맞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생계를 하기에는 임금이 턱없이 적어서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직업 환경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거나 비인간적이어서 혹은 몸 상태를 해칠 수밖에 없는 유해요인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아서 노동을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근로능력은 다양한 사회적 상황이 모두 고려되어서 판단되어야 한다. 더욱이, 의학적 기준은 질병과 부상의 치료를 위한 기준일 뿐, 근로능력기준에는 직업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나 의학적 지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아픔이나 통증, 불편한 몸 상태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의학적 지식에만 의존해서 근로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정확하지도 과학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산업재해로 인한 업무상질병을 판정할 때는 의료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한다. 질병에 대한 전문성 외에 노동현장의 특성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판정과정은 매우 의학 중심적으로 편협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상병 인정 절차는 전혀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의 전문가이지 노동현장의 전문가가 아니다. 노동현장과 업무의 특성이 노동자의 부상과 질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노동현장에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경험적 지식에 근거한 비전문적 전문성(Lay expertise)은 의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비전문가는 권위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집단은 보건의료 뿐만 아니라 사회정책분야에서도 의사로서 자신들의 선택과 판단(개인적인 신념이든 정치적 이념이든)을 의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의사라는 직업적 권위를 내세우며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가장 선의(善意)의, 최선(最先)의 결정인 것처럼 포장해 왔다. 정부도 이들의 판단과 결정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것은 사실이며 언론도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의사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맹신이 현재의 의사라는 직업과 의사면허를 신격화하는 데에 기여해 왔다. 의과학은 질병의 치료에 대한 지식이지, 사람들의 사회적 상황과 구체적인 맥락에 대한 지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복지체계에서조차 의과학 지식이 사실상의 복지수급자격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집단과 의과학이 사회에서 개개인의 삶에서 주체성을 빼앗아버릴 정도로 지배적인 권력을 가질 때, 그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의료계는 무지한 동시에 오만하다. M.D(medical doctor)는 N.G(next to god)를 자처하고 있다. 의료공급자의 입장에서만, 의과학 위에서만 자신의 전문성을 쌓아올리지만, 모든 영역의 입장을 알고 대변할 수 있는 절대자처럼 군림한다.

우리는 반과학(anti-science)주장하며 의과학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친지식, Pro-knowledge이다. 의과학을 사람을 위해 제대로 정직하고 윤리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며, 현재의 의사집단이 의과학 지식을 권력화하고 정치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의사는 직업이지 특권이 아니다.

▲전공의 이탈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벌어진 지 8일째인 2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환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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