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승리한 민주당이 새겨야 할 6가지 교훈은?

[박해성의 여의대교] 이제는 민주당의 시간, 22대 국회에 바란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고 곧바로 쟁점 입법 드라이브를 본격화할 기세를 보이자 국회의 긴장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영수회담이 변수입니다. 총선 패배에도 꿈쩍 않던 대통령이 지지율 급락에 '식물 대통령' 처지에 놓이게 되자 비로소 거대 야당의 수장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협치를 통해 국정 운영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당분간이나마 대화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이참에 새로 구성될 국회에 대한 저의 몇 가지 희망사항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 국회법 제20조의2(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

먼저 새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 조정을 통해 성과를 내는 인물이면 좋겠습니다.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들이 "기계적 중립은 없다"며 선명성 경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국회의장의 중립성이라는 대원칙과 상식으로 보자면 놀랄 만한 일입니다. 소수 정당을 배려하는 초당적 국회 운영의 의지나 정치적 균형감마저 없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당적을 가지지 못하게 한 규정의 취지를 멋대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국회를 상징하는 대표성, 국가 의전 서열 2위의 높은 위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교 업무 등에 합당한 지성과 품격을 갖춘 국회의장을 기대합니다. 국민과 여야 의원들이 국회의 대표자로서 존중할 수 있는 정치인이기를 희망합니다.

"왜 사람들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더 많은 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블레즈 파스칼 <팡세>

다수의 힘을 좋은 정치, 유능한 국회를 만드는 데 썼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총득표율은 민주당 50.5%, 국민의힘 45.1%입니다. 5.4%포인트 차이로 민주당은 71석을 더 얻었습니다. 한 표라도 많으면 승리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 인한 결과입니다. 패배한 쪽을 선택한 표는 사표(死票)가 되었지만, 그들의 의견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수결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가 아닌, 하나의 의사결정 방법입니다.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보다 언제나 더 현명한 건 아닐 겁니다. 많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충분한 타협의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내리는 성숙한 국회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대통령은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선출된 고위 관료입니다. 그는 왕도 신도 아닙니다. 그는 공복(公僕)입니다" 호세 무히카(José Alberto Mujica Cordano), BBC 뉴스 인터뷰, 2012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실천하길 바랍니다.

선거 과정에서 의원특권 폐지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만큼 많이 거론된 공약도 없을 겁니다. 의원정수 축소, 불체포특권 폐지, 무노동 무임금 원칙 실시, 돈 정치 청산, 세비 삭감 등 크고 작은 방안들이 나왔습니다. 선거 때마다 반복해서 듣던 이야기입니다. 그간 선거가 끝나면 모두 흐지부지되었다는 뜻이겠죠.

호세 무히카는 '페페(할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은 우루과이의 제40대 대통령입니다. 봉급 90%를 기부하고, 대통령궁을 노숙자 쉼터로 개방하고, 자신은 전부터 살던 집에서 계속 살면서, 작고 오래된 구형 폭스바겐 비틀을 직접 몰고 다녔습니다. 그는 집권 기간(2010년~2015년) 우루과이의 경제성장률과 교육 수준을 높이고 부패, 문맹, 극빈층을 줄이는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제22대 국회의 초선의원은 132명으로 44%에 이릅니다. 이 분들이 나서서 작은 것부터 특권을 없애나갔으면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호세 무히카 대통령처럼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선거 내내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듯이 공직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의무감만은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행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어떤 정당이든지 현실적으로 자기 지지층을 결집해서 어떻게든지 한 표라도 이기려고 하는 정치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게 극한 대립을 만든다." 김진표 국회의장, 선거제 개편 '2+2' 협의체 발족식, 2023

임기가 시작되면 바로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선거가 끝나면 늘 소선거구제의 한계가 지적됩니다. 선거구 획정은 어김없이 시한을 넘겨 선거 직전에야 마무리됩니다. 2020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때부터 문제가 되었던 제도의 악용은 이번 선거에서도 반복됐습니다. 양당 독점 구조는 더 공고해지고, 결국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거제도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여 남은 국회가 이 숙제까지 마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공이 새 국회로 넘어간다면 지체하지 말고 관련 논의를 이어가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기후 위기는 단지 북극곰이나 먼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우리가 마시는 물,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관한 것입니다." - 캐서린 헤이호 박사(Dr. Katharine Hayhoe, 기후 과학자), TED Talk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는 이미 일상에 널리 침투했습니다. 우리는 폭염, 물 부족, 대기 오염처럼 건강, 웰빙,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열 관련 질병, 대기 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문제, 매개체 매개 질병의 확산, 농업 생산 피해로 인한 식량 불안 등이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복지, 경제적 이익, 환경적 가치, 건강, 안전, 세대 간 책임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기후 위기를 핵심적인 정치적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22대 국회가 민생 국회를 표방한다면, 당연히 기후 위기에 관한 토론과 정책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후·환경 분야 전문가 출신 여야 의원들이 중심에 서서 건설적인 논의의 장을 열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영국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정치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은 다음 달래고 조정해서 타협시키는 것’이라고 봤다. 미국 정치학자 스콧 아들러와 존 윌커슨은 정치의 역할이 사회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의 역할을 갈등의 조정과 문제의 해결이라고 한다면, 지금 한국에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이관후 건국대 교수. <경향신문> 칼럼

소위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채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양평 고속도로 의혹·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주가조작 의혹)' 등의 대정부 쟁점들이야 누가 하라 말라 할 것도 없이 민주당의 우선 과제가 될 것입니다. 다만 국회 스스로 개혁하고 민생을 챙기고 대한민국 안팎의 위기에 대처하는 일들을 마냥 뒷전으로 밀어둔 채 싸움에만 몰두하지 말아달라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민주당의 시간입니다. 주도권을 가진 만큼 책임도 무겁습니다. 나라를 생각하고 시민의 삶을 보살피는 현명한 결정들을 내려 주기를 바랍니다.

▲국회의사당 전경.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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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티브릿지 대표는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선거, 빅데이터, 공공정책 분야의 컨설턴트입니다. 2019년부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지역산업·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국가적 과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비판적 시민으로서의 감수성과 현실을 직시하는 균형감각을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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