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에서 20여 년 전 김대중 정부 '에코-2 프로젝트'를 떠올리는 이유

[초록發光] 기후위기 시대에는 '에코(eco)-2'에서 '에코 원(eco one)'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최장수 재임의 기록을 가졌던 김명자 환경부 장관은 2001년에 대한민국 21세기의 새로운 비전으로 '에코-2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의 대립을 극복하고 조화로운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취지하에, 생태의 ecology와 경제의 economy에서 공통된 앞 글자를 가져와 2개의 에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청와대 보고를 통해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환경부는 국제사회에도 에코-2 프로젝트를 열심히 홍보했다. 당시 한국 발표를 들었던 다른 나라는 고개를 갸웃했다고 한다. 환경과의 조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은 보통 산업부가 제시하는 전망인데, 한국은 왜 환경부가 목소리를 높이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제성장 지상주의' 대한민국의 개발부서 이중대를 자처하는 환경부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일 수 있다.

물론 국제적으로 한국은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채택한 발전국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분류된다. 사실 학계에서 발전국가 모델은 일본의 빠른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이후 학계는 한국과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의 개도국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국가는 경제개발을 기업과 시장이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만 담당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처럼 정부가 기술을 개발하고 공장을 설립해 수출을 주도해나가는 방식을 채택했다는 측면에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발전국가란 유능한 관료들을 이용해서 정부가 경제발전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국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 시기에 외국 차관을 도입해 산업화의 종자돈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삼성·엘지 같은 대기업을 육성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바 있다. 심지어 1980년 서울의 봄과 더불어 시작된 민주화 이후에도 경제개발을 주도하고 기업을 육성해나가려는 국가의 가부장적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스마트폰 이동통신 기술의 개발을 주도했던 공기업인 한국통신과 관련해 1990년대의 민영화 및 기술 이전을 통해 현재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심지어 19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는 반도체 및 자동차 산업의 중복 투자 및 과도한 경쟁을 해소하겠다며, 현대·삼성·엘지의 빅딜을 추진해 사업 분야까지 정리했을 정도로 시장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태가 한국 정부의 특징이었다.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발전국가의 구태에서 못 벗어나는 태생적 한계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1세기까지도 경제성장만을 최우선시하는 낡은 개발지상주의일 수 있다. 국제사회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새로운 대안으로 채택하고, 한국인 출신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7개 세부 목표의 합의를 도출했을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 시대적 당면과제로 등장한 지금의 시대에 환경규제를 역행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정부 부처 전체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단일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는 2023년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녹색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환경 분야에서 한 해 동안에만 20조 원을 수출해 돈을 벌 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이를 100조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수치마저 공개했다. 세부 전략은 환경부의 업무 계획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예를 들면, '도시 유전(油田)'이라는 이름으로 폐플라스틱을 가열해 연료로 전환하는 사업, 태양광을 이용해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그린 수소', 혐기성 발효 공정을 거쳐 가축 분뇨로 메탄을 만들어내는 '바이오 가스' 및 저수지 표면 위의 '수상 태양광' 처럼,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할만한 에너지 산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3대 약속의 첫 번째 항목에 탄소중립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는 면피용일 뿐이며, 보도자료의 제목은 역시나 산업과 수출이라는 성장동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나라에는 자연 생태계를 보전하는 부서가 존재하지 않으며, 명목상의 환경부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산업경제환경부로 사실상 전락한 상태이다.

▲환경부 2023년 업무 보고. (https://www.me.go.kr/2023briefing)

윤석열 정부 집권기에 20여 년 전 김대중 정부의 에코-2 프로젝트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진보와 보수라는 정권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한 한국형 경제성장주의의 데자뷔가 재연됐기 때문이다. 김명자 장관은 숙명여대 화학과 교수 출신의 환경 전문가로 임명되었지만, 환경보전보다는 경제성장을 추구하며 산업부의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현 정부의 한화진 장관은 지금의 한국환경연구원이자 과거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출신의 기후변화 전공 박사급 연구원이라는 전문성을 가지고 내각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이 작성하고 발간했던 보고서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국정 운영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반대로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다른 부처의 소관 업무인 해외 수출을 극대화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는 상황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탄소중립과 저탄소 녹색성장은, 환경부가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국내적 생태계 보전을 위해 규제 업무를 충실히 이행할 때, 산업부가 시대적 전환에 발맞춰 선택하는 전략적 대응이어야 한다. 즉 '에코 원(one)'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환경부가 자연보호와 기후대책을 제대로 수립해야지, 산업부가 지속가능발전 및 녹색성장 전략으로 호응할 수 있다. 제발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포기하지 않고, 정부 부처가 자신의 업무가 아닌 타 부서의 영역을 탐내지 않으면서, 해당 기관에 부여된 임무를 오롯이 수행해나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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