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영토 마음대로 협의하는 트럼프와 푸틴, 한반도도 이렇게 당하나

[현안진단]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과 강대국 정치의 부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정세의 가장 큰 특징은 강대국 정치의 부활과 자강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국제 질서 변화의 신호탄이 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 간 펼쳐지는 국제정세는 강대국 정치의 부활과 자강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25년 8월 14일 미국의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은 강대국 정치의 전형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미국의 역 키신저(reverse Kissinger) 전략

먼저, 이번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소위 '역 키신저 전략'의 단면을 드러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종종 논의되었던 '역 키신저 전략'은 지난 시대 미국·중국·소련 간 강대국 정치에서 유래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 데탕트라는 국제정세에서 당시 닉슨 행정부는 미국·중국·소련의 전략적 삼각관계에서 소련을 견제할 카드로 중국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추구했다. 이것이 바로 키신저 전략이었다. 2025년에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우호·협력 관계를 회복해 중국을 봉쇄코자 하는 '역 키신저 전략'을 전개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 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구상 차원인지 아니면 공화당 차원에서 폭넓게 공감대가 형성된 구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강대국 전략의 한 부분인 건 분명하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당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국제법을 위반하고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도전 행위라고 러시아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알래스카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면서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를 묵시적으로 받아들이고 미국·중국·러시아 간 전략적 삼각관계를 부활시켰다. 따라서 이번 알래스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중의 하나가 미·러 관계 복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개최해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를 묵시적으로 인정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는 별도로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추진할 의도를 보였다. 비록 정상회담에서는 경제협력 문제가 논의되지 못했지만, 실무 차원에서는 새로운 북극항로 개발, 천연가스와 희토류 등 에너지·자원 분야에서 상호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러 관계 개선과 협력 추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강고해진 중국과 러시아의 결속력을 이완시키기 위한 '역 키신저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미국·러시아 간 강대국 협조, 약소국 이익 흥정

이번 알래스카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강대국 정치의 또 다른 전형은 소위 강대국 협조 정치가 작동되었다는 점이다.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의 핵심 주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종전 방안 논의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 전쟁의 핵심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관련 국가들인 유럽연합이 완전히 배제되었다. 미국과 러시아 양 강대국이 각자의 국익 입장에서 약소국인 우크라이나의 운명과 국익을 흥정하는 강대국 협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이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특별한 성과도 없으면서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100% 만족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종전 중재를 통해 자신의 평화주의자 이미지를 부각하고 우크라이나로부터 광물 협정을 통한 에너지 자원 확보라는 실익을 얻고자 하는 것 같다.

한편, 또 다른 강대국이자 전쟁의 당사국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미국을 통해 자신의 종전 구상과 종전 협상 요구를 관철코자 하는 것 같다. 미·러 정상회담 후 언론 인터뷰 자리에서 러시아의 종전 협상 요구 사항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양 정상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운명과 직결된 사활적 이익을 놓고 강대국 간 흥정하는 모습이 연출된 건 사실이다.

이번 알래스카 정상회담이 약소국의 운명과 사활적 이익을 흥정하고 결정하는 강대국 협조의 구체적 사례라 한다면, 강대국 정치가 소환된 오늘의 국제정세에서 강대국 간 협조에 따라 약소국의 운명과 이익이 결정되고 희생될 수 있는 상황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에 대한 러시아와 유럽 간 입장 차이

이번 알래스카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과 관련해서 회담 이후 러시아 방안과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 방안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먼저, 협상과 종전의 키를 잡은 러시아의 종전 방안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러시아의 첫 번째 요구 사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 지역인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완전한 지배와 우크라이나가 이 지역을 포기하는 것이다. 현재 러시아가 이 지역의 88% 정도를 점령한 상태다. 또한 자포리자와 헤르손 지역의 전황을 동결하는 것으로, 현재 러시아는 이 지역의 73% 정도를 점령하고 있다.

두 번째 요구 사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요구 사항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과 유럽의 다국적군이 안전 보장군 자격으로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는 걸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022년 4월 결렬된 이스탄불 평화협정에서 제기했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독일과 튀르키예 등이 포함되는 안전보장 방안을 주장한다.

▲ 미국 전쟁연구소(ISW, Institute for the Studies of War)가 2025년 6월 현재 파악한 우크라이나 전황. 오른쪽 아래 빨간색 부분이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우크라이나 영토이며 오른쪽과 중간 위의 파란색 부분이 우크라이나가 반격했다고 주장하는 지역이다.

한편,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으로 당사국인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수석 보좌관은 우크라이나의 잠정 입장으로 영토 포기와 전황 동결이라는 러시아의 첫 번째 요구 사항을 수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러시아의 점령을 인정하되, 법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겨 두어 향후 비군사적 수단을 통해 수복할 여지를 남겨놓고자 했다. 또한 그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아니라도 확실한 동맹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 유럽과 나토 사무총장 그리고 미국은 적절한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큰 그림을 그려보자면, 미국은 지상군 파병이 없고 항공 지원 차원에서 유·무인기로 우크라이나 항공 상황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상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할 것이지만, 나토의 유럽 동맹군대가 배치되더라도 이는 나토와는 무관한 군사력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1000km가 넘는 국경선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서 병력 규모가 어느 정도 될지 논란이 있고 러시아가 이를 수용할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에서 회담을 가진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제2의 북방외교로 실용 외교의 공간 확장을 도모해야

이번 미·러 정상회담을 통해 나타난 강대국 정치와 약소국의 운명과 국익을 놓고 흥정하는 강대국 협조 연출은 한반도 평화 안보에 적잖은 충격과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날 우리는 이미 강대국 협조에 따라 우리의 입장과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반도 운명이 결정된 비참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도 북핵 문제를 놓고 한국이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코리아 패싱'에 대한 씁쓸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코리아 패싱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이 부재하거나 배제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의 외교 안보 정책이 매우 무기력하거나 수동적이고 때로는 현안에 대한 해법이 부재한 상황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또한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외교 안보 현안이 주변 국가들과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의제들을 지칭한다. 한반도 문제는 작게는 특정 쟁점이 주요 의제가 될 수도 있고 크게는 한반도 운명 자체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 문제의 성격과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코리아 패싱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함의도 달라진다.

이번 미·러 강대국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났듯이, 약소국의 이익을 놓고 흥정하는 강대국 협조에 따른 한반도 운명과 이익 결정을 막기 위해,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대외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실용적이면서도 적극적 역할을 도모해야 한다. 혹시나 이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코리아 패싱의 잠재 요소들이 존재하더라도 이를 완전히 씻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 주도의 역할과 정책 공간을 넓혀나가야 한다. 다양한 쟁점과 맞물린 한반도 문제에 대해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방책을 마련해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확고하게 잡아야 한다.

북핵 문제의 국제정치적 성격상 우리만이 꼭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북한 문제와 그와 연동된 남북 관계에서는 반드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를 평화의 방향으로 운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특히, 지난 정부에 의해 모두 중단된 북방외교를 과감히 재개해야 한다. 남북 관계는 물론이고 한·중 관계 그리고 한·러 관계라는 새로운 제2의 북방외교를 과감하게 추진하여 실용 외교의 자율적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돌파는 북핵 문제 등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코리아 패싱을 사전에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평화의 한반도로 나아갈 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는 출발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평화재단

평화재단은 남북관계 및 외교·안보와 관련한 현안 문제에서 사회 양극단의 갈등을 지양하고, 균형잡힌 시각과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통일 역량을 강화하고 평화통일의 환경을 적극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