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4개 크기 오름에 불 놓는 들불축제가 세계의 자랑거리?

[제주의 녹색분칠] '불 없는 들불축제'라고? 기후위기 역행하는 들불축제 폐지해야

"제주에선 오름 하나를 통째로 태워야 봄이 온다"는 풍문이 있다. 제주들불축제를 소개하는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제주도민 입장에서는 참 무섭고 마뜩잖은 말이다. 제주의 봄은 음력 2월 초하루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과 함께 온다. 영등할망은 2월1일에 제주에 와서 보름 동안 온 섬을 돌아다니며 땅과 바다에 생명의 씨를 뿌리며 봄의 기운을 북돋워주고 떠난다. 그래서 영등할망은 '바람의 신'이면서 '봄의 신'이다.

그런데 생명들의 터전인 오름에 석유를 뿌리고 화약을 터뜨려 불을 지르는 들불축제가 제주의 봄의 전령사로 둔갑하다니!! 영등할망이 뿌린 생명의 씨앗을 모두 학살하는 일이 제주의 전통으로 각인되다니!! 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아니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제주들불축제 ⓒ제주시청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민선 지방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는 축제와 이벤트가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런 문화사업화 전략은 중앙정부가 '5대 국정지표'로 문화관광의 진흥을 설정할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웠고 1997년 제주에서도 북제주군(1946년 8월 1일부터 2006년 6월 30일까지 존재했던 제주특별자치도의 폐지된 자치군)에서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를 시작한다. 구좌면, 추자면, 한림면, 조천면, 애월면의 군민들이 모두 모여 정겹게 즐겼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는 그러나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북제주군이 폐지되면서 제주시가 주최하게 되었고 2013년부터는 3월 경칩이 낀 주말로 개최 시기를 옮겨 '제주들불축제'로 이름을 바꾸며 몸집을 키워갔다.

'제주의 전통 목축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들불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유망축제(2006~2014), 우수축제(2015~2018), 최우수축제(2019), 문화관광축제(2020~2021) 등 각종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집행된 예산 규모도 지난 10년간 새별오름 일대에 조성한 광장, 주차장 등의 부대시설 비용 약 100억 원은 논외로 치고도, 단 4일의 축제를 위해 2023년 기준 16억 9천만 원의 예산을 집행하며 매년 30만 명이 찾는 제주의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대표축제라는 화려한 타이틀 이면에 들불축제는 환경훼손, 기후위기 역행, 오름생태계 파괴, 산불위험 등 수많은 논란에 휩싸여 왔다. 특히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2022년과 2023년에는 전국적인 산불재난경보 발령으로 최근 4년 동안 행사가 취소되거나 변경되며 그 지속가능성마저 위태로워졌다. 2023년 들불축제는 제주시가 첫날 행사를 치르고 나서야 오름불놓기와 달집태우기 등 불 관련 프로그램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리며 지역사회 혼란, 관광이미지 하락, 예산 낭비, 행정력 낭비 등의 논란이 증폭되기에 이른다

기후위기를 역행하는 반생태적. 반환경적 들불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제주녹색당은 지난 4월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따라 19세 이상 제주도민 749명의 서명을 받아 숙의형 정책개발을 청구했다. 들불축제의 상징성과 논쟁성을 고려한다면, 숙의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들불축제 존폐에 대해 제주도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지난 9월 19일, 200명의 도민참여단이 참여하는 '제주들불축제 도민 숙의형 원탁회의'가 열렸고, 10월 11일 제주시장은 원탁회의 결과에 따른 권고안을 받아들여 "탄소배출, 산불, 생명체 훼손 우려가 있는 오름불놓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제주의 생태적 가치에 부합하는 축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획부터 축제 운영까지 시민 주도 축제로 탈바꿈시키고, 새로운 콘텐츠 개발 등을 위해 2024년 들불축제는 개최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들불축제가 열리는 애월읍 봉성리 일대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도의원은 '원탁회의에서 결정이 나더라도 제주도가 주도하는 사업이므로 제주시장은 결정 권한이 없다, 예산을 심의하는 도의회가 결정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하며 제주도의회가 만든 조례를 도의원 스스로가 무용지물로 만드는 자기 모순적 망언을 이어가고 있다. 10월 제주도의회 임시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른바 '불 없는 들불축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지구가 불타고 있는 마당에 기름과 화약을 사용해 축구장 4개 크기의 오름에 불을 놓아 불구경하라는 들불축제는 이제 세계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웃음거리' (2023.3.8. 제주녹색당 논평)가 될 것임이 분명함에도 여전히 논란인 이유는 무엇일까? 들불축제 원탁회의에서 오고 간 주장들을 들여다보며 들불축제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설명해보려고 한다.

1. 환경훼손 문제보다 지역경제활성화가 더 중요하다?

2000년 새별오름으로 축제장소가 고정된 이후 새별오름의 환경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졌다. 지속적인 불놓기로 인해 다년생 식물이 사라지며 식생이 단순화되고 토양건조 및 토양침식을 가속화시켜 지표면의 사막화도 발생한다(2009.'새별오름의 초지화입에 의한 색생변화 연구', 제주대학교 생물학과)는 조사뿐만 아니라 특히 화약 등의 무차별 살포로 토양오염이 심각하다(2013,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주지역대학 농학과)는 결과는 땅속으로 물이 잘 스미는 제주 화산지질 특성상 토양오염이 지하수오염과 바다오염으로 이어진다는 문제를 진단하며 통합적인 조사가 시급함을 경고했다.

그러나 제주시는 지난 2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새별오름훼손, 생태계파괴, 토양오염, 지하수오염, 바다오염, 발암물질로 인한 인체 영향 등에 대한 행정조사와 평가를 시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10년 동안 새별오름 일대에서 30건 이상의 공사를 시행하면서 공사에 대한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수차례 회피해 제주도 감사위원회의 행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행정이 법을 위반하고 환경파괴를 눈감으며 축제는 지속되었고 급기야 오직 '불'을 놓기 위해 놀라운 일들을 벌이게 된다.

정월대보름 시기에 진행되던 초기 들불축제는 강풍과 폭설로 불놓기가 연기되는 경우가 잦았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피해 2013년부터 3월 이후 경칩이 낀 주말로 개최 시기를 옮겼지만 그 이후도 불놓기가 순조롭진 않았다. 2016년 비 날씨가 예보되었으나 들불축제는 강행되었고 안개와 폭우, 강풍으로 불이 붙지 않자 석유를 쏟아부어 오름에 불을 놓았다. 이를 지켜보는 도민들은 '폭우와 강한 바람으로 연기만 더해갔고 듬성듬성 타다만 새별오름을 지켜보는 것이 씁쓸했다'고 전한다. 석유 사용은 축제 시작되던 해부터 이어지던 것이었고 불똥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을 놓는 주변에 락스를 탄 물을 농약 뿌리듯이 뿌렸댔다고도 한다.

석유사용 비판이 일자 화약과 폭죽을 사용해 불을 놓기 시작하는데 2019년에는 화약 2,650kg을 사용했고, 코로나가 창궐했던 2021년에는 비대면으로 차량 400대만 출입시켜 5,600개가 넘는 폭죽과 1,000kg의 화약을 사용해 오름에 불을 질렀다. 폭죽과 화약을 사용해 오름에 불을 놓았으니 그 잔류물도 오름에 그대로 남았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그 잔류물들이 바람에 날려 주변 식생과 탐방객들에게까지 날아간다. 날리는 재를 맞으며 관광객들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오름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도 진정 제주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까? 그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지난 20년 동안 식생조사, 생태계조사, 토양오염조사, 탐방객에 대한 피해조사, 지하수오염 및 바다오염 조사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별오름 환경회복을 위해 오름휴식년제 시행해달라는 요청도 이어졌지만 제주시 관광진흥과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들불축제를 진행해야 하므로 불가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 번 훼손된 환경을 회복하는 것은 얼마만큼의 돈이 들까? 아니, 회복이 가능할까? 지난 20년 오름에 불을 지른 대가를 우리는 어떻게 돌려받게 될까?

2. 들불축제는 제주의 전통 목축문화를 계승?

들불축제 홈페이지에 따르면 '해충구제를 위해 소나 말을 풀어놓던 방목지에 불을 놓는 제주의 방애불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제주의 목축문화인 방애(들불)는 중간간 지대 목축민들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 유충구제 및 잔초제거를 위해 방목지에 방화선을 구축하여 불을 놓던 자연친화적 생태농법이다.

그러나 들불축제는 방애불의 자연친화적인 정신은 내던진 채 석유를 쏟아붓고 화약을 터뜨려 인위적으로 불을 지르는 반환경적, 반생태적 방법으로 진행되면서 '방애불 전통을 현재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에 더해 화산섬 제주 생성의 근원이 불에서 유래했다며 밑도 끝도 없이 올림픽 성화 채화를 흉내 내고 삼성혈에서 고위공직자들이 채화한 불씨를 제주시청까지 봉송하며 전통을 윤색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제주의 전통 목축문화를 계승하는 것이 목표 라면 새별오름을 통째로 태우는 것이 아니라 목축이 행해지던 마을목장을 개발의 광풍에서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 먼저이고 자연친화적인 제주도민들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3. 지역민들이 참여하고 즐기며 공동체 의식을 키워가는 축제?

들불축제는 1997년 1회 개최 당시 1만3000명이 찾았던 소규모 행사로 출발했다. 초기에는 애월읍과 구좌읍 중산간 마을 공동목장을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치러졌고 당시는 북제주군의 군민 단합대회 느낌이 강했다. 행사가 끝나면 큰 구덩이를 파서 쓰레기들을 한 번에 묻어버렸다는 이야기가 흠으로 전해지지만 말이다.

▲제1회 정월대보름 들불축제 ⓒ들불축제 홈페이지

그러나 몸집을 키워 제주시가 개최한 후로는 제주도의회에서조차 지역주민이 즐기는 축제가 아닌 동원된 축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제주시 전 부서가 일제히 동원되어 축제 부스를 운영하는 관주도 축제'(2015년 제주도의회 김용범 의원), '들불축제 찾아온 39만 명 대부분 각 읍면동에서 동원된 도민들이고 전국에서 읍면동별로 천막을 친 곳은 들불축제 밖에 없다'(2018년 제주도의회 안창남 의원)

그리고 '제주시가 들불축제 평가에서 입도관광객 4만 4천명인데 축제엔 8만4000명으로 뻥튀기하고 있다'(2012년 제주도의회 강경식 의원)는 비판도 꾸준히 이어져 '들불축제가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유망축제, 한국축제 50선에 선정될 만큼 제주시의 대표축제이지만 결국은 대다수 도민이 참여하는 도민축제에 불과하다'(2013년 제주도의회 오충진 의원)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전체 문화관광축제의 경우 관광객의 비율이 70% 정도라면 들불축제는 관광객 비율이 20% 남짓이라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김의근, 지역축제의 특성화 발전방안 연구-제주들불축제를 중심으로, 제주관광학연구 제21집, 2018. p35)

매년 16억, 17억 원의 돈잔치를 벌이는데 관광객도 오지 않고 지역주민들조차 즐기지 못한다면 들불축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묻고 싶다.

4. 제주도민의 역사를 지워버린 들불축제, 새별오름은 고려시대 최영 장군의 전적지?

제주들불축제가 10돌을 맞은 2006년에는 최영 장군이 목호들을 무찔렀던 새별오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추자도 최영장군 사당에서 성화 채화를 한 뒤 제주도 일원을 돌며 봉송행사를 하고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불을 점화하는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이는 권력을 가진 승자의 입장에서만 역사를 기억하는 과오이고, 역사에서 제주도민을 지워버리는 만행이다. 당시 도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안다면 감히 행정이 나서 새별오름을 전적지로 추켜세울 수도, 폭죽을 쏘아 올리며 흥겨운 축제를 열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탐라국이었던 제주는 1153년 고려에 편입된 후 150년간 지배를 받았고, 이후 83년간 원나라 지배를 받았다. 원은 제주에 1500명 가량의 군사를 주둔시켰고 제주 목마장은 원 제국의 14개 국립 목장 중 하나로 경영되며 제주 사람들은 주둔군의 한 형태인 목호(말 키우는 오랑캐)와 어울려 살았다.

그런데 원나라가 저물고 명나라가 고려에 말 2천 필을 요구하자 목호들이 이를 거부하며 결국 전쟁은 시작되었다. 당시 제주에 살던 제주 사람들의 숫자에 가까운 2만 5천여 고려군은 '몽골인의 피가 섞인 자, 변발을 한 자, 목호를 도운 자'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토벌을 자행했다.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덮고, 간과 뇌과 땅을 덮었으니 말하면 목이 멘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로 무고한 많은 제주 사람들이 죽어갔다.

제주 도민의 입장에서 '목호들을 무찌른 전적지'로 새별오름을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애통하고 한스러운 일인지 행정은 진정 몰랐던 것일까? 게다가 새별오름과 그 주변 노꼬메오름, 유수암 일대는 4.3 당시 소개작전으로 모두 초토화되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위령비는 못 세울망정 폭죽을 터뜨리는 축제를 여는 이 역사적 만행을 이제 그만하자는 것이 들불축제 폐지의 또다른 이유이다.

새별오름이 다시 별처럼 빛나기를

▲2021 불놓기 후 새별오름 ⓒ 제주들불축제 홈페이지

새별오름은 '하늘에서 제일 반짝이는 금성처럼 빛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매년 행사가 끝나면 새까맣게 타버린 새별오름을 바라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하던 원탁회의 참가가(50대 남성)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내건 "다함께 미래로, 빛나는 제주"라는 슬로건에서 별처럼 빛나야 할 새별오름은 제외되어 있다. 앞으로 도민들이 참여해 제주의 생태적 가치에 부합하는 축제를 찾아가는 과정에 '별처럼 빛나야 할 새별오름'을 다시 복원하는 방법도 꼭 찾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원탁회의 권고안대로 '제주의 생태, 문화적 가치를 지키며 시민들이 참여해 만드는 축제'를 만드는 첫걸음은 특정 세대가 과대 대표된 도민참여단 구성, 운영위원회 운영 등 들불축제 원탁회의 과정을 점검하고 검증하는 일임을 제주도정은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제주투데이, 생태적지혜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같이 실렸습니다.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부순정 ⓒ부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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