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알아야 최저임금법 작동된다는 거짓말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최저임금법 5조 3항은 왜 법전에서 잠자고 있나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도 최저임금법 적용이 가능한가요?"

사실 이런 질문은 최저임금 문제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연장근로수당도 마찬가지다. '기본 정취근무시간'이 정해져있고 이를 웃도는 노동시간에 지급하는 추가 수당이므로,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우면 연장수당 계산도 불가능하다. 연차유급휴가를 얼마로 할지, 주휴수당 문제는 어떻게 할지, 퇴직금 계산에서도 노동시간 측정이 매우 중요하다.

노동시간에 따라 정해지는 최저임금액

우선 이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조금 길지만 최저임금법 제5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조항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하고 있는 '최저임금액'이란 어떤 개념인지,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표현하는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이 3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조는 필자의 것임)

■ 최저임금법 제5조 (최저임금액)

최저임금액은 시간·일·주 또는 월을 단위로 하여 정한다. 이 경우 일·주 또는 월을 단위로 하여 최저임금액을 정할 때에는 시간급으로도 표시하여야 한다.

②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수습 중에 있는 근로자로서 수습을 시작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인 사람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1항에 따른 최저임금액과 다른 금액으로 최저임금액을 정할 수 있다 … (후략) …

③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

5조 2항은 수습노동자에 대해 특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 최저임금액을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 다루는 쟁점과는 큰 관계가 없다. 강조한 것처럼 우리가 잘 살펴봐야 하는 내용은 5조 1항과 3항이다.

5조 1항에 따르면 최저임금액은 시간·일·주 또는 월을 단위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매년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액을 시급으로 결정할지, 아니면 주급·월급으로 결정할지를 가장 먼저 논의하게 된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30년 동안 최저임금액은 ‘시급(시간급)’으로 결정해 왔으며, 2016년부터는 월급 환산액을 함께 고시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 최저임금액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시급(시간당) 9620원' 이렇게 최저임금액이 결정되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입력해야만 임금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측정 어려운 경우 대비한 법조항 있다

하지만 5조 3항을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이 조항은 "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게 어떤 경우일까?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 도급제라면 임금을 시간당이 아니라 건당(과업당)으로 정하는 경우,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플랫폼·특수고용과 같은 케이스를 말하는 것 아닌가! 뭔가 찾아낸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깊이 파고들어보자.

도급제 등으로 임금이 정해지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대통령령에는 뭐라고 되어 있을까?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시행령 4조는 아래와 같다. (마찬가지로 강조와 밑줄은 필자의 것임)

■ 최저임금법 시행령 제4조 (도급제 등의 경우 최저임금액 결정의 특례)

법 제5조 제3항에 따라 임금이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해진 경우에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그 밖에 같은 조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되면 해당 근로자의 생산고(生産高) 또는 업적의 일정단위에 의하여 최저임금액을 정한다.

시행령을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도급제 등으로 임금이 정해져서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찾던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노동시간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시간·일·주 또는 월을 단위로 결정된 최저임금액을 적용하는 게 마땅치 않으니 이 경우에 맞는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령에 따라 따로 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최저임금액을 어떻게 정한다는 것일까? 시행령에 답이 나와 있다. "해당 근로자의 생산고(生産高) 또는 업적의 일정단위에 의하여 최저임금액을 정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1건당 또는 과업당으로 최저임금을 정한다는 것이다.

배달이나 택배 배송 1건당 얼마, 승객을 태운 운행 1건당 또는 운행거리 1㎞당 얼마, 웹툰 1컷당 또는 1회차당 얼마 …… 최저임금액을 시간당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최저임금법 5조 전체의 구성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법 적용대상은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노동시간 파악이 쉬운 경우(5조 1항) △1년 이상 근로계약 체결하고 수습기간이 3개월을 지나지 않은 경우(5조 2항) △노동시간 파악이 어려운 경우(5조 3항)

ⓒ오민규

이걸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아니, 최저임금법에 이런 조항이 있었다고? 도대체 언제 만들어진 조항이야?"

놀라지 마시라. 최저임금법이 처음 만들어져서 시행된 1988년부터 있었던 조항이다. 이 법이 시행된지 35년이 되었는데 최저임금법 5조 3항의 존재는 왜 이렇게 알려져있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정부가 고의적으로 이 조항을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오민규

위 자료는 국회 환경노동위 윤건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고용노동부에 질의해 받은 답변 자료인데, 이 짤막한 답변에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울 뿐이다. 지난 35년 동안 단 한 번도 최저임금법 5조 3항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 '노사 법치'를 내세우고 있는 윤석열 정부, 없는 법도 만들어서 집행하겠다는 정부 아닌가. 엄연히 법이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이렇게 버젓이 답변 자료로 낼 수 있나.

대법원도 존재 가치 인정한 5조 3항

5조 3항을 적용할 수 있는 노동자가 없어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대법원은 2007년에 철도매점(구 홍익매점) 노동자는 최저임금법 5조 1항 적용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노동시간 측정이 용이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므로 최저임금법 5조 3항 및 시행령 4조를 적용하여 최저임금을 정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07. 6. 29. 선고 2004다48836)

"…… 개점시간만 준수하면 자신의 업무를 자신이 고용한 판매대리인이나 비공식적이지만 가족이나 친지 등으로 하여금 대행하게 할 수 있으며 임금도 일정한 수당 외에는 기본급 없이 상품판매액수에 소정의 성과급율을 곱하여 산출한 성과급을 지급받는 등 그 근무형태가 도급적 성격이 강하고 업무의 내용도 단속적(斷續的) 간헐적(間歇的)이어서 휴게시간 내지 대기시간이 많아 정확한 실근로시간을 산출하는 것이 어려우며 ……

그렇다면 원고들의 근로형태는 임금이 도급제 기타 이와 유사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근로시간의 파악이 어렵거나 그 밖에 최저임금법 제5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합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러한 이상 원고들에 대해서는 위 규정에 의해 정해진 최저임금액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고 같은 조 제3항 및 같은 법 시행령 제4조에서 정한 바에 따라 원고들의 생산고 또는 업적의 일정단위에 의해 정해진 최저임금액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판례를 보면 "기본급 없이 상품판매액수에 소정의 성과급율을 곱하여 산출한 성과급을 지급받는" 형태, 즉 전형적인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사례이다. 위 대법원 판결이 나온지 무려 16년이 지났다. 그 사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규모는 이미 250만 명이 훌쩍 넘었고,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노동 규모도 200만에 육박하고 있다.

법 제정 직후에야 그렇다 치더라도 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지난 16년 동안에도 5조 3항이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이런 조항이 분명히 살아있음에도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권리 보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액수 결정 권한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자, 그럼 마지막 쟁점으로 가보자. 노동시간 파악이 어려운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 조항도 있고 대법원 판결도 찾았다. 생산고(生産高) 또는 업적의 일정 단위로 최저임금액을 정하면 된다. 그렇다면 그 액수 결정은 누가 해야 하는 걸까?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따로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니 최저임금위가 아닌 다른 기구에서 논의해야 하는 거 아닐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최저임금법 5조 3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할 수 있는 주체는 현행법상 최저임금위원회 뿐이다.

[2024.1.1.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심의 요청서]

1. 근거법령 : 최저임금법 제8조, 같은 법 시행령 제7조

2. 심의요청 내용

가. 최저임금액 : 2024.1.1.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안)

나. 최저임금 수준

○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하되,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향상하고 노동시장 내 격차를 해소하여 소득분배 상황이 단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합리적 수준으로 심의, 의결

다. 최저임금의 사업의 종류별 구분 여부

○ 최저임금을 모든 업종에 대하여 동일한 금액으로 적용할 것인지, 사업의 종류별로 다른 금액으로 적용할 것인지 여부

왜 그런지는 올해 3월말에 고용노동부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보낸 심의 요청서를 보면 된다. 최저임금법 제8조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고, 위원회가 심의하여 의결한 최저임금안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위 심의요청서에 따르면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최저임금액'을 심의해달라고 요청했을 뿐, 최저임금액을 시간·일·주 또는 월 단위로 정해달라는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심의요청서에 명시된 ‘최저임금액’은 최저임금법 5조 1~3항에 적시된 금액 모두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5조 2항의 경우(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하고 수습기간 3개월 미만인 노동자의 경우) 이들의 최저임금액은 이미 시행령에 10% 감액한 금액을 최저임금액으로 정한다고 명시되어 있기에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심의를 요청한 것은 5조 1항과 3항에 적시된 최저임금액이라 할 수 있다. 별도의 조항이 없는 한 5조 3항에 따른 최저임금액을 심의할 수 있는 기구는 최저임금위원회 뿐이다.

간단한 결론 : 당장 심의에 나서야

그렇다면 이제 답은 나왔다. 지난 <인사이드경제>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최저임금법이 적용된다는 점은 노사단체는 물론이고 정부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들 중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워 시간·일·주 또는 월 단위로 최저임금액을 결정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그 경우에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법 5조 3항 및 시행령 4조에 따라 생산고(生産高) 또는 과업 단위로 최저임금액 심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이건 헌법과 현행법을 준수하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조치이다.

만일 이들의 최저임금액 설정이 이뤄진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못하는 유사 업종 노동자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 보험모집인에 대해 최저임금액 설정이 이뤄질 경우, 근로자로 인정되지 못한 동종업 종사 보험모집인에 대해서도 매우 쉽게 제도 설계가 될 것이라는 점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2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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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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