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이지 않을 수 있다면?

[나원준의 좌회전 경제] '수요독점'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를 때 고용을 늘리는 편이 기업에 유리

1975년 10월 20일 미국 잡지사 <비즈니스위크>는 그 해 노벨 경제학상을 영국의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 여사가 수상했다는 오보를 송출했다. 로빈슨은 뚜렷한 진보 성향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장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여겨져 온데다 마침 1975년이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였던 것이 오보의 배경이었다. 그 해 로빈슨의 수상이 불발되면서 최초의 여성 수상자는 2009년에나 나올 수 있었다.

훗날 진보적 케인스 학파의 또 한 사람의 시조가 된 로빈슨의 이론적 업적 가운데 하나는 시장지배력을 가진 수요자(구매자)를 상정하는 '수요독점' 개념을 정초한 것이었다. 수요독점 개념은 잘 알려진 것처럼 저임금 노동시장을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 틀이다. 오늘은 독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이 수요독점 개념을 소개함으로써 2024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에 대한 영향을 다시 한 번 짚어보려고 한다.

수요독점이 뭔데?

먼저 이렇게 물어보자. 노동시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일 때 우리는 그 노동시장을 수요독점이라고 할까? 일단 수요독점은 해당 업종에서 노동력을 구매하는 사용자 기업이 소수로 한정된 경우에 나타나기 쉽다. 그래야 각 사용자가 일정한 시장지배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장지배력이란 쉽게 말해 사용자가 임금을 일방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극단적으로 하나의 기업만 존재해 업종 내 모든 노동자를 상대한다면 그 기업은 완전한 시장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꼭 기업이 하나일 때에만 수요독점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사용자가 임금을 자기 계산에 따라 자신의 뜻대로 책정할 수 있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수요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별 노동자는 사용자가 제시하는 임금 수준에 따라 노동력을 판매할 수도 있고 반대로 노동력 판매를 철회할 수도 있다. 임금이 너무 낮으면 다른 일자리를 찾는 선택을 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사정에 따라서는 임금 수준이 낮더라도 어쩔 수 없이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그럴 때 노동 공급이 '비탄력적'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이 다른 일자리로 옮겨가기 어려울수록 노동 공급은 비탄력적이다. 수요독점은 사용자가 소수이면서 노동 공급이 비탄력적인 조건에서 흔히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여성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수요독점 특성이 현저하다. 그래서 수요독점은 성별 임금 격차를 설명하는 유용한 분석 도구도 된다.

카드와 크루거의 연구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인다는 기존 상식을 깨는 결과

경제학에서 수요독점 개념이 주목받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에 미치는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잘 알려진, 미국 패스트푸드 산업에 대한 실증 연구가 그것이다. 그 연구에서 경제학자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는 1992년 뉴저지 주의 최저임금이 인상된 이후 뉴저지 주 패스트푸드 식당의 고용 규모가, 최저임금 인상이 없었던 인접한 펜실베이니아 주 패스트푸드 식당에 비해 더 많이 늘어난 사실을 발견했다. 그 발견은 기존 상식과는 정반대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오히려 늘릴 수 있다는 것이었기에 당연히 치열한 논쟁이 뒤따랐다. 하지만 돌아보면 한 가지 시사점은 분명한 듯하다. 요컨대 저임금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수요독점 현상이 확인된 것이었다.

노동시장이 수요독점일 때 사용자는 고용을 늘리기를 주저한다. 자칫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려다가 임금을 올려줘야 할 수 있는 탓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윤을 가장 크게 하는 만큼만 일자리를 제공한다. 오늘의 이 글은 그런 경우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기존 상식과 달리 오히려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경제학의 설명을 독자들에게 안내하려는 것이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 글은 어떤 급진적인 주장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가장 전형적인 주류 경제학의 설명 방식을 따른다. 설명을 가급적 쉽게 하려면 아무래도 예를 드는 편이 좋겠다.

숫자 예로 살펴보는 수요독점 노동시장

이제 노동시장에 하나의 사용자 기업과 두 명의 노동자가 있다고 하자. 노동자들이 고용되면 각자 월 300만 원만큼의 수익을 기업에 벌어준다고 가정하겠다. 이 노동시장의 최저임금은 월 150만 원이다. 그런데 첫 번째 노동자 광수는 최저임금 150만 원만 받아도 노동력을 판매해야 할 사정이 있다. 반면에 두 번째 노동자 영호는 월 250만 원을 받아야 자신의 노동력을 기업에 판매한다고 하자. 월급이 250만 원이라면 광수와 영호 모두 기업에 취직하려고 할 것이다.

먼저 기업이 광수를 고용하면 최저임금 150만 원을 지급하고 300만 원의 수익을 벌어들이게 된다. 월 150만 원이 이윤으로 남는다. 이윤이 생긴다면 기업은 광수를 고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두 번째 노동자 영호도 고용하려고 할까? 그 가능성을 따져보자.

최저임금 인상 전, 광수를 고용하면 기업의 비용은 150만 원이고 수익은 300만 원이므로 광수는 고용된다

광수에 이어 영호를 추가로 고용할 때 이윤이 늘어나면 기업은 영호를 고용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이윤이 줄어든다면 기업은 영호까지는 고용하지 않으려고 들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영호를 고용할 때 기업의 이윤이 과연 늘어나는지 따져보면 된다.

먼저 기업이 영호를 고용하면 수익은 어떻게 될까? 가정대로 300만 원만큼 늘어난다. 광수의 기여까지 더하면 총수익은 600만 원이 된다. 그런데 영호를 고용하려면 250만 원을 줘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땐 광수가 받는 월급도 당연히 같은 금액으로 올려줘야 한다. 기업으로서는 영호를 추가로 고용할 때 영호 월급 250만 원과 광수 월급 인상분 100만 원, 도합 350만 원만큼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하지만 영호 고용의 추가 수익이 300만 원이라고 했다. 추가되는 비용 350만 원과 추가되는 수익 300만 원을 비교해 보자. 영호까지 고용하려고 하면 비용이 수익보다 더 많이 늘어난다. 기업으로서는 영호를 추가 고용하는 것이, 추가 고용하지 않는 것보다 손해인 셈이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은 광수만 고용하고 영호는 고용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 전, 영호까지 추가 고용하면 기업의 추가 비용은 350만 원이고 추가 수익은 300만 원이므로 영호는 고용되지 않는다

이제 이 노동시장의 최저임금이 월급 15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고 하자.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떤 차이가 생길까? 다시 광수부터 따져보자. 기업은 광수를 고용할까? 고용한다. 광수를 고용하면 인상된 최저임금 250만 원을 줘야 하지만 광수 덕에 300만 원을 수익으로 챙길 수 있으니까 50만 원의 이윤을 남길 수 있어서다.

그럼 영호는 어떨까? 기업이 광수에 이어 영호까지 고용하려고 하면 이번에는 추가로 영호 월급 250만 원의 비용만 더 든다. 광수 월급은 이미 250만 원을 주고 있으므로 더 올려줄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다. 그런데 영호가 추가로 고용되면 수익이 300만 원만큼 늘어난다. 300만 원 추가 수익에서 250만 원 추가 비용을 빼면 영호를 추가 고용하는 것이 기업한테 유리한지 불리한지가 정해진다. 계산하면 이윤이 50만 원만큼 늘어나는 결과다. 그렇다면 영호도 고용해야 기업이 돈을 더 번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이라면 최저임금이 오른 후 영호를 추가로 고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난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제4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 후, 광수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영호까지 추가 고용하면 기업의 이윤이 늘어나므로 영호한테도 새로 일자리가 생긴다

지금 이 수치 예는 어떤 사실을 보여주는가? 수요독점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이 15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오르자, 광수의 일자리가 없어지기는커녕 예전에는 고용되지 않았던 영호한테도 일자리가 생기는 일이 벌어졌다. 최저임금이 올랐더니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노동시장이 수요독점일 때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는 이론적 가능성은 어디 이상한 족보 없는 낭설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이미 오래전인 1940년대부터 경제학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수요독점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이 누차에 걸쳐 지적되어 왔다. 이를테면 일찍이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와 리처드 레스터가 각각 1946년과 1947년에 세계 최고의 저명 학술지 <미국 경제학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 발표한 논문들에서도 그와 같은 주장이 버젓이 제기된 바 있는 것이다. 마치 상식에 반하는 것처럼 보였던 (앞서 소개한) 카드와 크루거의 연구 결과야말로 유서 깊은 이론적 배경을 갖춘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완전경쟁 논리에 근거해 최저임금을 결정할 일 아니다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일 거라는 기존 상식은 후대의 여러 실증 분석에서 그리 강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적지 않은 연구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늘릴 수도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어 왔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왜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어쩌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비유되는 자유경쟁시장에 대한 착각과 집착이 오늘 우리 사회에 강고한 보수 이데올로기로 이미 굳게 자리 잡은 때문일 수 있다. 이미 시장 원리주의 이념이 우리들에게 내면화된 때문일 수 있다.

보수파 경제학자들의 시장 원리주의는 어떤 사회적 결정도 시장을 거스르면 안 된다고 설파한다. 모든 결정이 시장 원리대로 자본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막상 그들의 주장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완전경쟁시장'을 마치 현실인 양 간주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노동시장이 수요독점이 아니라 완전경쟁이라면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줄인다. 임금을 올리면 기업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고 노동자들의 노동 공급이 늘어나므로 실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완전경쟁시장의 간증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런 설명이 현실에 대한 적합한 묘사가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가장 초급의 어떤 경제학 교과서라도 완전경쟁시장이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완전경쟁시장은 서양의 중세 전설에나 나오는 '유니콘' 같은 것이다. 반면에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수요독점 특성이 발견된다는 증거는 결코 적지 않다. 애써 눈감지 않는 한 그 증거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현실에 눈감고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니콘의 논리를 근거로 사회적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그것이 최저임금처럼 수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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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

나원준 경북대학교 교수는 거시경제학과 화폐금융론 등을 가르치며 진보적인 관점의 경제발전 모형과 대안적 경제정책 체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경제학>, <MMT 논쟁> 등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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