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권리는 플랫폼·특수고용만 비켜가나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현행법으로도 보장할 수 있는 권리 모른 척하는 정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잖아요. 그럼 최저임금법 적용대상이 아닙니다."

플랫폼노동자나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면, 고용노동부나 최저임금위원회 관계자들은 깊은 고민 한번 없이 이렇게 답변한다. 정부에 플랫폼·특수고용은 그저 귀찮은 존재인 걸까.

무성의한 답변이 가진 2가지 허점

그들의 논리에는 허점이 많다. 첫째, 그렇다면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백퍼센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란 말인가? 만일 그들 중에 소송 등의 절차를 거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은 경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최저임금법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제한해 놓았지만 최저임금 이상을 누릴 권리는 헌법에 명시된 것이다. 이 권리의 수혜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만 제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얘기인가.

헌법 제32조 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최저임금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근로자", "사용자" 및 "임금"이란 '근로기준법' 제2조에 따른 근로자, 사용자 및 임금을 말한다.

그런데 두 번째 쟁점과 관련해서는 최저임금법보다 헌법이 앞서느니 어쩌니, 헌법상 근로자 개념이 훨씬 넓으니 어쩌니 등의 복잡한 내용들을 다룰 수밖에 없어서 독자들 입장에선 다소 학술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 있겠다. 그래서 좀 더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첫 번째 쟁점을 중심으로 논리를 풀어보도록 한다.

법원에서 '근로자'로 인정한 플랫폼·특수고용 사례들

자, 그럼 플랫폼·특수고용으로 분류되면 죄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서 배제되는 걸까? 혹시 근로자로 인정된 사례들도 있지 않을까?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혹시'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사례들이 차고 넘친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몇 시간 동안 언론 보도 검색만을 했을 뿐인데도 이 정도 리스트가 나온다.

▲최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은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사례. ⓒ오민규

사례를 살펴보면 "어? 이런 업종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보험모집인 같은 경우는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판결도 있었지만 '근로자'로 인정한 판결도 꽤 존재한다.

근무형태와 업무 지휘·감독의 방식에 따라 법원은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본 후 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특정 업종이라고 해서 일괄적으로 '근로자'라고 봐서도 안 되지만 모조리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봐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도 잘 알고 있는 사례들

사실 이런 사례들을 고용노동부가 모른다고 하면 거짓이다. 법원 판결이 나오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내보낼 뿐만 아니라, 사회 여론이 집중되기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해당 업종 근로감독에 나서며 실태조사를 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고용노동부가 직접 판정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플랫폼노동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업종인 배달 라이더 사례를 들어보자. 2019년 11월에 고용노동부 서울북부지청은 '요기요' 앱을 통해 일하던 라이더에게 플라이앤컴퍼니(요기요의 자회사)가 오토바이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고 유류비도 부담하면서 구체적인 업무 지휘·감독을 했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정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법원 판결(광주지법, 2023.6.13.)이 있었던 방송사 프리랜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1년 사상 최초로 고용노동부가 지상파 방송 3사 방송작가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조사가 완료된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한 바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이런 판정을 해오고 있음에도 플랫폼·특수고용과 최저임금 권리를 얘기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허들을 넘고 나서 얘기하라는 답변을 내놓고 있으니 얼마나 무성의한가 말이다.

'근로자'라고 서류에 적어놓고도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의 이력내역서. ⓒ오민규

위 자료는 웹툰작가노조 하신아 위원장의 고용보험자격 이력내역서이다. 웹툰작가 역시 대표적인 플랫폼노동자로서 사람들은 대부분 프리랜서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역서 내용을 잘 살펴보면 2021년 5월 1일부터 11월 16일까지는 '근로자'로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니, '근로자'라고?

그렇다. 제발 플랫폼·특수고용은 모조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닐 거라는 편견과 선입견 좀 버리자. 웹툰작가 상당수가 근로계약서를 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근로계약서와 프리랜서 계약서 등 여러 종류의 계약서를 작성한다.

내역서를 다시 보면 2020년 12월 10일부터 2021년 4월 30일까지는 '근로자'가 아니라 '예술인'으로 되어 있는데, 이 경우는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컨텐츠 납품계약 등 다른 계약서를 작성해 고용보험법상 예술인 트랙으로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용보험·산재보험자격 이력내역서는 근로복지공단, 그러니까 고용노동부가 전반적인 사무관리와 집행을 도맡아 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웹툰작가들이, 아니 얼마나 많은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근로기중법상 근로자'로 분류되고 있는지, 마음만 먹으면 고용노동부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있는 법이라도 잘 지키고 있나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고용노동부에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택배 기사, 제화공, 보험모집인, 채권추심인, 정수기 설치·수리기사, 배달 라이더, 웹툰작가, 방송작가, 재택근무 모니터링요원, 헬스트레이너 … 당신들이 '근로자'로 인정한 이들에게 최저임금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 확인은 해봤냐고 말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어야만 최저임금법이 적용된다는 답변만 늘어놓는데, 그럼 그 허들을 넘어온 '근로자'들에 대해 최저임금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근로감독은 제대로 해봤는가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이다. 즉, 시간당 최저임금에 노동시간을 곱해야 임금계산이 가능하다. 이 경우 노동시간을 제대로 측정해야만 최저임금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지 아닌지, 법을 위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업종들을 살펴보자. 웹툰작가의 노동시간은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상당수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을 텐데? 영업을 뛰는 보험모집인은? 건당으로 보수를 지급받는 택배기사, 레미콘기사, 배달 라이더의 경우는?

사실 한국의 최저임금법은 이런 경우에 대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최저임금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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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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