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월세 114만원 시대, 임대사업자 등록은 물건너?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대책 발표..."세입자 보호대책 알맹이 빠져"

서울의 평균 월세는 114만9000원. 월 200만 원 수입을 가진 월세 살이 직장인이라면, 월급의 절반을 이른바 '집주인'에 고스란히 넘겨야 한다는 말이다. 살인적이다. 그만큼 '탈세'가 많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거액의 자산가가 월세살이 직장인을 착취하는 구조. 이에 대한 해법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나오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등록 임대주택을 늘려 세입자 주거권을 강화하기 위해 등록 임대주택 사업자에게 지방세와 임대소득세 등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주고, 건강보험료도 깎아주기로 했다. 이 같은 등록 유도책을 통해 오는 2022년까지 주거복지로드맵 목표인 등록 임대주택 200만 호와 공적 임대주택 200만 호 등 공적 규제를 적용 가능한 임대주택을 총 400만 호로 늘리겠다는 정책 목표도 밝혔다.

다만 정부는 이번에 내놓은 유도 정책에도 불구하고 임대 사업자 등록이 지지부진할 경우 2020년 이후 임대 사업자 등록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주택 임대사업자 등록 의무제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인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내년 4월부터 다주택자의 사업자 등록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사실상 크게 물러난 모양새가 됐다.

특히 세입자 보호책의 핵심인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등도 명시적으로 적용되지 못해 일각의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단체는 오는 14일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무기력한 주택정책을 비판할 예정이다.

임대 사업자 등록 시 세금 대폭 감면

13일 국토교통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등이 망라된 관계부처 합동 회의 결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정부 발표안의 핵심은 임대 사업자 등록 인센티브를 마련, 임대인의 자발적 사업자 등록을 유도한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동주택·오피스텔 건물주가 임대 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취득세와 재산세를 차등 감면해주기로 했다. 당초 내년 말로 예정된 해당 혜택의 일몰 시한을 2021년까지 3년 더 연장하는 방안이다.

특히 서민을 대상으로 등록 사업자가 집을 빌려줄 경우, 세금감면 혜택 폭을 키우는 방안을 정부는 담았다.

구체적으로, 임대인이 보유한 주택 중 전용 40㎡ 이하 소형주택을 한 채라도 8년 이상 장기임대할 경우 2019년부터 재산세를 감면해준다. 기존에 있던 재산세 감면 호수기준(2호 이상)을 폐지했다.

임대소득세 과세는 정상화를 추진하는 한편 등록 사업자를 대상으로는 감면을 확대, 사업자 등록을 유도하는 동시에 과세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내년까지로 유예된 연 2000만 원 이하 임대소득자 분리과세를 예정대로 2019년부터 재개한다. 건강보험료도 다시 부과한다.

이에 따라 커지는 집주인의 임대소득세, 건보료 부담은 필요경비율을 현행 60%에서 70%로 높여 상대적으로 세금을 낮춰주기로 했다. 반면 미등록사업자에게는 필요경비율을 50%로 차등 조정, 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기로 했다.

필요경비율이란 간단히 말해 대형 사업자가 아닌, 장부를 기록하지 않는 사업자에게 사업 필요경비를 공제해 소득금액을 계산하기 위해 정부가 일정 기준에 따라 경비율을 일괄 적용하는 제도다.

즉, 새 제도가 적용되면 임대사업에 필수적으로 소요되는 경비 수준이 등록 임대 사업자의 경우 현행 60%에서 70%로 오르므로 그만큼 세금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반면 미등록 사업자의 세금 부담은 더 커진다.

주택임대소득 외 다른 종합소득액이 2000만 원 이하일 경우, 등록 사업자일 경우 임대소득 1333만 원까지, 미등록 사업자에게는 800만 원까지 소득세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일정액 이하의 임대 수익을 올리는 사업자는 소득세 감면 혜택을 적용받기 위해서도 사업자 등록을 하는 게 유리한 셈이다.

임대소득에 따른 임대소득세 납부금액 수준은 다음과 같다.

ⓒ국토교통부 제공

정부는 8년 이상 임대사업자에게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도 늘려주기로로 했다. 준공공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주택을 8년 이상 장기 임대하는 사업자에게는 오는 2019년부터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비율을 현행 50%에서 70%로 올려준다.

아울러 정부는 양도세 중과 배제, 장기보유특별공제 및 종합부동산세 합산배제 대상을 현재 5년 이상 임대 사업자에서 내년 4월부터는 준공공임대로 등록해 8년 이상 임대하는 경우로 변경, 장기임대주택 공급을 유도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 제공


정부는 건강보험료 과세의 경우 임대소득 정상과세 방침에 따라 정상 부과한다는 큰 원칙을 세우되, 2020년 말까지 등록한 연 2000만 원 이하 임대 사업자에게는 임대 의무기간 동안 건보료 인상분을 임대 기간에 따라 8년 장기임대할 경우 80%, 4년은 40% 깎아주기로 했다.

건보료 감면 연장 여부는 2021년 이후 상황을 고려해 다시 검토키로 했다.

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 청구권 못 담아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이번 대책을 두고 "임대등록 의무화 제도는 사실상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 추진"이라며 "이번 정부 방안은 향후 5년간 정부의 주거안정을 위한 구체적 실천계획"이라고 못박았다.

이번 대책의 세금 감면 초점이 8년 이상의 장기임대에 맞춰진 만큼, 귀책사유가 없는 한 세입자는 임대의무기간 4년 혹은 8년간 한 집에 살 수 있으므로 사실상의 계약갱신청구권 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아울러 등록 임대사업자의 경우 임대료를 연 5% 이상 올릴 수 없게 되므로, 전월세상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의미도 있다고 정부는 밝혔다.

하지만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명시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부 대책은 어디까지나 임대인을 규제 틀 안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만 어느 정도 실효성이 보장되는데, 불확실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임차인 권리 보호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즉, 알맹이 없는 세입자 보호책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시민사회단체와 관련 전문가 등은 세입자 권리 보호책의 핵심으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부여를 꼽아왔다. (☞관련기사 : "청와대 직속 주택청 만들고 주거를 '복지'로 접근하라")

김현미 장관이 명시한 임대사업자 등록 의무화도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안에 따르면 2020년이 되어야 임대주택 등록 의무제 적용 여부가 결정될 예정인데, 이 때 이미 임기 말에 들어간 현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밀어붙일 동력을 얻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방안에서 정부가 마련한 명시적 임차인 보호책은 전세금 반환보증 시 임대인 동의절차 즉각 폐지다. 현재는 세입자가 집주인의 사전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보증 가입이 불가능한데, 이 폐단을 없애 세입자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심산이다.

또 가입대상 전세보증금 한도도 수도권은 기존 5억 원에서 7억 원으로, 지방은 4억 원에서 5억 원으로 올렸다. 보증료 할인폭은 내년 2월부터 저소득·신혼·다자녀 가구 등을 대상으로 기존 30%에서 40%로 올리기로 했다.

임대차계약 갱신 거절 통지기간은 기존 계약 만료 1개월 전에서 계약 만료 2개월 전으로 단축키로 했다. 집주인이 2개월 전에 세입자에게 새 계약 거절을 통지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계약을 연장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기존에는 피신청인이 조정을 거부하면 조정 개시가 불가능해 유명무실했던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경우 앞으로 분쟁조정 신청이 제기되면 피신청인 의사와 관계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키로 했다.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월세 난민 국가"

이번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현미 장관은 "그간 정부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주택 공급을 확대해 왔지만 자기 집을 장만한 가구는 60% 내외에 머물러 있는데, 선진국 대부분의 자가보유율이 60% 내외"라며 "가계부채 건전성을 고려할 때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주택 정책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장관은 이날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 대다수 세입자는 원치 않아도 2년에 한 번씩 껑충 뛰어버린 전월세 때문에 더 멀고 좁은 곳으로 떠밀리는 이른바 '전월세 난민'이 된 지 오래"라며 "이날 대책을 비롯해 서민을 위한 주거 안정 정책을 꾸준히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살고 싶은 곳에서 오래오래 사는 것은 복지 차원을 넘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라며 "세입자에게 전월세 이사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집주인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1937만 가구 중 43.2%인 835만 가구가 임차가구다. 이 중 공공임대 136만, 법인임대 42만, 무상임대 77만 가구를 제외한 총 580만 가구가 전월세 형태로 세입자가 거주하는 전형적 사적 임대차가구다.

주택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기준 주택재고 1988만 채 중 임대용 주택은 595만 채로 추정된다. 이 중 등록임대주택은 79만 채로 임대용 주택의 13%에 불과하다.

즉 임대용 주택의 87%에 달하는 516만 채가 제대로 된 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어, 세입자가 2년 마다 과도한 임대료 상승 등 집주인의 폭리 위험에 노출됐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전월세 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의 한 집 거주기간은 평균 3.5년에 불과하다. 전국 아파트 전세값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73%나 오른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이날(13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평균 월세는 114만9000원에 달했다. (☞관련기사 : 서울 평균 월세, 무려 114만9천원)

하지만 이처럼 세입자의 어려움을 확인했음에도 알맹이가 빠진 정책을 내놓음에 따라, 이번 대책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긍정적일지는 미지수다.

이번 정부 발표안을 두고 주거권네트워크와 민달팽이유니온, 민변 민생경제위, 참여연대, 한국도시연구소, 경실련은 14일 오전 10시 30분 참여연대에서 긴급 좌담회를 열어 정부 정책을 평가하는 한편, 이번 대책에 전월세상한제 도입이 무산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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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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