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살 청년은 왜 자신의 턱에 총을 겨누었나?

'6사단 GP 사망 사건' 왜 발생했나…"선임병들의 가혹 행위로 인한 죽음"

박모(21) 씨는 1남 1년 중 막내로 대학교에 입학한 뒤, 한 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2015년 7월의 일이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 학교생활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랬기에 처음에는 군에도 잘 적응했다. 하지만 입대한 지 두 달이 지난 9월, 6사단 GP로 전입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부대 선임들의 욕설과 인격모독성 발언, 그리고 거침없는 폭력이 박모 씨를 힘들게 했다. 모든 게 상상 이상이었다.

선임들은 자기들 빨래를 박 씨 등 후임들에게 떠넘기고 제때 하지 않으면 욕설과 폭력을 퍼부었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정강이도 여러 차례 차였다. 특히 유 모 병장은 근무가 미숙하다며 개머리판으로 박 씨를 때리는 일도 발생했다. 그러한 폭행이 CCTV를 보고 있던 부GP장 손 모 중사에게 발견됐지만 가해자에게 내려진 처분은 'GP 철수'뿐이었다.

폭력을 행사해도 뒤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GP 철수 명령을 받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서였을까. 이후부터 선임들의 본격적인 폭력과 욕설 등 가혹행위가 박 씨에게 가해졌다.

여자친구와 헤어져 괴로워하는 박 씨에게 "객관적으로 지금 네 전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와 모텔에서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모욕하는가 하면, 박 씨가 선임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그 말밖에 모른다고 욕설을 하고, "죄송합니다" 외에 다른 말을 하면 말 대답을 한다고 욕설을 하기도 했다.

박 씨 어머니와 누나를 성적 대상화하는 패륜적인 발언도 들어야 했다. 이는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박 씨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는가 하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며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박 씨 머리를 때리는 일도 있었다.

"북한을 감시하면 뭐하냐, 전쟁터는 여기 있는데"

그런 가혹행위가 반복됐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2016년 2월, 북한이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에 따른 대북확성기방송 재개와 개성공단 폐쇄 논란으로 남북 대치 국면이 진행됐다. 박 씨가 소속한 부대는 대비태세로 초소 근무 등 업무가 증가했다.

그러던 중 분대 내 4명의 사수가 교대로 근무해야 하는 진지 근무가 모두 박 씨에게도 전가됐다. 박 씨가 막내 사수라는 이유에서였다. 이것도 선임병이 지시한 사항이었다.

이에 박 씨는 GP 특성상 영하 10~15도 날씨에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 화력 근무를 섰다. 일주일 간 소속 분대에 할당된 총 10회의 화력 근무를 박 씨 혼자서 했다. 하루에 두 차례 근무를 나간 적도 있었다.

박 씨는 화력 근무에 빨래 등 분대 업무까지 모두 처리하느라 휴식시간은 거의 가질 수 없었다. 그나마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질 때면 어김없이 선임들이 찾아와 괴롭히기 일쑤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 사실을 알던 부대 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박 씨는 근무 중 후임병에게 "북한을 감시하면 뭐하냐, 전쟁터는 여기 있는데"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달이 났다. 그 말을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2016년 2월이었다. 초소에서 근무를 서던 박 씨를 선임병이 일부러 찾아와 또다시 폭언을 퍼부었다. 선임병이 간 뒤, 한숨을 쉬던 박 씨는 그다음날 새벽, 자신이 있던 초소에서 자기 턱에 총을 쏴 사망했다.

ⓒ프레시안(허환주)

군인권센터 "가해자들은 살인자"

군인권센터는 24일 서울 중구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6사단 GP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 기자회견을 열고 "박 씨가 평소 우울증세를 보이거나 기타 자살 징후를 보인 적이 없었다"며 "선임병들의 행태가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박 씨에게 가혹행위를 가했던 세 명의 선임병들은 5군단 군사법원에서 1심 재판을 받았으나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아직 젊고 전과가 없으며 범행을 인정했다는 게 양형 이유였다.

군인권센터는 "2016년 9월 박 씨 사망사건을 접수하고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며 "이 과정에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자살의 원인임을 인지했고, 선임병의 폭행 사건에 대한 군의 은폐가 이후 발생한 가혹행위 전반의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가해자들은 단순히 폭행과 가혹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다"라며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자"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럼에도 가해자들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군사법원에서 가혹행위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무시했기 때문"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2심 재판에서는 마땅히 가해자 전원에게 실형을 선고해 법의 심판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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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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