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대한민국 사회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2014년 2월, 경주 마리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 대학생 등 10명이 숨지는 참사를 시작으로 연일 사고와 사건이 끊이지 없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이 뭔지를 묻는 것조차 잔인해서 말하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어떤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이 그 현상과 원인을 짚고 해법을 찾는 데 의기투합했고 그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바로 <그 청년은 왜? 군대 가서 돌아오지 못했나>(나무와숲, 2014년 12월 펴냄)가 그것이다.
어둠 속에 묻힐 뻔했던 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
그런 결과로 가해자가 구속되고, 또 사망한 윤 일병이 이례적인 속도로 순직 안장됨으로써 사람들은 그 사건을 잊었다. 윤 일병의 죽음은 안타까웠으나,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았던 2014년 대한민국에서 그의 죽음은 오랫동안 기억될 수 없었다. 비슷한 기간에 귀한 인명 304명이 숨진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또 그 두 달 후인 6월에는 육군 22사단에서 임 모 병장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같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잊혔던 윤 일병 사건이 응축된 분노로 다시 폭발한 것은 사건 발생 후 넉 달 가까이 지난 같은 해 7월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그동안 군이 국민에게 보고해온 윤 일병 사건의 진실이 매우 달랐다는 것을 시민 단체인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가 고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31일 오후,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선임병 다수의 명백한 살인 행위로 윤 일병이 사망한 것"이라며 그동안 벌어진 온갖 범죄 행위를 폭로했다.
이날 군인권센터가 폭로한, 주범 이 모 병장 등 선임병 4명과 소대 책임자 유 모 하사가 윤 일병 전입 후 사망 때까지 한 달간 벌인 학살극은 그야말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필자 역시 윤 일병 사건에 대한 군 검찰의 수사 기록 1000여 쪽을 전부 읽었는데, 그간 온갖 유형의 범죄를 다뤄본 경험이 있지만 윤 일병이 당한 고통은 참으로 끔찍했다.
윤 일병이 당한 고통의 유형은 다양했다. 먼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신체적 폭력은 분명 '상해'가 아니라 '살인'이었다. 숨진 윤 일병의 상반신은 그야말로 '멍', 그 자체였다. 윤 일병이 입고 있던 푸른 군복보다 그의 몸에 남은 더 푸른 멍 자국을 보며 나는 눈물을 왈칵 쏟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가해자들은 그야말로 윤 일병이 '죽을 때까지'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심지어 주범 이 병장은 자신이 때리다 지치면 자기보다 두어 달 후임인 하 병장에게 대신 때리라고 지시했고, 그러면 지시받은 이들이 이어서 때렸다. 이것이 살인 행위가 아니라면 뭐라고 부를 수 있나? (관련 기사 : "원정 출산 안 한 것 후회", 28사단 사건에 들끓는 민심)
윤 일병이 당한 살인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1000여 쪽의 수사 기록을 보면 윤 일병이 당한 언어적, 정신적 학대는 어쩌면 윤 일병에게 더 큰 고통을 줬을 것이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을 장난감으로 여겼다. 앉아 있다고 때리고, 그래서 서 있으면 서 있다고 때렸다. 윤 일병의 누나를 거론하며 성적 추행을 가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느꼈을 윤 일병의 고통이 어떠했겠는가. 이미 죽어 말할 수 없을 뿐, 그 심정을 헤아릴 길이 없다. 생각해보라. 그때 윤 일병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온갖 유형의 범죄를 다뤄봤음에도 윤 일병 기록 보며 눈물 쏟은 이유
윤 일병은 참 착한 아들이었다. 훈련소 입대 후 "지금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뭐냐"는 신상 질문지에 윤 일병은 "이 못난 아들을 군에 입대시키기 위해 비가 오는데 훈련소까지 데려와 준 어머니가 다시 혼자 비 오는 고속도로를 운전하여 돌아가시는 것이 가슴 아프다"라고 썼다. 나는 윤 일병의 그 글을 읽고 혼자 엉엉 울었다. 그렇게 착하고 착한 윤 일병은 그러나 끝내 그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기회는 있었다. 죽기 전, 윤 일병의 부대에서 부모 개방 행사가 열렸다. 이날 윤 일병은 자기도 어머니를 초청하고 싶다고 선임병들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이 살인 사건의 사실상 더 큰 주범격인 소대 책임자 유 하사가 윤 일병을 불렀다. 그러면서 윤 일병에게 한 번 걸어보라고 지시했다. 윤 일병은 걸었다. 하지만 선임병에게 맞은 한쪽 다리를 절뚝였다. 그러자 유 하사가 말했다.
"그렇게 다리를 절뚝이는데 그 모습을 너희 어머니가 보시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냐. 그러니 다리가 낫고 그다음에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 더 좋겠다."
결국 부대 개방 행사에서 윤 일병은 어머니를 부르지 못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를 보지 못한 윤 일병은 그 후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그날, 비통한 최후를 맞이했다. 맞아 죽었다. 그 어떤 말로 이 분노를, 울분을, 서러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윤 일병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못난 우리 때문에 윤 일병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한편 소대의 최고 책임자 유 하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 이 병장을 비롯하여 소대 선임병들에게 윤 일병이 거의 매일 맞고 있었다는 것, 이로 인해 온몸에 멍이 들어 보행조차 힘들다는 사실까지도. 그렇기에 윤 일병에게 걸어보라고 한 것이고, 끝내 윤 일병의 어머니가 부대 개방 행사에 오지 못하도록 적극 노력한 것이다.
유 하사가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던 이유는 군 검찰 수사 기록에 잘 적혀 있었다. 사실 주범인 이 병장이, 그리고 나머지 가해자들이 윤 일병을 때린 이유는 유 하사의 지시 때문이었다.
유 하사는 윤 일병이 전입 온 직후부터 이 병장에게 윤 일병을 때리도록 수차례 요구했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지시했다. 부대 내에서 가혹 행위와 구타가 벌어져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며, 말을 더듬고 굼뜬 윤 일병을 때려서라도 가르치라고 한 것이다. 두어 차례는 자신이 직접 선임병이 보는 앞에서 윤 일병을 구타하기도 했다.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간 '또 다른 진짜 주범' 유 하사는 그러나, 지난 1심 판결에서 이 병장보다 훨씬 낮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나는 정말 유 하사,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제2의 윤 일병 어찌 막아야 하나, 그 답이 있는 책
군사 전문가 김종대와 군 인권 전문가 임태훈이 말하고 쓴 책, <그 청년은 왜? 군대 가서 돌아오지 못했나>는 바로 군대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과 철학, 그리고 개혁 비전을 담은 귀한 지식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군사 안보 전문가인 김종대는 현재 군사 안보 전문지인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강연과 저술로 '진짜 안보'가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역설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 명, 지금까지 언급한 윤 일병 사건을 용기 있게 세상에 알린 군 인권 운동가 임태훈은 2009년 시민 단체인 군인권센터를 설립한 후 소장으로 일하면서 많은 공적을 쌓았다. 훈련소 입소 후 뇌수막염으로 숨져간 2011년 고 노우빈 훈련병 사건도, 2013년 뇌종양으로 고통 받던 군인에게 군이 두통약만 처방하다 끝내 죽인 고 신성민 상병 사건도 임태훈 소장의 노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었다.
가장 최근에 대두된 사건은 육군 여군 오 대위 사망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유부남이면서 상관인 노 모 소령이 부하인 오 대위에게 성적 요구를 강요했던 충격적 성 군기 위반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범죄 행위를 견디지 못해 오 대위가 목숨을 끊자, 군은 오 대위의 순직 처리를 거부하고 마치 개인적 사정에 의해 목숨을 끊은 것처럼 진실을 조작하려 했다. 이를 바로잡은 이 역시 바로 임태훈 소장이었다. 이러한 공을 인정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2014년 KNCC 인권상 수상자로 임태훈 소장을 선정했다. 마땅한 일이었다.
이처럼 군 관련 두 전문가가 자신들이 각기 경험한 사례를 토대로 오늘날 군 인권의 현실과 대안을 적나라하게 제시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군의 반인권적인 문화와 그 문화가 내려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다뤘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이러한 반인권적 군 피해 사례를 생생하게 담았다. 28사단 윤 일병 사건과 22사단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과정에서 아직 다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묶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 3부에는 그래서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답이 들어 있다. 우리 군대가 해결해야 할 진짜 인권 문제가 무엇인지 한 사람은 군사 전문가로서, 또 다른 사람은 군 인권 전문가로서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2의 윤 일병이, 그리고 총기를 난사하는 또 다른 임 병장이 나오지 않을 해법을 제시한다.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죽이는 야만적 비극이 군에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간절한 호소가 담긴 책이다.
저자들은 입대를 앞둔 청년들과 그 부모들이 꼭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책머리에 썼다. 하지만 나는 욕심을 더 내고 싶다. 군에 입대할 사람만 읽지 말고 국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 그리고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만큼은 꼭 좀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의 문제 인식에 공감한다면 이 책을 전군에서 정신 교육 필독서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윤 일병 사건이 발생한 후 국방부와 정부, 그리고 국회는 '군 인권 개선 및 병영 문화 혁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군을 새롭게 바꾸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각 소대에 소위 '엄마 폰'을 넣어주고, 또 햄버거 사이즈를 좀 더 크게 해준다는 식의 해법만 만지작거리는 국방부 태도를 비판한다. 군인을 위한 의식주 개선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이미 해줬어야 할 일인데, 그런 것을 가지고 군 인권 문제를 바꾼다며 요란을 떠는 것은 여전히 '쇼'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문제는 병사의 목숨 값이 비싸지고 병사를 귀하게 대접하는 군 문화의 정착이다. 누구도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는' 죽어서는 안 된다. 죽지 않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관련 기사 : "윤 일병 사건? 내겐 충격적이지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답을 제시한다. 건강하게 입대한 청년이 21개월 후 다시 그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군 인권 개선'임을 국방부는 명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 책 <그 청년은 왜? 군대 가서 돌아오지 못했나>를 필독해야 할 이유다. 군인이 사람답게 예우 받는 세상, 그게 진짜 군 인권 개선이라는 말이다. 함께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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