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도 버렸나…박근혜에 쏠리는 눈

安 "모든 일은 대통령 지시"…이성한·김종 등도 "대통령 뜻"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논란 국면에서, 점차 박근혜 대통령 본인에게 모든 의혹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정부 부처 차관 등 의혹 핵심 관련자들이 '국정 농단으로 꼽히는 모든 일들은 대통령의 뜻'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증언이 쇄도하면서다.

2일 <동아일보>는 이날 검찰 소환 조사를 받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지인에게 "모든 일은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언 보도했다. 안 전 수석의 지인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등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이라며 "최순실 씨와 박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동아>는 전했다.

앞서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이 '기업의 자발적 기부'라던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안종범 수석이 시켰다'는 취지로 입장을 번복했다. 이 전 부회장은 안 전 수석이 대학 교수일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안 전 수석 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전 부회장이 안 전 수석에게,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가 됐다.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인사 등에 직접 개입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날 이성한 전 미르 재단 사무총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지난 4월 4일 안종범 (당시) 수석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대통령께서 사무총장님의 안부를 물으시며, 그 동안 수고 많으셨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신다'고 말했다"며 "내가 '대통령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게 맞냐'고 반문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이 전 사무총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장은 또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안 수석이 전화를 해 '대통령의 뜻'이라며 의견을 전달해 왔다"고 말했다. 정현식 전 K스포츠 재단 사무총장도 "안 수석이 'VIP 관심사항'이라면서 나한테 재단 운영과 관련한 여러 얘기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관가 주변에서 'VIP'란 통상 대통령을 뜻한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과 관련해서도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청와대의 뜻"을 들먹거렸다고 YTN 방송이 보도했다. 김 전 차관은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며칠 후에 이 방송 취재진과 만나 "세월호에 빠지지 말고, 승마(관련 비리 취재를) 빨리빨리 하란 말이야"라고 다그쳤다. 김 차관은 4월 25일 YTN과 만나 "대통령께서 세월호 난 그 다음 날 '체육 개혁 확실히 하라'고 오더 내려왔어요. 24시간 그 얘기(세월호)만 하나? 정책도 챙겨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순실 일가가 사업 이권을 노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개발 사업에서도 '박 대통령의 뜻'이 회자됐다고 한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에 몸담았던 익명의 관계자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경기장 관중석과 부속 시설을 만드는 3000억 원대 사업을 스위스 업체 '누슬리'에 맡기자고 제안했다고 증언했다. 누슬리는 최순실 씨의 회사 '더블루K'와 사업 파트너 관계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 업체다. 신문은 "문화부가 박 대통령의 회의 발언이라며 '누슬리를 검토해 보라'는 의견을 조직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동계올림픽조직위 위원장이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퇴한 배경도 최 씨 일가의 이권 사업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 진짜 이유였을 수 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조 위원장은 김 장관이 주장한 '누슬리'와의 계약을 거부하고 국내 건설 대기업과 수의계약을 했다. 이 관계자는 김종덕 장관이 5월 2일 아침 조 회장을 만나 갑자기 "이만 물러나 주셔야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사퇴를 종용했고, 조 회장은 놀라 "이유가 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저도 모른다"였다고 당시 회동 풍경을 전했다. 조 회장의 사퇴가 김 장관 등 박근혜 정부 고위층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의혹은 앞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이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박지원 "안종범, 문화부장관에 평창 위원장 해임 지시")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이권 의혹은 최순실 씨의 조카 장유진(장시호로 개명) 씨 등 최 씨의 다른 일가 친인척과도 얽혀 있다. 장 씨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설립과 예산 집행에 관여해 국비 7억 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이날 <중앙일보>는 최 씨의 또다른 조카 이모 씨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전시기획사 'K아트'를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 씨는 최순실 씨의 큰언니 최순영 씨의 차남이다. 이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최태민 손자다', '박근혜 대통령 쪽 일을 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추진하는 광고도 맡았다'는 등의 말을 하고 다녔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씨의 형이자 최순영 씨의 장남은 김한수 청와대 행정관과 고교 동창으로, 김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에도 이같은 인간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있다.

전날 JTBC 방송은, 지난 주말 <시사저널>이 최순실 씨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보도했던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은 최 씨의 아들이 아니라 최 씨의 둘째 언니 최순득 씨의 아들 장모 씨의 처남이라고 보도했다. 장모 씨는 장유진 씨의 오빠다. 즉 평창 동계올림픽, 승마 국가대표 선발, 청와대 행정관 채용 특혜 의혹까지, 갖가지 '국정 농단' 의혹이 최순실 씨와 그 언니, 조카, 사돈까지 아우르는 '최태민 일가'와 연결돼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사회 원로 청와대 회동에서 한 참석자가 "야당과 시민단체는 원래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니 너무 위축되지 마시라"는 취지의 위로를 건네자 "저한테 '사교(邪敎)에 빠졌다'는 말까지 하더라고요"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이날 오찬 때 한 거의 유일한 발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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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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