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임금이 더 많다? '도토리 키재기'!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월급 169만 원'이 좋은 일자리인가?

"용역이나 도급 노동자에 비해 파견 노동자의 임금이 높고 노동 조건도 더 좋다. 파견 허용이 확대되면 용역·도급 형태로 운영되던 사업체들이 파견 제도로 자연스럽게 흡수될 것이며, 따라서 노동자들에게도 유리한 일이 될 것이다."

정부가 파견 확대를 밀어붙이면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논리이다. 그런데 과연 저 주장의 전제로 사용되는 근거는 정당한 것일까?

파견 임금이 더 높다?…'착시 효과' 노린 정부 자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이 용역보다 임금이 높다는 주장에 대해 딱 하나의 근거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2014년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견 노동자와 용역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이 아래와 같다는 것이다.

▲ 정부가 '파견이 용역보다 낫다'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파견과 용역의 월 평균 임금. 이 자료는 각 고용 형태별 월 평균 임금만 제시하고 있을 뿐, 업종별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 차이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파견이 더 낫다'는 주장을 하기엔 부적절한 자료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다른 설명은 하나도 없이 위의 표 하나만 제시할 뿐이다. 그렇다면 간단한 반론이 가능하다. 동일한 업무를 놓고 파견 노동과 용역 노동의 임금을 비교해야지, 줄잡아 수십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파견 노동 전체와 용역 노동 전체의 임금을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장관 비서로 일하는 파견 노동자와 중소 영세 업체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용역 노동자의 임금을 비교한 뒤에 파견 노동자 임금이 용역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 이 부분에 대해 노동부는 일절 답변하지 않고 있다.

임금이 더 많은 파견을 사용자가 늘릴 거라고?


질문을 이렇게 한번 바꿔서 던져보자. 만일 동일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파견 임금이 용역보다 높다면, 사용자들이 도대체 왜 파견을 사용하려 하는 것일까? 그냥 편하게 용역 형태로 고용하면 임금도 더 낮게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정부가 제시한 위 데이터가 동일 업무를 전제로 한 분석이라면, 이렇게 사장들에게 한번 물어보자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사업에 파견을 쓸 수도 있고 용역을 쓸 수도 있는데, 파견 노동자 평균 임금은 169만 원이고 용역 노동자 평균 임금은 148만 원이다. 그럼 어느 쪽을 선호하겠는가? 답은 물어보나마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제시한 근거는 동일 업무에 기반을 둔 공정한 비교라고 얘기할 수 없다. 업무의 유사성․동일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데이터를 믿어줄 이유가 없다. 그저 자신에게 유리해 보이는 데이터를 가져와서 혹세무민하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박근혜의 파견 허용 확대, 용역·파견 하향 평준화 조준


정부는 파견 허용이 늘어나면 용역·도급 등의 고용 형태가 파견으로 흡수될 것이고, 이럴 경우 파견법이 정하는 규제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이 나아질 것이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전혀 근거가 없다. 아니, 똑같은 업무를 시키는데 임금도 더 줘야 하고 파견법 규제도 따라야 하는데, 대체 어떤 사용자가 파견을 선호하겠는가? 그냥 용역으로 쓰면 거추장스러운 규제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이 역시 국민들을 속이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파견 허용 업종이 확대되면 그 업종에 파견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파견을 써도 되고 용역을 써도 된다. 그 업종에서 반드시 파견을 쓰도록 의무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파견 허용 업종이 확대될 경우 실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특정 업무에 대해 파견으로 쓰는 게 비용이 덜 들면 파견을 사용할 것이고, 용역으로 쓰는 게 유리하면 용역을 사용할 것이다. 파견과 용역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 조건은 하향 평준화되고 말 것이다. 결국 자본가들에게 선택권이 더 늘어나는 것일 뿐, 노동자들은 점점 더 불리해진다.

공공 기관 용역·파견 월급여 실제 비교해보니…


제한적으로나마 용역과 파견 노동자의 조건을 비교해볼 수 있는 영역이 하나 있다. 공공 부문의 경우 정규직·비정규직 고용 형태와 규모·임금 수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공시가 이뤄진다. (☞ 공공 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홈페이지 바로 가기)

위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공공 부문을 크게 5가지(26개 중앙 행정 기관, 134개 지방 자치 단체, 234개 공공 기관, 72개 지방 공기업, 69개 교육 기관)로 나누어 비정규직(기간제, 단시간, 파견 노동, 용역 노동) 노동자들의 규모 및 임금 수준이 공시되어 있다.

우선 5가지 분류에 입각한 파견 노동과 용역 노동자들의 규모만 놓고 보면 아래 <표>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표를 보면 파견과 용역을 합한 전체 간접 고용 비정규직 중 파견 노동자의 비율을 보면 △중앙 행정 기관(1.07%) △지방 자치 단체(0.55%) △교육 기관(0.53%) △지방 공기업(3.69%)의 경우 매우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 공공 부문 기관별 파견 노동자, 용역 노동자 규모 및 비율. ⓒ프레시안

따라서 파견 노동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공 기관(12.50%) 부문에 대한 분석이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겠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 주장과는 반대로 공공 기관에서는 오히려 용역 노동자 임금이 월 평균 213만 원으로 파견 노동자 임금(205만 원)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공 기관 파견·용역 노동자 임금 비교. 파견 노동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공 기관에선 정부 주장과 반대로 용역 노동자 임금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프레시안

파견·용역 모두 쓰는 기관에선 더 커지는 격차

물론 위에 분석한 자료 역시 업무 동일성을 전제한 비교는 아니다. 다만 전체 산업에서 용역과 파견을 비교한 정부 자료에 비해 공공 기관으로 범위를 좁혔기에 유의미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한 사업장에서 파견 노동자와 용역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있는 경우라면, 상대적으로 업무 유사성이 높을 것이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위 사이트에는 234개 공공 기관 각각에 대해 용역과 파견 노동자 규모 및 임금이 모두 공시되어 있어서 그러한 기관만 따로 뽑아낼 수 있었다. 234개 공공 기관 중 파견 노동자와 용역노동자 모두를 고용하고 있는 기관의 수는 118개였는데, 이들 기관 중 파견 노동자 임금이 용역노동자보다 높은 기관의 수는 절반이 조금 넘는 64개였다.

하지만 파견 노동자 임금이 더 높은 기관의 수가 조금 더 많다고 해서 전반적으로 파견 노동자 임금과 노동 조건이 더 좋다고 판단해선 안 된다. 이들 기관에서 일하는 용역·파견 노동자들의 임금 평균을 계산해보면 결과는 상당히 달라진다.

파견·용역을 동시에 고용하고 있는 118개 공공 기관에서 일하는 용역 노동자 임금 평균은 227만 원인 반면, 파견 노동자 임금 평균은 194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파견 노동자에 비해 용역 노동자 월급여가 30여만 원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 파견과 용역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 118개 공공 기관을 분석하면 용역 노동자와 파견 노동자의 급여 차이는 더 벌어진다. ⓒ프레시안

'용역 보호 지침' 때문이라면…지침을 민간으로 확대하라

하지만 여전히 이런 주장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적대적이다. 공공 기관에서 용역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높게 나타나는 지점에 대해 "공공 기관 비정규직 활용은 공공 부문에만 적용되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대책(용역 근로자 근로 조건 보호 지침)' 등의 적용으로 민간의 비정규직보다 근로 조건이 양호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정부가 진실로 노동자들을 위하려 한다면 왜 굳이 파견 허용을 확대하려 하는가? 정부 주장대로 공공 부문에 적용되는 '용역 근로자 보호 지침' 덕에 공공 부문 용역 노동자 노동 조건이 나아진 것이라면, 이를 민간 부문으로 확장하면 전체 용역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이 더 나아질 텐데 말이다.

정부 정책을 민간 부문에 '지침'으로 내리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변명은 말이 안 된다. 그럴 것 같으면 도대체 왜 취업규칙 변경 지침과 일반 해고 지침을 발표했단 말인가? 정부 지침을 민간 부문으로 확장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저런 지침도 내놓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도토리 키 재기 하고 '이 도토리가 크다!!!'는 정부


<인사이드 경제>가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파견보다 용역 노동자의 임금이 높다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의 맨 처음에 얘기했던 정부의 자료로 되돌아가 보자. 업무 유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파견 노동자 전체와 용역 노동자 전체의 임금을 비교한 것도 문제지만, 거기 적시된 임금 수준도 간과해선 안 된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파견 노동자 임금 수준이 169만 원이고 용역 노동자 임금 수준이 149만 원이니 파견 노동자 조건이 더 좋다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주장인가. 정부가 보기에는 169만 원이 '좋은' 조건의 일자리란 말인가?

<인사이드 경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용역이건 파견이건 한국의 간접 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수준이 평균 150만 원 안팎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50만 원에서 조금 더 받는 것이 '좋은' 일자리라고 과연 누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도토리 키 재기, 이제 그만 하자.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149만 원보다 169만 원이 더 낫지 않냐고 강변하는 게 아니다. 법정 최저 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용역·파견 등 간접 고용 비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위해 최저 임금을 1만 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파견 확대가 아니라 용역 노동자 보호 지침 적용을 민간 부문까지 확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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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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