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이요? 무슨, 수습을 4년 씩이나 하나요?"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님아, 노동 개악 그 상자를 열지 마오

정부-새누리당과 재벌들이 합세해 밀어붙이는 노동 개악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매일같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으며, 새정치민주연합은 사분오열 속에서도 열심히(?) 새누리당과의 물밑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새누리당-재벌이 밀고 있는 노동 개악의 내용은 크게 노동 관련 5개 개악 법률, 그리고 일반해고·취업규칙 관련 2개의 지침(가이드라인)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현재 개악을 밀어붙이는 세력들은 임시국회 법안 통과를 제1의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노동 개혁" "경제를 살리는 노동 개혁" 등 수많은 이데올로기를 사용하고 있다. 모두 실효성과 객관성이 없는 내용들이라는 점이 충분히 입증되어 왔지만,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아니면 말고" 식이다.

<인사이드 경제>는 예전부터 노동 개악이 실현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그렇다면 노동 관련 5개 개악 법률이 통과되면 어떤 시대가 열리는지, 그 상자 안에 도대체 어떤 괴물들이 숨어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수습 기간 4년 시대가 열린다

"2년은 너무 짧으니 4년 동안은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내놓은 해설 내용이다. 비정규직 고용 안정에 대해 그토록 관심이 많다면 한번 물어보자. 그럼 왜 하필 4년인가? 차라리 10년, 아니 50년으로 늘리면 평생 고용을 보장해줄 수 있을 텐데!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늘리면 그 기간 만큼은 해고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용 기간 연장 법안이 통과되면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 4년 동안 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은 감언이설에 불과할 뿐, 4년 이내에 언제든지 해고해도 부당해고로 보지 않겠다는 제도이다. 따라서 이는 "수습 기간 4년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4년 일하면 그 뒤에 자동으로 정규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일정 금액의 '이직 수당'을 지급하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기에, 정규직 전환은 거의 구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기간제 교사와 영어전문강사 등의 일부 학교 비정규직 업종 일부에 4년까지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나, 이 중에서 정규직 전환 사례는 거의 없었다.

4년 동안 자유롭게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해고할 수 있다면, 도대체 어떤 자본가들이 정규직 신규채용에 나서려 할까? 2년 쓰고 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던 자본가들인데, 4년 쓰고 버릴 수 있도록 법이 바뀌면 비정규직에 대한 남용과 폐해는 극에 달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4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게 아니라, 4년이라는 너무 높은 장벽 앞에 정규직화 희망을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전반에 패배주의와 체념을 확산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취업해도 대부분 ''보조 업무'' '임시직' 이렇게 이름 붙이잖아요. 그렇게 4년을 일하고 그만두면 또 어디에 취업할까요? 제 이력서에 4년 동안 '보조업무' '임시직'으로 일했다고 쓸 수밖에 없는데 누가 정규직으로 뽑아주겠습니까?"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2일 오전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 5법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했다. ⓒ연합뉴스

주 60시간 노동제?

놀랍게도 한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1주일은 5일"이라는 해석을 포기하지 않아 왔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1주 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1주일을 7일로 만드신 하느님이 진노할 만한 일이다. 다행히 대법원이 상식을 복원해 "1주일은 7일"이라고 판결하자 부랴부랴 근로기준법 개악에 나섰다.

대법원 판결과 상식에 맞게 휴일 노동까지 포함해 전체 노동 시간을 단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장 근로 한도를 기존 12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려 주 60시간 제를 도입하려 한다. 가증스럽게도 새누리당은 이걸 두고 애초 '주 68시간 제'를 '주 60시간 제'로 단축한다고 사기를 친다.

아니, 그렇다면 한국은 본래 '주 68시간 노동제'를 시행하고 있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제'를 명시하고 있으며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을 합해도 최장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명백한 노동시간 연장을 두고 '주 60시간 제로 단축'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스탠다드 운운하는 박근혜 정부가 한국은 주 68시간 노동 제였다고 떠든다면, 이거야말로 세계가 비웃을 일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정부와 새누리당 근로기준법 개악 안에 따르면 휴일노동에 대한 가산수당도 삭감한다. 휴일노동은 보통 시간외노동과 겹쳐지기 때문에 중복 가산을 해야 하지만, 이를 50%씩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가산수당을 높여야만 휴일노동을 줄일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자본가들은 오히려 휴일노동을 늘려 전체 노동시간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정년 54세, 최고 연봉 5600만 원 시대가 온다

새누리당 파견법 개악 안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자에게는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전 업종에 모두 파견을 허용하고, 일정 소득 이상의 전문직 약 900여 개 직종 노동자들도 추가로 파견 대상이 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선 정년이 54세로 단축되는 효과가 벌어진다. 55세부터는 업종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파견을 사용할 수 있는데 굳이 연차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고령의 노동자들을 사용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함부로 자르냐고? 그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할 예정인 일반해고(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활용하면 쉬워진다.

55세를 앞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협박할 것이다.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해고되렵니까? 당장 파견 노동으로 대체해도 그만입니다. 그러니 임금 삭감에 동의하시지요."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삭감에 동의하거나 파견 노동을 전전긍긍, 그게 아니면 조기에 보따리를 싸야 할 것이다.

일정 소득 이상이라는 조건이 달려있긴 하지만 그 소득 수준이란 것이 올해의 경우 연봉 5600만 원 선이다. 정규직 노동자들 중 근속 10~15년만 넘어가면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고령자와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연봉 5600만 원 넘으면 자유롭게 파견노동을 쓸 수 있는데, 지금 그냥 나가시렵니까? 아니면 연봉을 좀 깎을까요?" 결국 연봉 5600만 원이 넘지 않도록 임금삭감에 동의하거나 파견노동을 전전긍긍, 그게 아니면 마찬가지로 보따리를 싸야 할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파견 확대는 장기근속한 정규직 노동자들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고령이 되면, 임금이 오르면, "파견으로 갈래? 임금 깎을래? 아니면 그냥 나갈래?" 이런 협박을 받도록 설계된 것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도 직격탄이지만, 노조가 있더라도 임금 인상 투쟁에 소극적이 되도록 하여 민주노조의 힘을 약화하는 데 활용될 것임이 틀림없다.

ⓒ오민규
재벌을 위한 풀 세트 메뉴

새누리당의 고용보험법 개악 안은 그들의 '노동자 혐오증'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업급여 하한액을 현행 최저임금 90%에서 80%로 깎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고용보험료 납부 기간을 현행 180일에서 270일로 늘리며, 재취업 수당을 폐지하는 내용 등의 개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구직활동을 제대로 했는가를 심사해 실업급여 수준을 삭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가 어쩌고 하며 노동자들이 실업급여 타 먹으려고 꼼수를 부린다는 철학 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개악 요소가 그나마 적다고 평가되는 산재보험법 개악 안 역시, 다른 나라들은 출퇴근 재해를 대부분 '업무상 재해'로 통합해 다루는 반면 유독 새누리당 개악안만 이를 별도 재해로 분리시켜 놓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최대한 산업재해 인정이 되지 않도록 별도로 구성요건을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로기준법·기간제법·파견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 등 모두 개악 내용으로 가득 찬 법들이 통과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세상이 다가온다. 아니, 청년들은 "이미 조선이 헬인데 헬조선이란 말은 동어반복"이라며 한탄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재벌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다. 다가올 경제위기에서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킬 수 있고, 마음대로 해고하고 마음대로 비정규직을 늘리는 세상이 열리기 때문이다. "재벌천국, 노동지옥"이란 말이 현실이 되고 만다.

여러분이 원하는 노동개혁은 무엇인가

<인사이드 경제>는 독자 여러분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제안하고자 한다. "노동개혁이냐 노동개악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진짜 노동개혁이냐"라는 얘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여러분이 원하는 노동개혁이 무엇인지 한번 웹과 SNS상에서 얘기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이 질문에 '임금피크제로 장년 임금 줄여서 청년 일자리 만들어야 한다'고 답할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파견 허용업종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저녁이 있는 삶이 진짜 노동개혁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이 되어야 노동개혁이 가능하다' '회사가 자꾸 어렵다고 하는데 고용불안 걱정 없이 회사 다니는 게 노동개혁이다' '노동개혁 하려면 무상의료 무상교육부터 실시해야 한다' 등등.

박근혜 독주를 막기 위해 우린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는 개악 안을 저지하고 막아내는 데 집중해왔다. 이제 판을 바꾸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어놓자.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총선이 다가오지 않던가.

머지않아 노동자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공론화하는 장이 열린다. 사회 저변의 대중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때, 비로소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혁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허구적인지도 함께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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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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