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없었다면 마힌드라는?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티볼리 덕에 내수·수출·라인업 완성한 마힌드라

마힌드라&마힌드라. 이름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인도 마힌드라(Mahindra) 가문의 형제가 만든 기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룹이다. 인도 역시 한국의 재벌과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독특한 기업집단(그룹)을 갖고 있다. 타타 그룹, 마힌드라 그룹, 비를라 그룹, 릴라이언스 그룹….

다른 그룹은 한국의 재벌처럼 다양한 업종에 문어발처럼 진출해 있으나, 마힌드라 그룹은 상대적으로 자동차산업에 집중하는 기업집단이라 할 수 있다. 출발은 자동차라기보다는 농기계였다. 그러다 미국의 지프(Jeep)를 조립·생산하면서 자동차사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마힌드라 그룹의 자동차사업은 크게 3개 부문으로 나뉜다. △ SUV를 비롯한 승용차량(passenger vehicle) △ 트럭을 비롯한 상용차(commercial vehicle) △ 3륜 차량. 보통 우리가 자동차산업이라 하면 첫 번째인 승용차량을 얘기하곤 한다.

쌍용차 덕에 완성된 마힌드라 라인업

그럼 마힌드라가 인도 시장에서 기록한 승용차량 부문 판매 실적을 살펴보기로 하자. 2018년과 2019년 두 해에 걸쳐 각각의 차량에 대한 가격과 판매량, 증감률을 표로 나타내 보았다. (가격대는 인도의 자동차 포털 사이트인 Carwale.com을 참조했으며, 가격대 순으로 배치한 것이므로 아래로 갈수록 차량 크기가 조금씩 커진다고 볼 수 있음.)

▲ 마힌드라 인도 시장 승용차량 판매 실적.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민규

붉은 색으로 강조한 2개의 차종은 모두 쌍용차에 기원을 두고 있다. 각각 마힌드라 XUV300은 '티볼리', 마힌드라 알투라스G4는 '렉스턴 4G'의 인도 시장 판매 명칭에 해당한다. 표의 내용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첫째, 마힌드라가 지난해 인도 내수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거의 대부분의 차량이 판매량 감소율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2018년 연말에 출시한 알투라스G4, 작년 3월에 출시한 XUV300, 그리고 마라조(Marazzo)라는 차량만 판매율 상승을 보여줬다.

둘째, 대부분 차량의 두 자릿수 판매감소율에도 불구하고 총판매량 하락을 5% 선에서 막은 것은, 쌍용차로부터 수혈받은 XUV300과 알투라스G4 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XUV300의 경우 4만 대 넘게 팔려 볼레로(74,900대), 스콜피오(46,725대)에 이어 판매량 3위를 기록했다. 작년 3월 출시, 그러니까 1, 2월 판매량이 전무한 조건에서의 기록이라 더욱 놀랍다. 2개의 쌍용차 수혈 차량은 마힌드라 전체 판매량의 20%를 차지했다.

셋째, 마힌드라의 인도 내수시장 라인업 대부분이 중·저가형 SUV에 해당한다. 알투라스 G4를 제외하면 가장 비싼 차량인 XUV500의 가격대는 알투라스G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마힌드라 혼자 실력으로는 렉스턴 4G와 같은 프리미엄급 SUV를 만들기 어렵다. 즉, 렉스턴 4G 덕에 마힌드라는 알투라스 G4라는 프리미엄 SUV를 추가해 라인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티볼리 플랫폼 사용, 마힌드라 마음대로?

그렇다면 인도에서 팔리는 XUV300(티볼리)과 알투라스G4(렉스턴4G)는 한국에서 수출되는 차량일까? 알투라스G4는 평택공장에서 CKD(Complete Knock-Down, 반조립 부품 키트) 방식으로 포장·수출된 후 인도 현지에서 간단한 최종 조립을 거쳐 판매된다. 즉, 완성차 수출 방식은 아니지만 어쨌건 쌍용차 수출물량에 포함된다.

그런데 XUV300은 다르다. 한국에서 CKD 방식 수출 없이 그냥 인도 현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XUV300이 사용하는 티볼리 플랫폼은 쌍용차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아무리 모기업-자회사 관계라 할지라도 자회사가 개발한 플랫폼으로 생산을 할 경우 마힌드라가 쌍용차에 플랫폼 사용료, 즉 로열티(royalty)를 지급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쌍용차 감사보고서·사업보고서·분기검토보고서 등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마힌드라로부터 로열티를 받은 항목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힌드라는 티볼리를 원형 그대로 생산하는 게 아니라 전장길이를 4m 밑으로 약간 줄이는 변형을 주었다. 전장길이 4m 미만 차량에 세제혜택을 주는 (한국의 경차 혜택과 유사한) 인도의 제도 때문이다.

당연히 플랫폼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가진 쌍용차 연구·개발팀이 수정을 했을 테고, 수정 과정에 투입된 비용에 대해서도 당연히 마힌드라가 보전해주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런 거래내역이 공시자료를 통해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무려 4만 대 이상을 현지 생산해서 판매했으니 로열티 규모만 300~400억에 육박할 텐데 말이다.

2016년 수상쩍은 연구·개발비 급감

로열티 한 푼 물지 않으면서 티볼리 플랫폼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다. 마힌드라가 쌍용차로부터 티볼리 플랫폼 사용권을 헐값에 사들였을 가능성.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쌍용차 연구·개발비와 영업이익(손실) 변화 추이를 살펴보았다. (아래 그래프)

▲ 쌍용차 연구개발비와 영업이익(손실) 변화 추이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쌍용차 연구·개발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다가, 갑자기 2015~2016년에 상당히 줄어든 뒤 2017년부터 다시 대폭 늘어난다. 마힌드라 인수 이후 쌍용차가 개발·출시한 첫 번째 신차가 티볼리였고 그 시점은 2015년이었다. 그런데 2015~2016년에 쌍용차 연구·개발비가 줄어들었다? 신차 출시가 많지 않았던 2017~2018년에 연구·개발비가 대폭 늘어났고?

이건 2015년 티볼리 개발·출시 직후인 2016년에 티볼리 플랫폼 사용권을 마힌드라에 넘기면서 일정 비용을 보전받았고, 그 보전비용만큼 연구·개발비에서 차감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티볼리 플랫폼 사용권은 얼마를 받고 넘겼을까? 2017~2018년 연구·개발비와 2016년 연구·개발비의 차액, 그러니까 대략 400~500억 원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 400~500억이라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도에서 연간 4만 대 이상 생산·판매되었다면 1년에 로열티만 300~400억을 기대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당연히 헐값 논란이 붙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놀랍게도 연구·개발비가 급격하게 줄었던 2016년에 쌍용차는 처음으로 영업이익을 실현하게 된다.

티볼리 변형 차량들 줄줄이 유럽 출시

어디 그뿐인가? 마힌드라가 지난해 9월에 유럽 언론을 상대로 설명한 바에 따르면, 마힌드라는 유럽에서 매년 1개 이상의 신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내놓을 신차가 죄다 XUV300, 그러니까 쌍용차가 개발한 티볼리에 기반한 차량들이다.

▲ 마힌드라 신차 계획.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우선 올해(2020년)에는 배기량 1.2ℓ 직분사엔진을 적용한 XUV300(티볼리)을 출시한다. 한국에서 생산·판매되는 티볼리 배기량이 1.6ℓ임을 감안하면 상당 수준으로 엔진 다운사이징이 적용된 것이다. 내년(2021년)에는 티볼리 기반 전기차를 유럽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다음으로 2022년에는 코드명 S204라 이름이 붙은 3열 시트 7인승 SUV를 내놓는다. 이 차량에는 배기량 1.5ℓ 직분사엔진이 적용된다. 전장길이 4m 미만에 세제 혜택을 주는 인도와 달리, 유럽에서는 좀 더 길고 실용성이 높은 차량을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차량의 기본 뼈대가 되는 플랫폼은 국내 시판되고 있는 티볼리XLV(에어)를 사용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당연히 이런 의문점이 생긴다. 마힌드라에게 쌍용차가 없었다면, 티볼리가 없었다면 대체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을까? 인도 내수시장에서 마힌드라 전체 판매량의 20%를 책임져주고, 여기에다 여러 형태의 변형을 통해 매년 1종 이상의 차량을 유럽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효자 상품 아닌가 말이다.

유럽에서 티볼리와 XUV300 경쟁?

그런데 여기에도 큰 문제가 하나 놓여 있다. 마힌드라 전체 판매량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며, 대부분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저가 시장으로 진출해 있다. 유럽 시장에도 진출해 있긴 하지만 1년 판매량이 1000대 안팎으로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쌍용차의 경우 전체 판매량에서 수출 비중은 20~30% 수준이며 가장 큰 수출시장이 바로 유럽이다. 티볼리와 코란도C가 주력 수출품목이며 매년 1.5만~2만 대 가량이 유럽에서 판매된다.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쌍용차 수출은 2014년만 해도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동유럽·아시아가 주력이었으나, 2015년 티볼리 출시 이후 주력 수출시장이 유럽으로 바뀌게 된다.

▲ 마힌드라 수출시장 변화.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그런데 쌍용차 티볼리가 판매되고 있는 주력 수출지역인 유럽 시장에 올해부터 매년 티볼리 변형 차량을 마힌드라 XUV300 이름으로 수출한다니? 만일 이 계획이 사실이라면 이건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마힌드라 스스로 쌍용차 회생을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해놓고, 오히려 쌍용차 수출길을 막는 짓을 하는 꼴이니 말이다.

현재 티볼리가 판매되는 유럽 국가와 겹치지 않게 XUV300 수출 국가를 조정한다 하더라도 말이 안 된다. 그건 쌍용차 티볼리가 더 판매될 수 있는 수출시장을 좁히는 일이 되고 만다. 게다가 마힌드라는 매년 XUV300의 변형 또는 파생차량을 신차로 출시한다는 계획 아니던가. 유럽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마힌드라의 다양한 라인업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마힌드라는 쌍용차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 마힌드라 입장에서 쌍용차는 무슨 의미일까? <인사이드 경제>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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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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