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쌍용차가 위기라는 건가요?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회계장부를 들춰보는 노동자의 궁금증

이놈의 호기심은 거의 병적이다. 어차피 밝혀내지도 못할 거, 문제를 제기한다 한들 정부와 산업은행이 진지하게 들어보기나 할까? 2년 전 GM 사태가 터졌을 때에도 듣보잡 취급을 받아놓고도 왜 이렇게 궁금증은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걸까? 몇 달 전부터 괜히 한국GM·쌍용차·르노삼성 등 ‘스몰 3’에 불어닥칠 위기에 대처하자고 떠들었던 스스로를 원망할 따름이다.

2018년 GM, 2020년 마힌드라?

파완 고엔카 쌍용차 이사회 의장, 쉽게 말해 회장님이 한국에 납시었다. 2년 전 GM 해외사업본부 배리 엥글 사장이 군산공장 폐쇄를 선언하고 곧바로 찾아간 것은 산업은행이었다. 고엔카 회장님도 1시간 남짓 이동걸 회장님을 면담했다고 한다.

2년 전 GM의 데자뷰가 겹치다보니 모두들 ‘쌍용차 위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인사이드 경제>는 항상 당연해 보이는 그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런데 대체 쌍용차가 왜 위기라는 거요?” 결국 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메아리 같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접속해 쌍용차가 공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해 실적을 들여다보았다. 2019년 4분기까지 포함한 전체 실적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가 공개되는 올해 3월말 내지 4월초가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니 일단 3분기까지 영업손실·분기순손실 수치를 비교해 보기로 한다.(아래 표)


우선 1분기 실적만 보자면 계속 손실을 내고 있기는 하나, 전년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나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2분기 실적이 좀 애매한데,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6배 가까이 뛰었지만 분기순손실은 줄어들었다. 상반기를 합산하더라도 반기순손실은 전년에 비해 나아진 편이다.

그런데 3분기 수치는 말 그대로 충격적이다. 영업손실·분기순손실 모두 네자릿수로 폭등하게 된다. 상반기 전체를 합산한 수치보다 3분기 수치가 훨씬 나빠지면서, 3분기까지의 누적 손실은 전년 대비 3배 안팎으로 급증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매출액 오히려 늘었는데 손실 3배 급등

완성차업체가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 제값을 받고 팔았는가 등에 손익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공시된 자료를 토대로 3분기까지 쌍용차의 판매량과 매출액 정보를 비교해 보기로 하자. (판매량 출처는 쌍용차 IR 자료, CKD 포함)


분기별 판매량은 3분기에 줄어들긴 했으나 누적 판매량만 보자면 전년 대비 0.86%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매출액은 오히려 전년 대비 2.3% 늘어난 2조 7,101억을 기록했다. 물론 4분기 판매량이 조금 더 줄어서 나중에 2019년 실적 전체가 공개되면 수치가 좀 낮아지긴 하겠지만, 매출액 감소가 눈에 띄게 늘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지난해 3분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부 수구 언론이 제기하는 것처럼 해고자 복직 때문일까? 아니다. 현재 복직이 미뤄진 46명을 제외한 나머지 해고자들의 복직은 모두 작년 1월 1일에 이뤄졌다. 인건비가 좀 늘긴 했겠지만 매월 수억원 수준에 불과하며, 3분기에 갑자기 1천억대의 손실이 발생한 이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1차 자구안 실시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손실

고엔카 회장의 한국 방문으로 쌍용차 위기설, 산업은행 지원론 등이 온갖 언론에 대서특필 되고 있지만, 도대체 쌍용차가 왜 위기라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다룬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재무제표 상 적자와 손실이 늘어나기만 하면 위기라는 것일까?

만약 손실 수치가 저렇게 나올 정도라면, 1분기는 몰라도 2분기쯤에는 회사 경영진이 충분히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8월 19일, 쌍용차 예병태 사장은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배포하며 비상경영을 선포한다. 비상경영 주요 내용은 임원 20% 축소, 임원급여 10% 삭감과 함께 전직원들에게 자구노력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하는 것이었다.

곧바로 자구안에 대한 노사협의가 시작되었다. 정확히 한 달 뒤인 9월 19일, 8차례 노사협의 끝에 학자금·의료비·장기근속포상·경조비·명절선물·퇴직금중간정산 등 후생복지와 관련한 사항을 전면 또는 일부 중단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른다.

물론 3분기의 끝무렵에 이뤄진 합의이긴 하지만, 그래도 회계장부 상으로는 이런 합의가 미래의 비용 절감을 가져올 수 있기에 긍정적으로 반영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1차 자구안에도 불구하고 3분기 실적은 무려 1천억대 손실을 기록하고 말았다. 자구안 실시와 실적 개선은 별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신차 출시도 없는데 늘어나는 연구개발 지출

지난해 쌍용차는 티볼리 에어, 뷰티풀 코란도 등의 신차 출시행사를 가진 바 있다. 하지만 티볼리 에어의 경우 엄밀한 의미의 신차(All-New Car)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존 티볼리 플랫폼(X100) 위에서 부분변경(X150)을 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쌍용차 노사가 2018년에 합의한 미래발전 전망에 따르면, 본래 지난해 코란도 투리스모의 차세대 신차(A200)가 출시되었어야 했지만 기약없이 연기되었다. 올해 코란도C에 기반한 쌍용차 최초의 전기차(E100) 출시도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 역시 1년 이상 연기된 상태이다.

이렇듯 신차 출시계획은 줄줄이 연기되고 있는 반면, 쌍용차의 연구개발 비용 지출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쌍용차 감사보고서에 ‘연구·개발과 관련하여 지출된 비용’을 연도별로 뽑아내고, 이를 매출액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그래프를 얻게 된다. (아래 그래프)


2008~2009년(점선 구간)은 법정관리 전후 기간으로 매출액이 워낙 형편없이 떨어진 탓에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오르는 착시 현상일 뿐이므로 그 시기는 무시해도 상관없다. 마힌드라의 쌍용차 인수가 이뤄진 시점은 2011년인데, 2014년부터 연구개발비 비중이 치솟기 시작해 2018년에는 2000억을 넘어서게 되었다.

줄줄이 신차 개발계획이 연기되고 있는데 대체 연구개발 비용 지출은 어째서 늘어나고 있는 걸까? 2019년 실적 발표를 기다리긴 해야겠지만, 3분기까지의 사업보고서만 보더라도 전년 대비 연구개발 비용 지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이후 연구개발비가 반짝 줄어들었던 2016년이, 최근 10년 사이 유일하게 쌍용차가 영업이익을 실현한 해이기도 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연구개발비는 눈에 빤히 보이는 수치일 뿐, 유일한 의혹지점이 아니다. 매출원가 중 인건비 상승폭이 미미하다는 사실, 갑자기 원료와 재료비가 상승해 매출원가 비중을 높이며 영업손실을 늘렸다는 사실 등 쌍용차의 공시자료에서 짚어야 할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인사이드 경제>는 깊은 피로감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2년 전 GM 사태 당시 평범한 국민들조차 GM의 만행에 혀를 내두를 정도의 분노가 올라왔지만, 결국 산업은행과 문재인 정부는 그 모든 GM의 의혹에 대해 면죄부를 주지 않았던가. 겉으로는 “철저하게 실사해서 이전가격(Transfer Price)과 고금리대출 의혹, 높은 매출원가율과 연구개발비의 정당성을 따지겠다”고 했지만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쌍용차 해고자 복직 관련 노·노·사·정 합의 직후, 쌍용차 기업노조와 쌍용차 사측, 그리고 경사노위는 쌍용차만을 위한 작은 ‘노·사·정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이름하여 ‘쌍용차 상생발전협의회’인데 (최근에는 이름을 ‘쌍용차 일자리지키기 위원회’로 변경) 해고자 복직 합의에 참여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만 쏙 빼고 모이는 회의기구이다.

이 회의기구가 지난해에만 무려 30차례 이상 열렸고, 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이 그 30여 차례 회의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나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심지어 청와대 비서관이 함께 자리를 한 적도 있었다. 쌍용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 문재인 정부가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결국 쌍용차에서 또다시 연구개발비 문제를 제기하고 매출원가율 의혹을 얘기한들, 쌍용차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산업은행과 문재인 정부가 행동할 방향 역시 똑같지 않겠냐 말이다. 겉으로는 “국민 혈세를 헛되이 사용할 수 없다”며 절대로 지원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4.·15 총선이 다가올수록 태도가 변화할 테니 말이다.

그래도 국가기관이 엄정하고 공정하게 움직이도록 ‘희망’을 말해야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다. 안타깝지만 그놈의 희망고문에 <인사이드 경제>는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산업은행이 GM의 이전가격 의혹에 면죄부를 준 이후, 국세청이 이전가격과 탈세를 밝혀내 추징금을 때라는 일이 벌어져도 산업은행 문책론 하나 나오지 않는 국가기관들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쏟아내는 얘기는 ‘희망’이 아니라 ‘염세(厭世)’에 가깝다. 죽어라 문제를 제기한들 반향 하나 없는 국가기구를 상대로 무슨 희망 타령이란 말인가. 결국 선거 논리, 정파 논리에 빠져서 지원이 이뤄질 테고, 그 대가로 노동자와 시민들의 권리와 세금만 축나게 될 테니 … 당분간 <인사이드 경제>는 염세 모드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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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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