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당권파 좌장인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19일 오후 의원총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당 윤리위가 하 최고위원에 대해 징계를 내린 것은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당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 전 대표는 특히 손 대표를 겨냥해 "손 대표께서 정치를 이렇게 추하게 할지 몰랐다"고 원색 비난했다.
유 전 대표는 "제가 굉장히 고민이 많이 깊어졌다"며 "이 문제와, 앞으로 저희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의원들과 깊이 상의하겠다. 의원들의 뜻을 모아 보겠다"고 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 할 일'에 탈당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는 "너무 앞서가는 얘기인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젯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불상사가 벌어졌다"며 "이번 윤리위 결정은 손 대표가 윤리위를 동원해 반대파를 제거한 치졸하고 비열한 작태이며, 당을 '손학규 사당(私黨)으로 타락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당 윤리위는 전날 하 최고위원의 징계 수위를 논의한 결과 '직무정지 6개월'로 결론내렸다. 이는 손 대표 거취를 둘러싸고 최고위에서 공개 설전이 벌어지던 지난 5월, 하 최고위원이 "개인 내면의 민주주의가 가장 지키기 어렵다.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하기 때문"(5.22 최고위 공개발언)이라고 손 대표를 면전에서 비난한 데 대한 징계였다. 하 최고위원의 직무가 정지되면, 바른미래당 최고위는 현재 4:5인 당권파 대 비당권파 비율이 4:4가 돼 손 대표가 당헌 32조에 의거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게 된다.
오 원내대표는 그러나 "이번 윤리위 징계는 효력이 없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하 최고위원은 당헌당규에 따라 최고위원 직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 원내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이미 최고위원 과반의 요구로 불신임당한 윤리위원장이 내린 징계는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 원내대표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이상, 바른미래당이 더 이상 손 대표와 함께하기는 어려워졌다"며 "당을 난장판으로 만든 손 대표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오 원내대표는 특히 "손 대표가 자리를 지키는 한, 당은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며 "손학규와 함께 가만히 앉아 죽는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손학규를 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인지 모든 당원들이 함께 결단해야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비당권파인 안철수-유승민계에 속한 의원들도 손 대표 비판을 쏟아냈다. 안철수계인 이동섭 원내수석부대표는 회의에서 "윤리위 결정을 취소하지 않고 (사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강력하게 끌어내리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했고, 신용현 의원도 "당원과 국민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고 있는 모습"이라며 "당 지도부의 성찰을 기대한다"고 했다.
유승민계인 지상욱 원내부대표도 "폭거"라며 "용팔이 각목부대 전당대회를 연상케 한다"고 비난했다. 바른정당 대표를 지낸 이혜훈 의원도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불법 부당한 정치보복을 자행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유신을 강행했던 것보다 더 부당한 일"이라고 했다.
오 원내대표 등 비당권파는 오후 의원총회를 열어 대응 방침을 논의했다. 오 원내대표는 의총 결과에 대해 "윤리위 징계가 부당하다는 뜻을 모았다"며 "손 대표에게 유감을 표하고, 윤리위의 징계 철회를 촉구한다"는 데에 참석 의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오 원내대표는 철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다양한 방식의 당 정상화와 앞으로의 진로·방향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그런 '경우의 수'를 놓고 논의된 바가 있기 때문에 병행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오 원내대표는 '경우의 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비대위 전환에 대해 오래 전부터 논의해 왔고 '경우의 수' 안에 포함돼 있다. 그것도 진행되고 있는 과정 중 하나"라고 확인했다. 다만 탈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오 원내대표 역시 "아직 시기상조"라며 "'손 대표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이 꼭 갈라선다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까지는 없다. 손 대표와 총선을 같이 치를 수 없다는 대다수 구성원들 생각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오 원내대표와 하 최고위원 등 비당권파 최고위원들이 20일 최고위 회의에 참석해 윤리위 징계 절차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하는 방안도 검토됐으나, 오 원내대표는 "당헌당규 유권해석 안건 상정 요구를 했는데 임재훈 사무총장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참석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를 다시 최고위원들이 의논해볼 것"이라고만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16일 정병국 의원의 손 대표 사퇴 촉구 기자회견(☞관련 기사 : 바른미래 내홍 재점화 "손학규 사퇴해야 反조국 싸움 참전")에 이어, 이번 윤리위 징계 사태 역시 결국 바른미래당 분당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비당권파가 손 대표를 상대로 한 당내 투쟁에만 언제까지나 매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4.15 총선 전 6개월 기점인 올해 10월이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상돈 의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마도 유승민 의원을 위시한 바른정당계도 결국 (당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며 "(당 소속) 호남 의원들은 아무래도 이탈해서 유성엽·박지원 의원이 하는 거기(대안정치연대)로 갈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당권파에서도 비당권파의 이탈을 각오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오히려 '얼른 나가라'는 분위기조차 감지된다. 한 의원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비당권파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들끼리 떠드는 일밖에 없다"며 "당을 자발적으로 나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하기도 했다.
다만 당권파 내부에서조차 전날 윤리위 결정에 대해서는 다소 무리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명직 최고위원인 문병호 전 의원은 이날 SNS에 쓴 글에서 "윤리위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그러나 통합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이 시점에서 하 최고위원의 징계가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문 최고위원은 "당권파든 퇴진파든, 당의 어떤 기구든 당 통합에 어긋나는 행보는 자제해야 한다"며 "당권을 사수하든 대표 퇴진을 요구하든 그 명분과 방식은 당 통합에 도움이 되는 관점에 서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통합에 누가 되는 것은 해당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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