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孫 사퇴하라…버티면 중대 결단"
정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4월 선거 참패로 바른미래당은 내홍으로 치달았고, 당과 국민은 손학규 대표에게 책임을 요구했다"며 "손 대표는 지난 4월 15일 '추석 때까지 당 지지율이 10%에 미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고 사퇴 조건을 내걸었다. 155일이 지난 지금, 추석은 지났고 당 지지율은 정의당(6.2%)보다 못한 5.2%"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당시 우리 당 의원들과 당원들이 가진 유일한 희망은 손 대표의 개혁이 아니라 사퇴였다"며 "(나는) 그럼에도 참았다. 쓰디쓴 침묵을 이어왔다. (이는) 손 대표의 약속에 대한 존중이었다. 하지만 이제 약속의 시간이 다 됐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바른미래당 최다선(5선) 의원이자 구 바른정당 초대 대표를 지냈다.
정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평등과 공정, 정의의 가치를 배신하고 그토록 국민이 반대하던 조국을 임명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와의 싸움이 시작됐다"며 "바른미래당은 대안정당으로 이 싸움의 최전선에 서야 하지만 국민은 '패권 패거리에 치이고 당 대표의 리더십조차 제대로 서지 못한 바른미래당 역시도 척결의 대상'이라 한다. 바른미래당이라는 이름으로 이 싸움에 참전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바로 손 대표의 사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손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면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정치는 당헌당규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그 이후 전개될 모든 상황의 책임은 손 대표에게 있다"며 "만약 손 대표가 이 상태로 간다고 하면 중대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중대 결단'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언급을 피헸으나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현 상황은?
바른미래당은 4월 보궐선거 패배와 당 지지율 정체 책임론을 놓고 손 대표 측과 유승민-안철수계가 공방을 벌여왔다. 비당권파는 최고위원회 공개회의 석상에서 지도부 사퇴를 수 차례 공개 촉구했으나 손 대표는 이를 거부했고, 7월초 혁신위 구성으로 내분이 일시 봉합됐으나 열흘 만에 주대환 혁신위원장이 사퇴하면서 내분의 장(場)만 최고위에서 혁신위로 바뀌어 갈등 상황이 이어져 왔다.
손 대표 측은 '추석까지 지지율 10%' 약속에 대해 '비당권파의 비협조로 대표가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사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 의원은 "정치 지도자로서 할 얘기가 아니다"라며 "왜 최고위원들이 협조를 안 하는지도 대표의 리더십 문제다. 그것을 핑계 삼는다면 지금까지 손 대표가 쌓아온 정치적 역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추석 연휴 이후 바른미래당의 내분 재점화는 '상수'로 봐왔고, 오히려 관심은 '그 이후'에 쏠리고 있었다. 손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고 갈등이 극한까지 치달을 경우 유승민-안철수계가 동반 탈당해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정 의원이 "중대 결단"을 언급한 것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보통 '유승민계'로도 불리는 바른미래당 내 구 바른정당 출신 의원은 유 전 대표와 정 의원, 오신환 원내대표, 이혜훈 정보위원장, 하태경 최고위원, 유의동·정운천·지상욱 의원 등 8명이다.
유승민 전 대표와 가까운 한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 의원은 그간 유 전 대표와도 달리 '손 대표에게 그래도 시간을 줘 보자'는 쪽이었다"며 "이제 정 의원마저 손 대표와의 투쟁 전면에 서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정 의원의 회견이 (유승민계) 내부에서 무슨 교감을 거쳐서 나온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정 의원의 단독 탈당 등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 의원이나 유 전 대표나 '자유한국당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수 차례 공유된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안철수의 선택은?
관심은 안철수계의 선택에 쏠린다. 안철수 전 대표의 측근인 김철근 전 대변인은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15일 SNS에 쓴 글에서 "손 대표는 '꼰대' 노릇 그만하고 대국민 약속을 지키라"며 "존재하지도 않는 한국당과의 합당 때문에 대표직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허상으로 있는 도깨비와 싸우는 꼴"이라고 손 대표 사퇴를 재차 촉구했다. 추석을 기점으로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가 당권파에 대한 공세를 재개하는 신호탄 격이었다.
지난 8월 독일 체류 중인 안 전 대표를 만나고 온 이태규 의원은 앞서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안 전 대표는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하고 있고, 정치 재개에는 신중한 입장"이라면서도 "야권 통합이 급물살을 타는 등 정치 상황이 변동하면 (정치권에서) 안 전 대표의 필요성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때 안 전 대표 본인이 여러가지를 종합적·복합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추석 전후 귀국해 야권 재편에 뛰어들 거란 일각의 소문에 대해서는 "호사가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일소에 부쳤다. 특히 그는 "안 전 대표는 오랫동안 한국당과는 거리를 둬 왔다"며 "한국당 측과는 (대화나 접촉이) 일절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와 관련해 안 전 대표가 이른바 '보수 통합' 대신 중도보수 신당으로 총선을 치르려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반(反)민주당, 비(非)한국당' 노선인 셈이다.
유승민계도 '황교안 한국당'에 실망감…답은 신당?
최근 한국당의 행보에 유승민계가 실망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신당설에 힘을 싣는 소재다. 바른정당계 한 의원은 "조국 사태에 대한 대응을 보면 한국당은 개념이 없고 정치적 IQ가 떨어진다. 전략이 빈약하다"면서 "(황교안 대표의 삭발 투쟁은) 극우파들의 요구를 받아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조국 반대 연대'와 관련해 한국당 측에서 유 전 대표에 연대 제안을 한 것은 16일 현재까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이 의원은 또한 일부 언론이 보도한 '한국당-바른미래당-우리공화당 3자 연대'설을 언급하며 "우리(유승민계)와 한국당만 해도 연대가 힘든데, 우리가 우리공화당과 연대를 어떻게 하느냐"며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황교안 대표 체제의 한국당이 우편향에 기울고 있다는 실망감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안철수-유승민 신당이 현실화된다 해도, 내년 총선을 치를 때 '기호 3번'을 확보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계 8명에 안철수계 6명(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동섭·이태규)이 동참한다 해도, 이들 6명은 모두 비례대표 의원이어서 의원직을 유지한 채 당적 변경을 할 수 없다.
손 대표 측이 이들 의원들을 풀어주지 않고 바른미래당 대표 지위를 유지한 채 대안정치연대(9명) 등 야권 내 우호 세력과 제휴한다면 원내 3당 및 교섭단체 지위는 이들이 가져가게 된다. 손 대표 퇴진을 주장하는 비당권파가 '속시원한 결별'을 선뜻 택하지 못했던 이유다. 그러나 추석이 지났고, 총선이 다가오면서 이들도 선택을 강요받는 시점에 놓였다. 정 의원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재개될 유승민계의 '반(反)손학규' 공세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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