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해외 이주자 수가 문재인 정권 2년 만에 약 5배나 늘어나 금융위기 후 최대라고 한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시장에서 만난 분들께서 저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아직도 제 귓가를 맴돌며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런데 말이 아니라 정말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다"(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해외 이주자 수가 문재인 정권 2년 만에 약 5배나 늘어나 금융위기 후 최대"라고 주장했다.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엑소더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외 이주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는 보수 언론의 단골 메뉴다. <조선일보>가 전날인 6일 '한국 떠나는 국민, 금융위기 후 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외교부에 따르면 작년 해외 이주 신고자 수는 2200명. 2016년 455명에서 2년 만에 약 5배가 됐다. 2008년 이후 최대치이고, 네 자릿수 인원을 기록한 것도 9년 만에 처음이다"라고 보도했다.
통계 수치상으로는 사실이지만, 문제는 숫자 자체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착시 효과도 겹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적으로 '의미 없는' 수치
한국을 떠나 이주하는 형태는 크게 두가지다.
해외이주자 : 해외이주 목적으로 출국 전에 외교부에 해외이주를 신고한 자
현지이주자 : 외국 거주중 현지에서 영주권(또는 장기체류사증)을 취득하고 재외공관에 현지이주신고한 자
즉, 한국에 살던 사람이 '이주 신고'를 하고 해외에 나가는 경우, 그리고 해외에 살던 사람이 '이주 신고'를 하고 그대로 사는 경우다. 외교부와 통계청은 2002년부터 해외 이주자와 현지 이주자를 합해 '해외 이주 현황'을 발표한다. 구태여 구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이주자'는 '로데이터' 속에만 존재한다.
<조선일보>는 구태여 '해외 이주 신고자'만 문제를 삼았다. 왜 그랬을까?
먼저 외교부와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한 해외 이주 현황(해외 이주 신고자 + 현지 이주 신고자)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부터 1012년까지는 1만~2만 명 수준을 상회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4000명에서 8700명 수준이다. 이 기간에 해외 이주자가 많았다는 것인데, 전반적인 추세로 보면 감소 추세다. 그렇다고 이 통계를 두고 "이명박 정부 때는 2만2000명이 한국에 사는 것을 포기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해외 이주는 개인의 자유이고, 전체 현황을 보면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1984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떨어져 오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제 <조선일보>와 황 대표처럼, 해외 이주 현황에서 '현지 이주 신고자'를 제외해 보자. 통계를 보면 '해외 이주 신고자' 역시 계속해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다만 2018년 통계 하나가 눈에 띤다. 갑자기 2200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되면 "작년 해외 이주 신고자 수는 2200명. 2016년 455명에서 2년 만에 약 5배가 됐다. 2008년 이후 최대치이고, 네 자릿수 인원을 기록한 것도 9년 만에 처음이다"라는 <조선일보>식 문장 조합이 가능하다.
만약 황 대표나 <조선일보>식으로 비교를 하자면, 1993년 독재 정권을 종식시킨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해외 이주 신고자는 △1993년 1만4477명에서, △1994년 1만4604명으로, △1995년 1만5917명으로 2년만에 1440명이 급증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출범해 한국에서 곧바로 해외로 떠나겠다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해외 이주가 줄어드는 수치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첫째, 이런 숫자는 통계학적으로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수치는 2015년(박근혜 정권)부터 반등이 시작됐는데, 최근 3년간이라고 해봐야 3753명이다. 2007년 한해(4127명)에 신고한 숫자보다도 적다.
통계 착시 이용해 '문재인 때리기'
두번째 문제는 더 결정적인데, 이 통계는 '신고자 수'라는 데에서 착시가 존재한다.
해외 국가의 영주권을 획득해도 해외이주신고서를 내지 않으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해외에서 거주하다 그 국가에서 영주권을 획득한다하더라도 이주신고서를 내는 게 영주권 획득의 필수 과정은 아니어서 해외이주신고의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해외 이주를 크게 4가지로 분류한다. △취업이주 △사업이주 △연고이주 △기타이주. 외국 기업에 취업해 이주하는 취업이주, 투자이민과 같이 이주국의 허가를 받아 진행하는 사업이주, 해외에 사는 친족을 따라 이주하는 연고이주, 그리고 이외의 기타이주가 있다.
2017년에는 △취업이주 251명 △사업이주 26명 △연고이주 469명 △기타이주 79명이었고, 2018년에는 △취업이주 173명 △사업이주 21명 △연고이주 545명 △기타이주 1461명이었다. 다른 항목들은 최대 78명정도 증감이 있었지만 기타이주 항목만 전년 대비 1382명이 증가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외교부의 설명에 따르면 기타이주 항목 대부분은 2017년 말 해외이주법 개정안 시행으로 뒤늦게 해외이주를 신고한 기존 해외 이주자들이라는 것이다. 2017년 12월 21일부터 거주여권제가 폐지되면서, 거주여권을 신분증명용으로 사용하던 해외 거주민들이 일반여권을 발급받으며 해외이주 신고대상에 새롭게 포함된 것이다.
쉽게 말해 '서류상 해외 이주 신고'다. 해외에 나간 '서류상 국내 거주자'가 해외에서 '해외 이주 신고'를 한 셈이다. 해당 통계가 발표됐을 당시인 지난 4월에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외 이주가 크게 늘었다'는 논란이었다. 다음은 지난 5월 외교부가 그에 대해 내놓은 설명이다.
"일반여권을 발급받은 영주권자들이 외교부에 이주신고를 한 것이 통계에 포함되다 보니 해외이주자가 급증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 해외에 거주하다 뒤늦게 신고한 인원을 해외이주자가 아닌 현지이주자 수치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통계를 재정비하고 있다."
또한 이 중 일부는 2017년 해외이주법 개정안에 따라 국민연금 일시금을 타기 위해 해외이주신고를 했다는 해석도 있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난 5월 "정부가 2017년 12월 21일부터 거주 여권을 폐지하자 국민연금공단이 해외이주자가 국민연금 일시금을 받으면 거주 여권 대신 해외이주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며 "이에 따라 지난해 미국 등 해외이주신고가 크게 증가한 이유는 실제 이주한 국민들이 많은 것도 있을 수 있지만 국민연금 일시금을 받기 위해 신고서를 제출한 요인 등 착시효과일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허수'를 제하면 해외 이주 신고자 숫자 증가분은 대대적인 '대한민국 엑소더스'라 비견되기에 수백명 수준에 불과하다.
<조선일보>와 황 대표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조선일보>의 기사는 해외로 이주해 가는 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황 대표가 언급한 "거리에서, 일터에서, 시장에서 만난 분들"이라고 하기에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물론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여의도 자산가 A씨(50대)는 최근 해외 부동산을 알아보고 있다. 아들에게는 가까운 일본 도쿄 아파트를, 딸에게는 미국 뉴욕 아파트를 사주려 한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나라에 살게 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경제가 회복될 것 같지 않고,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는 현 정권이 교체될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대기업 부장 강모(40대)씨는 지난해 아내와 다섯 살 된 딸을 미국 괌으로 보내고 서울에서 혼자 산다. 미국 연수 기간에 낳은 딸은 미국 시민권이 있다. 강씨는 월급 700만원 중에 400만원을 매달 송금한다. 그 돈으로 아내와 딸은 침실 2개를 갖춘 괌 내륙 지역 단독주택 월세와 중형 자동차 리스료 등을 내며 산다. 강씨는 "딸이 미세 먼지와 가혹한 학교 경쟁 속에서 살아가도록 할 수 없었다"며 "나 역시 퇴직하면 미련 없이 한국을 뜰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조선일보 '한국 떠나는 국민, 금융위기 후 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