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 과학자, 의학자-레오나르도 다빈치

[최재천의 책갈피] <레오나르도 다빈치>

1519년 5월 2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 앙부아즈에서 67세로 서거한 직후 제자인 프란체스코 멜치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던 레오나르도의 이복형제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게는 훌륭한 아버지와도 같았던, 당신의 이복형인 레오나르도 선생님의 부고를 들으셨을 줄 압니다. 스승의 죽음 앞에 제가 느끼는 슬픔은 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고, 저는 제 손발이 버티는 한 영원한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스승이 제게 날마다 보여주신 강렬하고 열정적인 애정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에 다시없을 그와 같은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분에게 영원한 휴식을 주셨습니다."

지난 5월, 앙부아즈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레오나르도 500주년 공식 행사가 열렸다. 올가을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이 열리고, 이탈리아에서 또한 기념행사가 진행 중이다.

레오나르도는 사생아였다. 동성애자였다. 채식주의자였고, 그 당시는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왼손잡이였다. 주의력 결핍증으로 쉽게 산만했고, 때로는 이단적이었다. 그리고 천재였다. "레오나르도가 예술과 공학 양쪽에서 모두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그 둘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그를 천재로 만들었다.(스티브 잡스)" 그렇다. 그는 천재였다. 걷잡을 수 없는 상상력, 뜨거운 호기심,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창의성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인간적 성격을 띠었고, 개인의 의지와 야심을 통해 완성되었다.(월터 아이작슨)"

예술사에서도 레오나르도의 라이벌은 없다. 독보적이다. 2013년 한 조사기관이 양적 분석 방식으로 측정한 역사적 유명사 통계에서 레오나르도는 20세기 이전 예술가들 중 1위를 했다. 2위가 미켈란젤로였다.(마틴 켐프) 두 권의 책이 번역되었다. 하나는 옥스퍼드대학 예술사학 분야의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인 마틴 켐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그와 함께 한 50년>, 둘은 천재 전문 저술가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인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상상력과 창의력>.

"우리는 레오나르도의 끈질긴 호기심과 실험 정신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에게 기존 지식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켜야 한다. 또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과 어느 시대에나 있는 창조적인 사회 부적응자와 반항아처럼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월터 아이작슨)"

▲ <레오나르도 다빈치-그와 함께 한 50년>(마틴 켐프 지음, 이상미 옮김, 지에이북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인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상상력과 창의력>(월터 아이작슨 지음, 신봉아 옮김, 아르테)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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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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