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술을 마시기 위해 진화했다

[최재천의 책갈피] <저급한 술과 상류사회>, <술 취한 원숭이>, <술에 취한 세계사>

"미국인은 만나면 술을 마시고 헤어질 때도 마신다. 안면을 틀 때도 마신다. 계약을 할 때도 마신다. 술을 마시면서 싸우다가도 술로써 화해한다."(프레더릭 메리어트, 1839)

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널리 허용되는 중독성 약물은 딱 세 가지뿐이다. 알코올, 카페인, 담배. 알코올은 세 가지 약물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루스 볼 <저급한 술과 상류사회>(김승욱 옮김, 루아크)) 알코올은 원래 눈썹 주변을 장식하는 데 쓰던 화장품 혹은 그것을 만드는 일을 가리키던 말이라고 한다. 아랍에서는 인간사 모든 문제의 원인 혹은 해결책이라는 뜻이 알코올이라는 말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로버트 더들리 <술 취한 원숭이>(김홍표 옮김, 궁리)) 우리 조상은 1,000만 년 전 나무에서 내려왔다. 지나치게 익어서 나무 밑으로 떨어진 맛 난 열매를 주우러 내려왔을 가능성도 있다. 인간은 알코올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를 지니게 되었다. 알코올은 인간에게 당분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었다.(마크 포사이스 <술에 취한 세계사>(서정아 옮김, 미래의창))

2015년 분자진화학자 메튜 캐리건이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 19종의 알코올 탈수소효소 유전자 서열을 분석했다. 그랬더니 인간과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의 공통 조상들이 다른 영장류들보다 알코올을 40배나 효율적으로 분해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침팬지로부터 인간이 분기하기 전에 이미 인간이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동북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맥주가 담긴 통으로 야생 개코원숭이 무리를 꾀어 원숭이들을 사냥한다. 독일의 동물학자가 만취한 개코원숭이를 관찰했다. 취한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원숭이들은 짜증을 부리고 시무룩해졌다. 원숭이들은 양손으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여운 표정을 지었다. 맥주나 포도주가 제공되자 역겹다는 듯 물리쳤으나 레몬즙은 반겼다. 미국산 원숭이인 거미원숭이는 브랜디를 마시고 취한 이후에 다시는 브랜디에 손도 대지 않았으며 그렇게 해서 원숭이들은 어떤 인간들보다 더 현명함을 보여주었다.

폼페이의 유적지에서 술집도 발굴됐다. 덕분에 낙서가 되살아났다. 술집 주인이 물을 섞은 술을 내놓는다며 퍼붓는 욕설이었다. "저주나 받아라, 주인아. 우리한테는 물을 팔고, 너는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를 마시다니." 술자리의 안줏감으로 요긴한, 술의 역사와 알코올학을 다룬 책 몇 권이 약속이나 한 듯 3월에 출간되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들이다.

▲ <저급한 술과 상류사회>, <술에 취한 세계사>, <술 취한 원숭이>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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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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