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감동을 다시...<부자의 그림일기>

[최재천의 책갈피] 오세영 <부자의 그림일기> 소장판

"오늘을 포기하는 것은 내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린다. 천천히 쉼 없이 그린다.
부득이한 일이 있더라도 손에서 종이와 펜을 놓지 않는다.
도망가지 않는다." (오세영)

1995년일 것이다. <부자의 그림일기> 초판을 만난 것이. 당시 누구나 그러했듯 나 또한, 충격에 빠졌다. 1990년 12월에 발표되었다가 함께 실린 <고샅을 지키는 아이>.

작품은 모두가 떠나버린 산골 마을을 지키는 아이와 강아지의 이야기다.

"우리도 뜹시다, 여보. 더 늦기 전에 올러갑시다. 농사짓넌 만큼만 일하먼 워디 간들 세 식구 풀칠이야 못 허겄슈?"
"엄마, 우리도 이사가? 유정이네랑 주성이네처럼 이사갈껴 서울루?"
"......"

다시 엄마의 재촉. "아무러면 이만이야 못 허겄슈?" 이번엔 아빠의 한숨 어린 담배 연기... 단편의 끝은 공감각적이다. "별 많은 산골 마을에. 멍. 샘물에 달 뜨는 산골 마을에. 멍멍. 친구를 부르는 강아지 짖는 소리만이. 텅 빈 고샅을 뛰어다닌다. 멍멍멍."

얼마나 아팠던지. 지금도 고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출판사로 연락을 했다. 출판사 대표를 만나고, 책을 사서 여기저기 나눠주고, 그리곤 핑계로 대표께 작가를 좀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렇게 해서 선생을 만났다. 내 딴 신경 쓴다고 제법 폼 나는 가게로 모셨다. 술잔을 권해드렸다. 불편해 하고, 어색해 하셨다. 죄송스러웠다. 그 뒤로 작가의 작품이 새로 출간될 때마다, 부지런히 구입했고, 빼놓지 않고 읽었다. 2016년 5월,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던 이번에 <부자의 그림일기> 소장판이 출간됐다. 초판과 개정판에는 없던 새 작품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고흐와 담배>다. 만화 평론가 박인하 교수의 글이다.

"마음으로 바라본 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한 그림. 작가는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 완벽한 그림을 추구하려 했다. 완벽한 그림의 세계는 늘 손에 잡힐 듯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 길에 도달하지 못한 작가는 죄의식과 처절함, 자책과 분노로 자신을 파괴했다.

<고흐와 담배>는 죄의식으로 자책하는 이전 만화와는 다르다. 자의식 과잉의 상태에서 벗어나, 뒤틀리고 일그러진 감옥에서의 탈출에 성공한다. 아버지가 바라본 두벌 맨 논과 반 고흐의 그림을 일치시키며 마침내 해답을 찾는다."

충청도 사람 특유의 말투로 남긴 그의 메시지. "눈은 껍데기일 뿐인 겨. 겉으로 보지 말구 속으로 봐. 그러면 안 보이는 게 없는 겨." 한국 예술사의 장인이셨다.

▲ <부자의 그림일기> 소장판(오세영 지음) ⓒ거북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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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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