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치체제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정당은 사회 조정과 갈등의 통합을 모색하기커녕 선거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수구세력은 여전히 해체되지 않고 있는 냉전구조와 분단체제를 방패삼아 호시탐탐 색깔론과 이념공세를 일삼는다. 박근혜 탄핵 때 광장을 달궜던 시민의 열기가 사라지고 그 공간은 증오와 혐오의 언어들로 넘친다.
정치는 과장된 말의 파편과 이를 둘러 싼 퇴행적 공방으로 날을 샌다. 극단적 혐오와 증오를 동원하여 지지층 결집을 노리며 당내 결속과 리더십 확보의 결과물을 챙기려는 제1야당 대표의 행보는 정치 부재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정당은 권력을 탐닉하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한다.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진 영국의 정치사회학자인 톰 보토모어(920-1992)는 그의 저서 <정치사회학>에서 대의정부와 정당, 선거가 중요한 틀을 제공해 주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확립하기에는 그 자체로 부적합하다고 한다. 국정농단의 주범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시민의 힘에 의하지 않고는 한국정치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를 제공하는 말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자유한국당은 소모적 정쟁을 유발하기 위한 냉전적 색깔론과 갈등 유발적 발언들을 쏟아 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주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전방 GP 방문에서의 '남북군사합의를 깨야 한다'는 주장,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 내용 공개 등 국익에 해가 되고, 상식의 선을 넘는 유형의 행태들이 반복될수록 정치는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유권자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양대 거대정당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금도를 넘는 비상식의 행위가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한국정치의 작동체계를 바꾸려면 깨어있는 시민이 주체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정치는 왜 존재하며 정당은 올바른 정치의 동력으로 기능하는가. 1월과 2월을 동면한 국회는 3월 임시국회에서 비쟁점법안 등을 통과시키고 4월 국회에서는 패스트트랙으로 물리적 충돌까지 겪었다. 한국당의 장외투쟁은 집권세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격과 비난으로 일관하며 정치적 증오를 극대화했다. 한국당 대표의 '민생투쟁 대장정'은 집권여당과 청와대 비난으로 정쟁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적대'와 '혐오'를 넘는 '저주'와 '독설'의 정치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수구세력 결집을 통한 총선 승리다.
정치를 정상화시킬 능력과 의지를 한국정치는 상실했다. 주된 원인 제공자는 분명 한국당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무능한 정치영역 자체에 혐오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양비론의 함정은 어쩌면 한국당이 바라는 바일 수 있다.
시민은 1970년대의 유신과 1980년대의 군사정권의 암흑을 뚫고 비록 절차적 측면에 국한되었지만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또한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집단을 탄핵하여 정권을 교체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선거가 정치를 통해 입신을 달성하려는 요식행위로 전락한 지금이 사회운동이 부흥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노무현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한국사회의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선거제도와 정치제도의 개혁 등 제도화를 통한 정치의 정상화를 추구하는 데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다시 시민정신의 발현과 사회운동을 통한 변혁을 모색해야 할 때다. 개인과 집단은 정부정책에 있어 모든 수준에서 그들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알고 있다. 이러한 시민집단과 개인들이 대안을 찾는 방법들을 공공 토론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한다. 다시 시민이 깨어나야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