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당'만 26번 외친 김동연…역대 2위 후보들과 다른 길 갈까?

성적은 초라하지만…'민주당맨', '대중정치인' 변신 성공한 김동연

박근혜 탄핵 여파에서 치러진 2017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안희정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기초단체장(성남시장) 출신으로 21.2% 득표율을 기록한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와 0.3%포인트 차이였다. 문재인, 안희정이 옛 친노의 뿌리를 함께 한다는 데에 비춰보면, 무계파 혈혈단신으로 뛰어든 이 후보의 성적은 주목받을만 했다. '문재인 대세론' 속에서 친노 주류도 아닌 이 후보는 이 경선을 계기로 '민주당 잠룡'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그리고 2025년, 또 다시 탄핵 국면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예상대로 이재명 전 대표가 대권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어대명(어차피 대선후보는 이재명)' 대세론 속에서 치러진 경선에서 이 후보는 합산 득표율 89.77%를 기록했다. 2위로 탈락한 김동연 후보는 합산 득표율 6.87%였다. 과거 이 후보 수준의 존재감을 보여주진 못했다는 평가지만, 당내 여론은 물론,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후보들을 따돌리고 있는 '이재명 대세론' 속에서 김동연 후보의 분투에 주목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김 후보는 정통 민주당 인사가 아니다. '서울대 상대-기재부' 류의 엘리트 관료도 아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대학을 가지 못한 그는 은행에 다니다 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다. 평생 관료 생활을 하면서 핸디캡을 딛고 경제부총리(문재인 정부) 자리에 올라섰고, 지난 2022년 대선에선 '새로운 물결'을 창당, 정치에 처음 뛰어들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맞서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로 힘을 보탠 후 민주당에 입당해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이때문에 김 후보는 '관료형 정치인', '행정가 정치인' 이미지에 갇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김 후보가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들을 돌파하며 '대선 경선 완주'를 함으로써 '민주당 맨'이자 '대중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울어진 운동장' 수용한 김동연, '네거티브' 없이 완주

'어대명'으로 시작한 레이스 초반, 박용진, 김부겸, 김두관 등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선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란 우려들이 제기된 바 있다. 경선 룰 결정 과정에서부터 사실상 '친명계' 주류의 입김이 반영됐다. 김 후보 측은 룰 협의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며 반발했지만, '대세론'에 묻히면서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김동연 후보는 정치 지형상 자신에게 모든 것이 불리할 것임을 알고도 경선 룰을 수용하고 뛰어들었다. 김 후보는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처럼 어떤 조건에서도 결과로 보여주겠다"며 "이번 경선은 권력 경쟁이 아니라 민주당이 다시 국민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기울기가 '수직'에 가까웠지만, 정권 교체의 대의를 위해 정치적 불이익을 감내했다"며 "촉박한 시간, '대세론'에 밀려 민주당 경선이 유명무실하게 끝나는 것보다, 끝까지 전국을 돌며 당원들과 함께 '정권 교체 대의'를 역설하는 게 낫다고 봤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김동연 후보가 경선 룰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참했다면 경선 자체가 '파투' 났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민주당 경선이 '네거티브'로 흐르지 않은 것도 김 후보의 의지라고 한다. 지난 2022년 대선 경선이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후보 간 이른바 '대장동 의혹'을 두고 '네거티브' 비방전으로 점철됐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번 경선에선 추격 주자들의 '네거티브'는 자취를 감췄다. 김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친명 비명 수박 같은 분열의 언어와 결별하자"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이재명 후보와의 정책적 차별점도 또렷히 했다. 강성 이미지였던 이재명 후보가 '중도 보수론'을 들고 나왔을 때 김 후보는 오히려 '민주당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차별화 전략을 폈다. 다른 후보들이 '감세 정책'을 언급할 때 김 후보는 "감세는 핀셋감세로 해야 하며, 결국에는 '증세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원들에게는 김 후보의 이같은 행보가 인상에 남았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재명이 '중도 보수론'을 제기했을 때 당원들은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서 수용하면서도 아쉬워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는데, 김동연의 '민주당 정체성론' 강조를 보면서 놀랐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전했다.

'관료 출신'이라 약점으로 꼽히던 정책적 선명성에서, 오히려 2위 후보인 김 후보가 '민주당 색깔'을 더욱 강조한 것으로 '예상 외다', '참신하다'는 일각의 평이 나온 배경이다. 개헌 문제, 세종시 수도 이전 문제, 트럼프 대응 전략 등에서도 김 후보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강점은 돋보였다. '경제대연정 5대빅딜' 등과 함께 '서해안 RE100 라인'을 통한 기후 경제, 에너지 전환 등의 화두를 던졌다. 이는 모두 김 후보가 경기도지사 업무를 하며 제안했거나, 일부 운영하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지역 균형 발전에 있어서도 "10대 대기업 도시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는 등 구체성 있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경기도가 일부 시행중인 주 4.5일제 등은 다른 진영과 후보들이 수용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대선 경선 후보가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경선 및 최종 후보자 선출 대회'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민주당'만 26번 외친 김동연의 몸부림…역대 2위 후보들과 다른 길 갈까?

김 후보는 지난 27일 마지막 합동 연설회 연설에서 '민주당'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19일 충주체육관에서 있었던 첫 합동 연설회를 언급하며 "1958년 자유당 독재와 싸웠던, 민주당 열혈 청년 당원이셨던 그 아버지가 체육관 어디에선가 함께 계신 듯 했다. 마지막 경선인 오늘도 이곳 어디엔가 함께 계신 듯하다"며 "그 열혈 당원의 아들이, 자랑스러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것을 오늘도 이곳 어디에선가 보고 계신 듯 하다"고 했다.

김 후보의 부친은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치러진 1958년 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다고 한다. 자유당 시절 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에서 선거를 치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김 지사 부친이 지원했던 인사는 당선됐지만, 몇 개월 후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긴다. 부친은 당시 배신감과 애통함을 일기로 적었다고 했다.

"저는 민주당의 김동연이다. 민주당과 운명을 같이 할 사람"이라고 강조한 김 후보는 이 연설에서 민주당을 26번 외쳤다. "저 김동연, '민주당답게' 경쟁해 왔다. 가장 민주당다운 비전과 정책으로 '당당한 경제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든 압도적 정권교체를 위해 더 크게 힘을 모으자. 저 김동연, 4기 민주정부의 성공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

김 후보는 또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눈물, 국민통합을 향한 노무현 대통령의 외침, 팬데믹에 맞선 문재인 대통령의 분투, 이 모든 것이 자랑스러운 민주당의 역사다. 이 세 분 대통령님 직접 모시고 일했던 김동연"을 강조했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경선 전에는 당 내에서 '민주당 색채'가 약한 관료 출신 행정가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전국의 당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당원들에게 '김동연은 민주당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심어준 것으로 평가한다"며 "'탈관료' 이미지, 뚝심과 배짱이 있는 대중 정치인 이미지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한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경선 결과를 두고 '착한 2등'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합산 득표율 10% 이상을 달성하지 못한 것도 김 후보가 감내해야 할 뼈아픈 지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분열의 후유증'을 낳았던 역대 민주당 경선에 비춰봤을 때, 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2017년 경선에서 분투한 이재명 후보는 당원들과 유권자들에게 '전국 정치인 이재명'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역대 2위 후보들인 이인재, 손학규, 이낙연 등은 경선 이후 당을 겉돌다 결별 수순을 밟아 왔다. '비서 성추행 의혹'으로 추락한 안희정 지사를 제외하면, 경선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대선 후보로 나선 인물은 이재명 후보가 유일하다. 그 길을 김동연 후보가 걷게 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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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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