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에 고립된 한국당, '아스팔트 극우'가 되다

[기자의 눈] 한국당이 '정치적 이득'을 봤다는 말, 진짜?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최악의 폭력 사태를 일으키면서까지 얻은 게 있을까? 꽤 많은 정치 분석가들이 한국당의 '득'을 계산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먼저 정치 개혁을 '좌파 독재' 프레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했으며, 이 시도를 통해 지지층이 단단하게 결집하는 효과를 얻었고, 9년 여당의 타성에 젖은 당의 체질을 '투쟁하는 야당'으로 바꾸는데 성공했으며, 다음 총선에 이런 지지 기반을 토대로 문재인 정부 심판론을 공고히 한다는 수준이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자유한국당의 이번 '투쟁'은 여러모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국회 선진화법이 제정(2013년)된 이래 최악의 폭력 사태를 주도했다. 과거 국회 회의장에서 날치기를 저지하는 목적으로 행해졌던 '동물 국회' 시절의 폭력을 넘어, 자유한국당은 국회 사무처 등을 상대로 곳곳에서 국지전을 벌이며 '법안 상정(패스트트랙)'을 저지하려는 전술의, '뉴 동물 국회'를 창시했다.

이를 통해 정치적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시각이 존재하는데, 여기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한국당을 공고히 하는 그 '지지층'은 어떤 유권자들을 의미하는가. 한국당이 지지층의 단단한 결집력을 유도하고 그것을 토대로 '반독재 투쟁'에 나섰다는데, 그 구심점에 휘감아 들어가는 세력은 과연 어떤 성향의 세력들인가.

자유한국당은 현재 서울, 경기, 인천 수도권 총 122석 중, 32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남 지역 총 65석 중 50석을 가지고 있다. 32석과 50석의 차이는 힘의 균형을 깨트린다.

일례로 과거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수도권 총 111석 중 84석을 가지고 있었고, 영남 지역 총 68석 중 53석을 가지고 있었다.

12년 전 수도권 의석의 75%를 점유했던 자유한국당, 지금 점유율은 26%에 불과하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진박 감별'을 위해 수도권과 충청권을 희생시킨 결과다. 그런데 원내대표는 서울 출신(김성태, 나경원)으로만 내리 앉혀 놓았다. 서울 출신 의원들이 보수 정당의 원내대표 직에 오른다는 건 역설적으로 '수도권 취약성'을 드러낸다. 심지어 현 황교안 대표도 서울 출신이다. 서울 출신의 당대표에, 서울 출신의 원내대표, 그리고 수도권 출신 사무총장(한선교) 등, 당 3역이 수도권 출신이다. 한국당에 이런 역사가 없었다.

그러나 당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보수 색채가 강한 영남 세력이다. 영남에 기반을 둔 한국당 인사들은 하나같이 지지층 결집을 느낀다. 민주당의 한 전략가는 최근 "부산 경남은 이미 10퍼센트 이상 차이로 다 저 쪽(자유한국당)에 넘어갔다"고 했다. '수도권 얼굴'을 내세운 '영남 보수'의 굴기다. 보수적인 영남 지역 의견이 곧 중앙당의 의견이 되기 쉬워진 구조다. 영남 보수 세력은 현 정부를 '독재'와 '김정은 대변인'으로 규정하고 당 지도부에 압박을 가한다. 공안검사 출신 당대표와 딱 어울리는 '코드'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수도권의 '신보수' 세력, 특히 젊은 초선들의 힘이 '올드 보이' 영남 정치인들의 그것을 억눌렀다. 당내 '노선 투쟁'이 가능했고, 치열한 토론도 이뤄졌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영남에서 '변방'에 불과한 영일, 포항(영포라인) 지역 기반보다는 본인이 수도권(서울 종로 국회의원) 출신인 만큼 수도권 의원들을 기반으로 정치를 했다. '수도 이전' 이슈에 강했고 '중도 실용'과 '친서민' 화두를 내건 것도 그렇다. 부산 출신이긴 하나 수도권 개혁 보수 진영의 브레인으로 꼽혔던 박형준 전 의원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다 '영남 본류'를 중심으로 한 박근혜 세력에게 밀리게 된다.

박근혜 당선 이후부터 보수 영남 세력은 본격적으로 주도권을 쥐었다. 결과는? 20대 총선에서 수도권 궤멸, 충청 패배로 귀결됐다. 탄핵 전 만들어진 이 구도는 자유한국당의 '민심 풍향계'를 교란했고, 결국 탄핵이라는 정치적 선고에 직면한다. 그런데도 서울 출신 공안검사 황교안은 영남 보수 세력에 올라타 당권을 거머쥐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민심'에서 앞서고 '당심'에서 패한 현상은 매우 상징적이다. 한국당의 '영점'은 제대로 맞춰져 있는 것일까?

지금 한국당은 '강경 보수 투쟁'을 주문받고 있다. 대한애국당과 같은 '극우 세력'에도 휘둘린다. '강경 투쟁'을 부추긴다. 수도권 민심과 '스윙보터'에 민감한 인사들은 당내에서 입을 열기 어렵다. '합리적 보수'나 '중도', '수도권 민심'과 같은 개념은 실종됐다. '패스트트랙 국회 폭력 사태'에서 보여진 '수도권 4선 의원' 나경원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수도권 민심을 흡수하지 못한 것은 한국당에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자. KSOI가 26~27일 양일간 조사한 정례 조사(무선전화RDD 80%, 유선전화면접 20%, 응답률 7%, 95% 신뢰수준에 ±3.1%)에서 패스트트랙 정국 국회 폭력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유한국당에 책임을 묻는 여론이 48%, 민주당을 포함한 여야4당에 책임을 묻는 여론이 39.6%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지역에서 한국당 책임 49%, 여야4당 책임 41.5%, 인천경기에서 한국당 책임 48.1%, 여야4당 책임 39.1%다. '좌파 독재' 치고는 여론이 호의적이다. 대구경북(TK)와 부울경, 즉 영남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자유한국당 책임이라는 응답률이 높았다.

연령대를 보자. 현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20대에서 자유한국당 책임론이 45.9, 여야4당 책임론이 31.4%다. 20~40대는 자유한국당에 책임을 묻고 있고 50대 이상은 여야4당에 책임을 묻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을 중단하고 즉각 국회에 복귀해야 한다는 여론은 60.0%다. 장외투쟁을 해도 좋다는 여론은 35.3%(국회 복귀와 장외투쟁 병행 24.4%, 장외투쟁 계속해야 10.9%)에 불과했다. 여기에서도 20대 56%가 '즉각 국회 복귀'를 선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연령층을 포함한 모든 연령대에서 '국회 즉각 복귀'가 높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지역을 뺀 모든 지역에서 '국회 즉각 복귀'를 원하는 여론이 50%를 훌쩍 넘어섰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정치 분석가들의 평가대로, 한국당은 속으로 자축할지 모른다. 그 점이 한국당을 갉아먹는 부분이다. '영남'에 휘둘리면 수도권을 잃는다. 지금 한국당 내 '세력의 균형'은 붕괴됐다. '황교안과 오세훈의 당심 민심 대결'에서 본 그대로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이 호남을 잃으면서까지 수도권을 포기 못 한 이유가 별다른 게 아니다.

수도권을 잃은 정당이 한국 사회에서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적이 없다. 대권을 잡은 적도 없다. 한국당은 영남 보수, 강경 보수의 과잉 대표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조언을, 과연 한국당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홍준표 전 대표와 같은 인사들이 아직 영향력을 발휘하고 박수갈채를 받는 걸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폭력은 수도권 유권자를, 스스로 '중도'라 생각하는 유권자를 밀어낸다. 이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한국당 내에 없다는 건 '한국 정치'에 있어서 매우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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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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