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의 변신은 무죄? 유죄?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변신 자동차, GM의 꿈

"트랜스~포~메이션!" 요즘 아이들, 특히 남자 아이들이 단연 좋아하는 장난감은 ‘변신 자동차’다. 로봇과 자동차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능력을 보면, 흡사 영화 <트랜스포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만화 시리즈와 완구를 동시에 출시하며 부모들 호주머니 터는 솜씨도 제법이다.

'Transformation' - 본래 '전환' 또는 '변화'를 뜻하는 이 단어는 요즘 GM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물론 GM이 말하는 변신은 로봇과 자동차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회사’의 변신을 말한다. 과연 그들이 꿈꾸는 '변신(Transformation)'은 어떤 모습일까.

구조조정 회오리바람 몰고 올 ‘변신’

◾ 11월 1일, 메리 바라는 전체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근속 12년을 넘은 북미 지역 사무직 노동자 글로벌 전체 법인의 임원 대상으로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발표함. (만일 희망퇴직 인원이 목표에 미달할 경우 ‘비자발적인 수단’ 즉 정리해고 절차 밟겠다고 선언)

◾ 11월 중순 폰티악 파워트레인센터에서 일하던 3천명의 직원을 워렌 연구소로 이동시켜 통합함. 이들은 앞으로 엔진개발이 아니라 전기차 개발업무를 담당할 예정. 폰티악에 남은 1000명은 엔진개발 업무를 계속 이어가게 됨. 디자인센터 신규 증축사업은 무기한 보류됨.

◾ 11월 12일과 15일, 두 차례 열린 국제 자동차 컨퍼런스에서 메리 바라 CEO는 GM의 카쉐어링 브랜드인 'MAVEN(메이븐)' 사업을 집중적으로 소개함. 앞으로 GM 차량만이 아니라 타사 차량도 카쉐어링 서비스에 포함시킬 것이며, 북미를 넘어 전세계로 사업 확장할 계획 발표.

◾ 11월 26일 'General Motors Accelerates Transformation(GM은 변신에 가속 페달을 밟는다)'는 제목의 보도자료 발표. 북미에서 완성차 3개 공장, 엔진·변속기 2개 공장에 신규 물량을 배정하지 않을 것이며 내년 말까지 북미 이외지역 공장 2개를 추가로 폐쇄하겠다고 발표함.

지난 한 달 보름 남짓 벌어진 사건들을 보면 GM의 '변신'은 우선 구조조정 회오리바람이라고 볼 수 있다. 북미 공장 5개(완성차공장 3개, 파워트레인공장 2개)에 대해 신규 물량을 ‘배정하지 않겠다(unallocated)’는 표현을 썼지만, 신규 물량이 없을 경우 결국 공장 폐쇄 외에는 답이 없다. 즉, 북미 이외 2개 공장 폐쇄와 합하면 모두 7개 공장을 내년 연말까지 문을 닫게 된다.

북미 지역 사무직 노동자들 규모는 5만 4천 명, 이중에서 근속 12년 이상을 만족하는 이들은 1만 8천 명 정도이다. 그럼 GM의 사무직 구조조정 목표치는 얼마일까? 11월 26일 ‘변신’ 보도자료에 숫자가 공개되었다. 북미 지역 사무직의 15%를 줄인다는 것. 그렇다면 약 8,100명. 근속 12년 이상 노동자들의 절반 가까이를 잘라낸다는 거다. 실로 어마어마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흑자 정리해고 : 사상 최대 실적이 공장 폐쇄로

이 정도 구조조정이라면 기본적으로 이익 폭락 또는 적자 확대에 따른 '비용 절감' 목표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GM의 경우는 그런 일반적인 경우라 보기 어렵다. GM의 3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세전이익(EBIT)이 32억 달러로 최근 실적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래 그래프, 단위 : 10억 달러)


GM의 3분기 실적발표 날짜는 10월 31일, 그러니까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11월 1일) 북미지역 사무직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공표한 것이다. 뒤이어 북미지역 7개 공장 폐쇄도 공식화했다. 생산직·사무직 구조조정 모두 북미를 향하고 있는데, 북미에서의 성적이 별로 안 좋은 탓일까? 아니, 그 반대이다.

지난 3분기 GM의 사업부별 이익 기여도를 보면, 32억 달러의 세전이익 중 북미(GMNA)에서 기록한 28억 달러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북미(GMNA)의 경우 지난해 3분기 21억 달러에서 올해 28억 달러 이익을 기록해 무려 3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GM Financial 역시 이익이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북미와 함께 전체 이익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아래 그래프)


남미와 한국 법인이 포함된 GMI의 경우 지난해 3분기에는 4억 달러의 세전이익을 기록한 반면 올해 3분기에는 1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GM이 최근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는 자율주행 사업부(GM Cruise)는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즉, 정리해 보자면 GM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시점에, 이익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북미 사업부를 향해 정리해고·희망퇴직·공장폐쇄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글자 그대로 ‘흑자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것. GM이 내세운 명분은 여유가 있을 때 구조조정을 해야지 이윤이 하락할 때엔 이미 늦는다는 이유다. 그럼 이윤이 떨어질 땐 구조조정 안할까?

'변신'이 몰고 온 노동력의 양적 변화

이런 구조조정은 GM의 노동력 구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까? <인사이드경제>는 GM이 매년 미국 증권거래소에 제출하는 Form-10K를 전수조사해 이를 추적해 보기로 했다. Form-10K는 한국 법인들이 공시하는 ‘사업보고서’ 개념과 비슷하되 기업정보 공개 수준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우선 지난 10년간 GM의 대륙별·사업부별 고용인원의 변화 추이를 표로 나타내 보았다.


유럽(GME)과 해외부문(GMIO), 그리고 남미(GMSA)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고용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잘 아다시피 유럽사업부 오펠을 지난해 매각했기에 2016년까지 3만 8천에 달하던 유럽 고용은 2017년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펠 매각으로 인해 GM의 전세계 고용규모는 사상 최초로 20만 명 밑으로(18만 명) 떨어지게 된다.

또한 지난해 연말에 기존 해외부문과 남미사업부를 통합하여 새로운 해외사업부(GMI)를 만들게 됨으로써 지난해부터 고용규모 역시 통합된 수치로 공시되고 있다. 전년(2016년)에 해외·남미를 합한 고용규모가 5만4000명이었으나, 2017년 GMI로 통합된 수치가 4만7000명이니 1년 사이에 무려 7천 명의 인력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북미(GMNA)의 경우 파산보호신청을 거치며 집중적인 공장 폐쇄가 이뤄지던 2009~2010년에 고용 규모가 대폭 줄어 1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가 2011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해 2017년에 이르면 2008년 고용 규모를 능가하는 12만4000명에 도달한다. GM 파이낸셜 역시 지난 7년 사이 고용 규모가 3배로 늘어났다.

이제 북미지역에서 사무직 8000명을 축소하고 내년 말까지 7개 공장을 폐쇄하게 된다. 1개 공장 당 평균 고용인원이 2000명이라 가정하면 무려 1만4000명이 해고되는 셈이며, 사무직까지 합하면 구조조정 대상은 2만여 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18만 명의 글로벌 고용규모는 16만까지 떨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4만 명가량의 유럽 고용규모가 축소된 것은 구조조정이라기보다 오펠 매각 때문이니 이점을 보정한다고 해도 글로벌 고용규모는 20만 수준. 역대 최저치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수를 줄인다더니, 그게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걸까?

더 주목할 부분 : 노동력 구성의 질적 변화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봐야 할 데이터가 있다. 이번엔 GM의 Form-10K를 전수조사해서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노동력 구성 변화를 추적해 보았다. Form-10K는 미국의 월급제(Salaried), 즉 사무직 노동자와 시급제(Hourly), 즉 생산직 노동자의 규모를 구분해서 공시하고 있다. (아래 표)


우선 생산직과 사무직을 합해보면 2008년에 9만2000명이던 미국의 고용규모가 2017년이 되면 10만 3000명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2008년에 생산직(6만2000)은 사무직(3만)의 2배를 넘었으나, 2017년에는 사무직 규모(5만2000)가 생산직(5만1000)을 넘어서게 된다.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제조업 자동차회사에서 생산직을 넘어서는 사무직 규모라니!

사무직 고용규모의 성장 속도는 더욱 놀랍다. 2009년(2만6000) 대비 사무직 규모가 2017년에 2배(5만2000)로 늘어난다. 즉, 미국의 GM 사무직 절반 이상이 근속 10년 미만이라는 얘기다. 근속 12년 이상 사무직 구조조정이 완료되면, GM 사무직의 평균 연령층은 상당히 낮아지게 된다.

결국 북미지역 구조조정으로 고용 규모가 줄어들지 않겠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GM은 근속 12년 이상 사무직을 대폭 줄이는 한편,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연구·개발 부문에 신규 인력을 계속 충원하고 있다.

생산직 역시 내년 연말까지 미국에서 4개의 공장이 폐쇄될 위기에 처했지만, 여기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GM의 다른 공장으로 전환배치 될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100%의 인력을 흡수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해고 규모는 예상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자, 그렇다면 미국에서의 노동력 구성은 어떻게 될까? 구조조정으로 생산직과 사무직이 조금씩 줄어들긴 하겠지만, 미래차 연구·개발 부문에서 사무직은 계속 충원된다. 즉, 사무직 규모가 생산직을 훨씬 앞서게 되며 전체 고용규모는 2008년보다 더 늘어나며 평균 연령은 더 낮아진다.

GM의 변신은 계속된다

사무직 노동자를 대규모로 잘라내면서 또 한편으로는 빠른 속도로 충원한다?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이다. GM은 사무직 노동자를 더 젊게 바꾸려 한다. 커넥티드카, 인포테인먼트, 카쉐어링, 자율주행차 … 이런 새로운 개념에 친숙한 노동자들로 ‘올드 보이’를 대체하려는 것.

한국GM 역시 연구·개발 법인을 분리하는 것과 함께 100명의 신규 인력을 충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것 역시 GM이 현재 북미에서 벌이는 일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신규 인력 채용과 함께 ‘올드 보이’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1년 전에 출범한 자율주행차 법인 ‘GM Cruise’는 40명으로 출발해 이제 1천명으로 고용이 늘어 무려 25배나 증가했다. GM의 2인자인 댄 암만이 책임을 맡고 있기도 하다. 매년 2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는 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위해, 이익을 가장 많이 창출한 북미지역 1~2만 명 생산직·사무직 올드 보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GM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메리 바라 CEO가 각종 컨퍼런스에서 자사의 카쉐어링 브랜드 ‘MAVEN(메이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메이븐 플랫폼을 통해 개인들끼리 차를 빌려쓸 수 있는 P2P(peer to peer) 서비스도 개시했고, 북미를 넘어 전세계에 출시한다고 한다. ‘메이븐 코리아’, 즉 한국에서도 GM의 카쉐어링 서비스를 구경할 날이 멀지 않았다.

지난 몇 차례의 글에서 얘기했듯이, 자동차산업에 카쉐어링과 같은 서비스업이 새롭게 들어오면서 서비스 관련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겨난다. 기존 생산직과 사무직으로만 나눠지던 고용형태에 새로운 ‘군(群)’이 추가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일자리까지 포함한다면, GM의 고용 규모는 (최소한 미국에서만큼은)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1~2년이 지난 뒤에 우리가 보게 될 GM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GM과는 다른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변신 자동차' - GM이 가진 꿈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하지만 그 문제를 다루기 전에 우린 다른 얘기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 GM의 변신은 과연 성공할까? 변신이 놀랍기는 하지만 이게 성공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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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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