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결국 KDB자동차?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밀실 교섭 걷어치우고 사회적 공론화 장에 나와야

'광주형 일자리' 운명의 1주일 … 현대차 투자 협상 총력, 12월 2일 국회 예산 심의까지 타결 계획 (연합뉴스, 11월 25일)
'진짜 마지막' 광주시 현대차 투자 유치 가능할까? 국회 예산 심의 법정시한까지 일주일, 협상 타결 마지노선 (광주드림, 11월 25일)

요즘 언론지상을 도배하고 있는 기사 제목들이다. 모두들 '타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인사이드경제>는 언제나 그렇듯 삐딱하게 바라본다.

"대체 광주형 일자리에 어떤 정부 예산이 투입되길래 12월 2일 예산 심의 날짜가 데드라인이라는 거야?."

광주형 일자리는 밀실 교섭과 쪽지 예산?

처음 시작할 때부터 ‘깜깜이’였다. 도대체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인 정보는 모조리 통제되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지역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지역 노-사-민-정 대화'를 통해 진행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게 노동자와 시민들은 거기서 나오는 내용을 단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11월 15일 국회 예결위 시한까지 협상을 마무리해야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어떤 뉴스를 봐도 광주형 일자리가 왜 정부 예산과 연계되는지, 도대체 어떤 항목에 얼마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건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언론에게 묻고 싶다. 대체 왜 이런 건 심층취재 안하시는 거죠?

알만한 국회 관계자들 모두에게 물어보았다. 한마디로 '넌센스'라는 답변들이었다.

"광주형 일자리 협상 타결지어오면 국회가 그냥 예산 지원해주는 거수기냐?"
"대체 어떤 상임위에 어떤 예산이 필요하다는 건지 꼬리표 붙여온 게 하나도 없는데 뭘 어쩌라고?"
"이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결국 11월 15일 타결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데드라인을 넘겼음에도 광주형 일자리 협상은 지속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데드라인이 설정되었다. 12월 3일, 국회 예산 결정 시한까지란다. 도대체 집단적인 최면에라도 걸린 걸까? 무슨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지금 ‘운명의 1주일’을 살고 있단다.

또다시 국회 관계자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답은 한가지였다.

"이미 상임위별로 부처별 예산 다 검토해서 올라온 예산안에 광주형 일자리 관련 항목은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뭔가 새롭게 예산에 반영하려면 여당 실세들이 쪽지 예산으로 밀어넣는 수밖에 없어요."

쪽지 예산. 이거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에 입에 거품 물고 반대했던 거다. 또 '내로남불'이란 말인가.

▲ 지난 10월 25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시·노동계·전문가가 참여한 '광주형 일자리' 원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막판 극적 타결 효과 노림수

제발 집단 최면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자.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는 일사천리로 타결되어 속도를 낸다 하더라도 2021년에나 자동차 생산이 시작되는 사업이다. 내년부터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므로 투입될 예산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다.

12월 3일까지가 시한이라는데 3일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는 날짜이다. 그 전까지 타결짓고 국회를 설득하고 쪽지 예산으로 반영을 한다 하더라도 매우 무리한 일정이다. 도대체 무슨 명목으로 예산을 신설할 것이며 그에 따른 뒷감당은 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국민 세금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해도 좋다고 누가 허락했는가.

만약 정말로 불요불급한 예산이 있다면 내년에 추경으로 편성해서 사용해도 될 일이다. 급하게 국회 예산 결정 시한을 데드라인으로 삼으면서까지 무리할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이놈의 데드라인 놀음에 청와대와 정부, 여당까지 모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답은 한 가지뿐이다. ‘막판 극적 타결’의 쇼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민-정이 한 발짝씩 양보해서 광주형 일자리라는 드라마를 성사시켰다고 선전하기 위해서이다. 정부가 현대차 자본을 위해 엄청난 양보와 특혜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 이런 반전 드라마 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무적 투자 주인공은 문재인 정부

밀실 교섭이 잘 진행되던 때에는 아무런 정보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교섭이 파행에 이르고 11월 15일 시한을 넘기자 정보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이야기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정보를 얻으려면 대화와 교섭이 파국을 맞아야 한다. 교섭 파탄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느라 언론에 각자 유리한 정보를 흘려대니 말이다.

가장 먼저 새어나온 정보는 광주형 일자리의 자본 구성이었다. 본래 광주형 일자리 설계도에 따르면 광주시가 21%의 지분, 현대차가 19%의 지분을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나머지 60%의 지분 중 20%는 협력업체 등과 함께 일종의 시민펀드를 만들고, 40%는 재무적 투자(FI)를 받는다는 구상이었다.

<인사이드경제>도 그동안 많은 의구심을 갖고 지켜보던 대목인데, 경형 SUV를 만드는 완성차 공장을 새로 짓는 이 사업에 도대체 누가 투자를 하려 할까? 현대차야 정권과 광주시가 아예 찍어놓고 시작했으니 그렇다 치고, 협력업체들도 어떻게든 쥐어짜면 20% 채울 수 있다 치자. 그럼 재무적 투자 40%는 대체 어디서 구해온단 말인가?

답은 산업은행,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정부가 직접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11월 13일자 <한겨레>와 <경향> 보도에 따르면, 광주시는 지난 8월말에 산업은행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해줄 것 그리고 이 사업 관련 운영자금 대출을 요구했다고 한다. 관련 언론보도들을 종합해서 광주형 일자리 관련 자본구성을 표로 나타내보면 아래와 같다.


자본구성만 보면 '준 공공기관'

광주형 일자리를 위한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금은 총 7000억. 이중에서 4200억은 은행 대출을 받고 나머지 2800억은 자본 투자로 구성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광주시는 21%(590억), 현대차는 19%(530억)을 투자하며, 협력업체들이 20%(560억)를 책임진다.

자기자본의 40%(1120억)은 재무적 투자를 받는다는 것인데, 광주시는 일단 15%에 해당하는 420억 투자를 산업은행에 요청했다. 왜 15%일까? 은행법상 개별 기업에 재무적 투자를 할 수 있는 한도가 15%라서 그렇단다. 여기에 광주시는 4200억에 달하는 은행 대출 역시 산업은행이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것은 도대체 뭔가? 산업은행이 4200억 대출도 내주고 420억의 재무적 투자에도 참여한다. 여기에 지자체인 광주광역시가 590억을 출자한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자금이 무려 5210억,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금 7000억에서 무려 74.4%를 차지한다는 말 아닌가! 중앙·지방정부가 무려 3/4의 자금을 댄다면 이건 공공기관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또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나머지 700억의 재무적 투자는 어디서 끌어올까? 과연 이 사업에 투자할 천사 같은 앤젤 펀드가 존재할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산업은행이 15%만 투자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일까? 한국GM에도 지분을 17%나 가지고 있고, 대우조선해양에선 산업은행이 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는데?

관련 법령(은행법 등)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15%보다 높은 지분을 투자할 꼼수들이 널려 있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치는 것이다. 이것은 정권 핵심부가 움직이면 쉬운 일 아닌가. 우연의 일치일까? 금융위 의결을 거쳐서 투자할 수 있는 지분의 최대 한도치가 40%로 되어 있지 않은가.

광주형 일자리가 아니라 KDB 자동차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다면 충분히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산업은행의 재무적 투자는 15%가 아니라 40%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중앙·지방정부가 투입하는 자금은 총 5910억이 되어,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금 7000억의 무려 84.4%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사업은 '광주형 일자리'가 아니라 산업은행(KDB)의 영문 이니셜을 딴 ‘KDB 자동차’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인사이드 경제>는 KDB 자동차와 같은 구상을 무조건 반대할 생각은 없다. 아니, 어쩌면 지지해줄 수도 있다. 자동차산업과 같은 국가기간산업을 국영기업 형태로 운영하는 게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갈 거라면 제대로 가야 한다. 국가가 주도해 완성차업체 하나를 설립할 거라면, 이걸 왜 지역 노사민정 대화에 맡기는가? 그것도 노동자·시민은 전혀 알 수 없는 밀실 교섭, 깜깜이 교섭의 형태로 말이다. 게다가 투자액의 대부분을 산업은행, 즉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감당할 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된다면 현대차 자본에게 매달릴 이유도 없다. 현대차는 지분의 19% 참여를 한다고 하나, 실제 대출금 4200억까지 포함하면 전체 자금의 7% 밖에 안 되는 자금을 출자할 뿐이다. 2대 주주도 아니고 3대 주주에 해당한다. 왜 현대차에 매달리며 안달복달을 하는가. 게다가 현대차가 투입한다는 차량은 향후 대세가 될 전기차·미래차가 아니라 경형 SUV라는데 말이다.

이미 산업연구원 등이 지난 수 년 동안 연구 프로젝트를 벌이며 수백~수천억을 쏟아부어 개발해둔 전기차 플랫폼도 존재한다. 굳이 현대차 특혜 논란까지 벌이며 경형 SUV라는 미심쩍은 내연자동차에 운명을 맡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KDB 자동차라면 마땅히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둔 전기차 플랫폼을 사용하는 게 정당하지 않겠나.

데드라인 집어치우고 공론화 장에 나와야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세상 모든 일자리 이야기는 ‘일자리위원회’에서 만들 것처럼 분위기를 잡으며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미 일자리위원회는 죽어 버렸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묻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광주형 일자리란 것이 올라오더니 이건 지역 노-사-민-정 대화로 추진한다고 했다. 도대체 그 내용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려지지 않는 밀실교섭이 진행되더니, 이제 와서 껍질을 하나만 벗겼을 뿐인데 사실은 준 공공기관, 국영기업이나 다름없는 형태이다.

공공기관 또는 국영기업 형태로 법인을 설립한다면 여기에 근무하는 노동자들 역시 준 공무원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의료·주택·교육 관련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고 지속가능성도 담보할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

그런데 여전히 정부는 현대차 자본에게 매달리며 교섭을 이어가고 있다. 헌법과 노동관계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교섭 내용들 일부도 새어나오고 있는 와중에 “노동계가 양보해야 한다”는 소리만 합창할 뿐이다.

이건 아니다. 막판 극적 타결 쇼를 위해 준비된 거짓 데드라인부터 걷어내자. 그리고 위장막 속에 숨은 밀실 교섭 내용을 사회적 대토론의 장에 공개해야 한다. 정녕 청년들 일자리를 걱정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고민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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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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