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전기차·미래차로 뛰어드는데 한국은?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가 의미 있고 효율적?

"(한국GM) 국내 공장에 적당한 생산량을 확보하려면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가 훨씬 의미 있고 효율적일 것." (3월 14일, 최종구 금융위원장)

지금 자동차산업 트렌드를 제대로 알고 하는 얘기일까? 너도 나도 전기차·미래차를 향해 달려가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GM 본사와 협상을 벌이던 인사들이 교섭 한복판에서 저런 얘기를 쏟아낸다니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아예 협상 막바지에 GM의 변명을 대신 떠들어주기도 했다.

"군산에서 미래차를 생산하는 방안을 정부가 제안했지만, GM은 올해 전 세계 전기차(볼트) 생산량이 3만5000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한국 생산을 약속할 수 없다고 답했다." (4월 26일)

요컨대 연간 3.5만 대 수준 생산량을 어떻게 다른 공장에 나눠주느냐는 것이다. 자동차산업 특성상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10만대 이상은 뽑아내야 손익분기점이 생길 텐데, 그렇다면 전기차 생산은 오히려 적자의 원인이 된다는 것. 정말 그런가요? 팩트체크 한번 해봅시다.

전기차 연간 10만대 생산은 글로벌 톱 수준

그렇다면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 전기차 생산량은 얼마나 될까? 웹 서핑을 하다가 전기차 관련 각종 데이터를 모아서 업로드 하는 웹사이트(ev-sales.blogspot.kr)를 발견했다. 오~! 이 사이트 정말 유용하다, 독자들께서도 한번 방문해 보시길. 이 곳 데이터를 활용해 지난해 전기차(EV) 생산량 글로벌 톱 20위까지의 랭킹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우선 표를 보자마자 숫자보다 생소한 이름에 놀라게 된다. "처음 보는 업체들이 뭐 이렇게 많아?” Top 20에 중국 완성차업체만 10개, 무려 절반에 달한다. BYD(비야디자동차), BAIC(베이징자동차그룹), Roewe(로위), Zhi Dou(쯔더우), Zotye(쭝타이), Chery(체리자동차), JMC(장링자동차), Changan(창안자동차), JAC(장화이자동차), Geely(지리자동차)….

그만큼 중국이 세계에서 전기차 관련 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국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순위(PI)를 보면 2016년 순위(‘16 PI)에 비해 변동폭이 매우 크다는 점도 확인된다. 전기차 시장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얘기이다. 한국의 현대차도 20위로 턱걸이를 하며 지난해 Top 20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생산량을 한번 보자. 어? 연간 10만대 넘는 업체가 고작 3개뿐이야? 20위인 현대차의 지난해 전기차 생산량은 고작 2.3만 대에 불과하다. 아니, 그렇다면 도대체 이 정도 생산량으로 어떻게 먹고 산다는 말인가? 최종구 금융위원장 언급대로라면 모두 비효율적인 생산에 불과할 텐데 말이다.

전기차만 만드는 테슬라 정도를 제외하면, 글로벌 업체들 대부분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함께 생산하는 ‘혼류생산’ 방식을 취하고 있다. 홍영표 의원이 언급한 GM의 연간 3.5만 대를 생산하는 미국의 오리온 공장의 경우, 2016년까지는 내연기관차인 소닉(아베오의 미국명)만 생산하다가 작년부터는 전기차인 볼트를 혼류생산 하고 있다. (아래 표)

연도

차종

미국 판매량

2017

Sonic

30,290

Bolt EV

23,297

2016

Sonic

55,255

▴ GM 미국 오리온 공장 생산차종 및 연도별 미국 판매량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한국 전기차 시장

"그래봐야 전기차 생산량·판매량은 150만 대 안팎 수준 아닌가?" 옳은 말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고작 1~2%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전기차 부문의 성장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빠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는 전기차 생산량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판매량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이와 관련해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매년 발간하는 'Global Electric Vehicle Outlook(글로벌 전기차 전망)'이라는 자료를 참조할 수 있다. (이 자료는 구글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자료의 2018년 판을 보면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주요 국가의 전기차 판매량, 시장 점유율을 연도별 비교 가능한 데이터로 제공하고 있다. 우선 국가별 판매량을 살펴보도록 하자. (붉은 박스로 강조한 것은 필자의 것임)


우선 중국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1만 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2017년에 무려 58만 대로 성장했다. 미국 시장의 경우 지난해 20만 대 판매에 그쳤는데 말이다.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는 시장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노르웨이다. 지난해 6만2000대의 전기차 판매량으로 중국과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치이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역시 연간 5만 대 안팎을 기록하며 판매량 성장속도가 빠른 편이다.

미국·중국·유럽을 제외하면 일본과 한국에서의 판매량이 가장 높은 편이다. 지난해 일본은 5만4000대, 한국은 1만4000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판매량이 늘어난 수준을 비교해보면 일본은 고작 2.2배인 반면 한국은 28.8배에 달한다.


위 표는 판매량이 아니라 시장점유율 변화를 보여주는데 여기서도 놀라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판매량이 가장 높았던 중국과 미국의 경우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1~2%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르웨이의 시장점유율은 39.2%에 달했다. 비록 신차 판매의 점유율이긴 하지만, 노르웨이에서 팔리는 차량 10대 중 4대가 전기차라는 의미 아닌가.

더 놀라운 곳은 한국이다. 지난해 한국의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1.3%에 불과했지만 지난 5년간 무려 30배 이상 상승했다. 중국(22배), 영국(17배), 독일(16배), 노르웨이(12배)와 비교해봐도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 시장의 성장 속도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기록을 갱신할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언급한 사이트(ev-sales.blogspot.kr)에서는 한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모델별 판매량 데이터도 제공하고 있는데, 작년과 올해 Top 5를 나타내보면 아래 표와 같다.


2017년 연간 판매량이 14,226대였는데 올해의 경우 상반기에만 이미 12,496대를 기록해 거의 2배의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올해 한국 시장의 전기차 점유율은 2%를 거뜬히 넘겨 3%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왜 그러셨어요?

한국 정부도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올해 6월에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전기‧수소차 보급 확산을 위한 정책방향”에 따르면, 매년 전기차 공급량을 늘려 2022년까지 누적대수 35만 대의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아래 표)


위 표를 보면 2018년에는 2만6500대의 전기차를 신규 보급하겠다는 것인데, 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이 1만2496대였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임을 알 수 있다. 내년 4.2만 대, 2020년 5.8만 대, 2021년 8만 대, 2022년이 되면 11만 대를 넘게 되어 아마도 점유율 두 자릿수를 넘보게 될 것이다.

한국 시장의 빠른 성장률을 의식한 글로벌 자본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르노삼성의 트위지(2인승)는 고속도로를 비롯한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지 못한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3배 가까이 뛰어오르고 있다. 이런 추세의 영향일까? 르노·닛산 그룹이 트위지의 생산공장을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옮길 것이 확실시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GM은 전기차 볼트의 한국 시장 공급량을 작년 대비 10배로 늘렸고, 내년에는 거의 1만대에 육박하는 물량을 한국으로 수입해올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물량이면 현대차가 울산공장에서 생산하는 아이오닉이나 코나 EV 생산량에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그런데 말이다. 한국 정부의 고위 관료는 왜 한국GM에 전기차가 아니라 내연기관차가 더 효율적이라는 말을 내뱉었을까? 같은 글로벌 자본인 르노·닛산은 전기차 생산지를 한국으로 옮겨온다는데 말이다. 왜 여당 실세라는 양반은 3.5만 대 물량을 한국에 나눠주기 어렵다는 GM 본사의 말을 앵무새처럼 대신해 줬을까? GM은 현대차의 전기차 생산량에 맞먹는 물량을 수입해올 거라는데 말이다.

게다고 수입해오는 쉐보레 볼트(Bolt EV)의 개발도 한국에서 이뤄졌고, 저 차량에 장착되는 부품의 60%가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말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미국으로 선적해서 장착한 뒤, 그 중 거의 1/3에 해당하는 물량을 다시 한국으로 수입해오는 이 짓이야말로 비효율의 극치가 아닌가? 물류·선적 비용만 2배로 깨지는 일인데 말이다.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한국의 전기차 시장은 세계 최고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를 팔아주는 사람의 입김이 더 세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전기차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완성차업체의 미래가 없다는 것도 상식이다. GM에게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걸까. 정부 고위 관료들과 여당 실세 나리님들, 상반기 GM과 협상할 때 도대체 왜 그러셨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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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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