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자동차 산업, 엔진과 운전수의 명예퇴직?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제조업·서비스업을 모두 포괄하게 될 미래자동차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4차 산업혁명 관련해서 가장 많이 접해본 질문이다. 로봇산업과 AI(인공지능) 발전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라는 얘기는, 대개의 4차 산업혁명 논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 즉 암울한 전망의 한 단면이다.

미리 고백한 것처럼 <인사이드경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개뿔'도 모른다. 하지만 자동차산업이라면 구체적으로 얘기해볼 만한 것들이 있다. 본래 미래자동차 관련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주제는 마지막쯤에 다뤄보려 했으나, 이미 ‘광주형 일자리’나 ‘플랫폼 노동’ 등 미래자동차 시대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올라온 상황이라 예정보다 좀 앞당기기로 했다.

(관련 기사 ☞ : '완성차'의 해체, 자동차산업에 거대한 변화가 온다
② 모두가 전기차·미래차로 뛰어드는데 한국은?)
무엇이 '미래자동차'인가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미래자동차’의 개념 정리도 해놓지 않고 달려왔다. 이미 여러 학자와 논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미래자동차'를 정의하고 있는데, <인사이드경제>는 조심스럽게 다음의 4가지를 미래자동차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전기차만을 미래자동차의 핵심 요소로 본다면, 앞으로 벌어질 자동차산업 거대한 변화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핵심적으로는 제조업으로 분류되던 자동차산업 개념이 바뀌게 된다. 자율주행(로봇) 택시 등 서비스업(Transportation as a Service)이 활기를 띠면서 미래자동차는 제조업과 서비스산업 모두를 품게 된다.

또한 우리는 여전히 미래 ‘자동차’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즉, 자동차산업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며, 단지 ‘이런 자동차산업’에서 ‘저런 자동차산업’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당연히 일자리의 양과 질, 그리고 노동조건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과연 어떤 변화가 몰려오게 될까.

제조업 부문 : 핵심 부품들이 바뀐다

제조업으로서 미래자동차의 핵심은 ‘자동차 심장의 변화’이다. 심장이 엔진에서 배터리로 바뀐다면, 엔진부품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반면 배터리·모터 등의 부품 제작이 활기를 띠게 된다. 새 심장에 새로운 혈관들이 필요하듯, 새로운 구동 시스템에도 다양한 부품들이 필요하다.

물론 전기차 생산라인에서 조립될 부품수는 내연기관에 비해 상당히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아래는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2015년에 작성한 '세계 친환경 자동차 산업 동향'이라는 자료에 나오는 '내연기관 및 전기차 부품 수 비교' 표이다.


3만 개에 달하는 내연기관 부품수는 전기차에 와서 1.8만 개로 무려 40% 가까이 줄어든다. 하지만 단순히 부품 숫자만을 비교해선 안 된다. 7000개에 달하는 엔진부품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배터리·모터·인버터·감속기 등 전기차에 필요한 새로운 부품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전장품·전자부품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일종의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기계장치로 분류되던 자동차가 이제 각종 센서·컨트롤러·인포테인먼트가 접합되며 점차 전자제품처럼 바뀌는 추세가 아닌가. 그렇다면 전장품·전자부품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훨씬 커진다. 그래서 삼성·SK·LG 등 재벌 계열사들이 너도나도 전장부품 산업에 뛰어들고 있지 않던가.

세계 전장부품 시장규모 역시 매년 두 자리수 성장을 하고 있으며, 자동차 원가에서 전장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어나 최근 40%를 넘었다. 전기차의 경우 전장부품 비중은 무려 70%가 넘는다. 그런데 왜 부품 숫자는 3000개에서 900개로 뚝 떨어지는 걸까? 그건 대부분의 전장부품들이 ‘모듈’ 형태의 완성품으로 조립되어 완성차업체로 납품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이건 전기차이건 큰 변화가 없을 것 같은 부품에도 변화가 밀려온다. 우선 타이어의 경우 소음을 줄이고 마모방지를 위해 보다 큰 회전저항과 무게 부담을 견디게 해주는 전기차 전용 타이어의 필요성이 증가한다.

자동차 내에서 열과 온도를 통제하는 공조 시스템 역시 개념이 약간 달라진다. 엔진 과열을 식혀주는 방식과 배터리 과열을 해결하는 방식이 똑같을 수는 없다. 또한 공조 시스템은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열을 활용하게 되는데,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과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열이 달라 활용 방식도 달라진다.

완성차와 부품사에서의 일자리 변화

조립하는 부품 수가 줄어든다면 완성차 일자리의 감소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아직은 전기차 생산 총량이 크지 않아 대부분 내연기관차와 혼류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아직은 엔진과 연료탱크도 조립하고, 배터리와 모터도 장착해야 하기에 큰 변화가 없지만, 만일 전기차 생산량이 늘어 전용 생산라인이 생길 경우 일자리 수는 줄어들게 된다.

물론 테슬라(Tesla)처럼 전기차 전문생산업체가 완전히 새롭게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추세를 보건대 전기차 시대가 개막하더라도 완성차 부문 판도는 (테슬라같은 신규 업체가 아니라) 기존 완성차업체들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품사의 경우 어떤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냐에 따라 명암이 엇갈린다. 엔진·변속기 관련 부품을 생산해온 부품사의 미래는 암울하다. 전기차에도 내연기관차에도 필요한 부품의 경우, 전기차 전용 부품 개발과 새로운 공급선 개척 여부에 따라 운명이 갈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일찍부터 배터리·모터 등 전기차 관련 부품에 눈을 돌린 업체들은 성장 가능성이 넓어진다. 실제로는 거대한 자본을 가진 이들만이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도 삼성·SK·LG 등 재벌 계열사들이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거나 기존 부품을 전기차에 맞게 개발하고 있다.

어떤 재벌 계열사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냐고? 놀라지 마시라. LG화학과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이 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에 들어가는 부품 절반을 납품한다. SK이노베이션과 삼성SDI 역시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전기차 배터리 업체 강자들이다. 이제 이들 재벌 계열사는 전자·반도체산업이 아니라 자동차산업 부품업체로 분류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지점이 있다. 앞서 전장부품 사례에서 본 것처럼, 완성차에서 조립하는 부품 수는 줄어들지만 전장부품은 날이 갈수록 복잡·거대해지고 있으며 관련 시장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재벌 계열사들 모두 전장부품에도 막대한 투자를 쏟아 붓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 관련 기술이 꾸준히 개발되면서 관련 부품도 각광받기 시작한다. 특히, 자율주행차의 눈(eye) 기능을 하는 라이다(LIDAR)를 비롯해 다양한 자율주행 시스템에 투입되는 부품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부품 생산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정리해 보자면, 미래차 시대가 열릴수록 완성차에서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 숫자 이상으로 부품산업에서의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품산업 역시 엔진·변속기 관련 업체들의 미래는 어둡지만, 전기차 관련 부품과 함께 자율주행 관련 새로운 부품이 늘어나면서 전체 부품산업의 규모와 일자리는 팽창할 가능성이 높다.

서비스업 부문 : 새로운 영역 창출과 '긱 일자리(Gig Jobs)'

기존 자동차산업에서 서비스업이라 하면 수리·정비 서비스 수준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 자동차는 ‘서비스로서의 운송 수단(TaaS : Transportation as a Service)’이라는 신조어처럼 서비스 부문이 새롭게 확장되며 팽창할 것이 확실시된다.

가장 먼저 확장되고 있는 서비스 부문은, 한국에서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카 쉐어링(Car Sharing) 서비스다. 자동차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꼭 저걸 구입하고 소유해야 할까? 한국에는 집집마다 세탁기를 들여놓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소액의 사용료만 내면 쉽게 세탁기를 ‘빌려서’ 사용할 수 있는 빨래방이 널려 있으니까 말이다.

이 개념을 자동차로 확장한 것이 바로 카쉐어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쉐어링(Sharing)이라는 단어 때문에 ‘공유 경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하는데 그건 개념에 맞지 않다. 카쉐어링을 통해 사용되는 차량은 특정 회사 또는 개인이 ‘소유’한 차량이다. 이를테면 동네 놀이터나 공터처럼 ‘공유’된다고 볼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빌려 쓰는 경제’에 가깝다.

다음으로 확장 가능성 있는 서비스 부문은 택시 사업이다. 다만, 이 부문은 미국에서 우버(Uber)가 그러했고 한국에선 카카오 드라이버가 논란이 된 것처럼, 기존에 이 사업에 종사하던 자본가들과 자영업자들 이해관계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만일 자율주행(로봇) 택시가 도입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게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에, 아마도 자율주행 차량의 경우 사람을 운송하기보다 물건을 수송하는 택배업을 경유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안전성에 대한 고객 신뢰가 쌓인다면 얼마든지 택시·운수업으로 진출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렇듯 미래 자동차의 서비스업 부문의 경우 카쉐어링처럼 새로운 영역과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하고, 택시·운수업처럼 기존 산업부문과 충돌하거나 경쟁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 부문에서 창출되는 일자리 상당수가 '(고객 또는 자본가가) 필요로 할 때에만 계약을 체결해 노동하는' 이른바 '긱(GIG) 일자리'라는 점에서 많은 사회적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플랫폼 노동' 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시킨다는 의미의 ‘O2O 서비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를 당선시켰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일자리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던 만큼, 바로 이 ‘긱 경제(Gig Economy)’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래 그림은 최근 각종 국제 컨퍼런스에서 GM이 핵심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자사의 카쉐어링 브랜드인 ‘메이븐(MAVEN)’ 관련 프리젠테이션이다. 잘 들여다보면 GM은 메이븐을 통해 단순히 카쉐어링 서비스 사업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서비스부문에서 '긱 일자리(Gig Jobs)'를 찾아주고 연결시키는 일종의 노동력 소개·공급업도 하고 있다.

맨 아래 휴대폰 세 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메이븐이 하고 있는 3가지 기능이다. 첫째, 개인적 용도로 차를 빌려 쓰고 싶을 때 어떤 차를 언제 빌릴 것인지를 신청할 수 있다. 둘째, 차량 태워주기, 개인 차량 빌려주기, 택배업·택시업 등 서비스 차량을 통한 일자리를 지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메이븐이 보유한 차량들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긱 일자리' 관련해서 두 번째 휴대폰에 예시된 내용은 흥미롭다. 월·수·금은 언제든 일할 수 있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특정 시간대에만 일할 수 있다는 점이 기입되어 있다. 일할 수 있는 시간대에 필요한 고객과 연결을 시켜주고 소정의 수수료를 챙긴다. 이 모든 일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가능하도록 메이븐은 플랫폼을 제공한다.

일자리, 안녕들 하십니까?

이제 정리해보자. 전기차가 주력이 되는 미래자동차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완성차 일자리는 감소하며 엔진·변속기 관련 부품업체도 축소가 불가피하다. 반대로 미래차 부품과 자율주행 관련 부품의 필요 증대에 따라 부품산업은 확장된다. 여기에 카쉐어링이나 택시·운수업 등 자동차 관련 서비스업이 팽창하며 ‘긱 일자리’ 등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

따라서 미래자동차가 무조건 일자리를 축소할 것이라는 예견은 편협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조업 중심으로만 보면 일자리는 약간 축소되거나 현상을 유지할 것이나, 서비스업까지로 확장해서 보자면 자동차산업에서의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난다고 할 수도 있다. 여기에 민주노조의 적극적 역할이 더해지면 실제 늘어나는 일자리 수를 더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이러한 가능성을 오히려 틀어막는 방향의 정책이 집행되고 있어 걱정부터 앞선다. 우선 일자리 축소가 예견되는 완성차 부문에서 오히려 새로운 ‘광주형 일자리’를 끼워넣으려 한다. 그것도 경형 SUV라는 내연기관차를 생산한다는 것인데, 시대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면 오히려 부품산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미래자동차 시대는 완성차가 부품사를 선도하는 과거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품산업이 완성차를 끌고 가는 그림이 펼쳐질 수도 있다. ‘광주형 일자리’가 미래자동차로의 산업 혁신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또한 새롭게 서비스업에서 창출되는 ‘긱 일자리’ 또는 ‘플랫폼 노동’의 경우 ‘호출노동’에다 특수고용을 가미하며 변형·발전시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특수고용처럼 취급하며 노동조합 결성을 비롯한 노동기본권 일체가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자 ILO 협약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곧 특수고용을 비롯한 자영노동자(self-employed workers) 전반에게 노동 3권 보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긱 일자리’나 ‘플랫폼 노동’의 질이 더 하락하기 전에 ILO 협약을 비준하고 특수고용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순서이다.

하지만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을 보면, 무려 20년이나 기다려온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은 여전히 후순위로 밀려 있다. 이처럼 미래자동차 시대를 대비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 이들 구체적 쟁점, 즉 ‘광주형 일자리’ 문제와 ‘플랫폼 노동’ 등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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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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