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인공 발급 문서에 방글라데시 '인신매매성 보증금' 명시, 알고 있었나

[고용허가제와 인신매매] ① 방글라데시 '이탈보증금'과 고용허가제 양해각서

최근 우즈베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자국 고용허가제 노동자를 한 사업장에 묶어두기 위한 인신매매 성격의 벌금·보증금 제도를 운용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 문제는 이들 나라만의 일탈일까? 이주노동 현장에선 사업장 이동 금지 등 강제노동 조항을 둔 고용허가제가 파생시킨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한국 정부와 송출국이 맺은 협약에 '무단이탈자나 미등록 체류율이 늘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방글라데시가 자국 고용허가제(E-9) 노동자에게 징수하는 인신매매 성격의 이탈보증금을 한국산업인력공단(산인공)이 인지하고 용인해 온 정황이 확인됐다. 중도 귀국한 이주노동자가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자국 국영기관에 반드시 내야 하는 확인서를 산인공이 발급해왔다. 해당 확인서엔 보증금 제도가 운용되는 사실이 언급된다.

보증금 운용 이유는 경제적 취약성을 부여해 허가 없는 이직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에 '인신매매 보증금'이 방글라데시 당국의 자의적 일탈이 아닌, 이직 금지 등 강제노동 성격을 가진 한국 고용허가제의 구조적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신매매 성격 보증금 제도 운용 명시된 확인서, 산인공이 발급

4일 <프레시안>은 '한국행 방글라데시 고용허가제 노동자 보증금 지침(2020)'을 입수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출국 전 거액의 보증금을 보에셀(BOESEL)에 예치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사항을 규정한 문서다. 보에셀은 해외 인력 송출 업무를 독점하는 방글라데시 국영기관이다.

보에셀은 2010년대 말쯤부터 자국 고용허가제 노동자에게 10만 혹은 30만 타카(한화 약 120만~400만 원)의 보증금을 받아 왔다. 10~30만 타카는 방글라데시 제조업 노동자 최저임금 8개월~2년치에 달하는 큰 금액이다. '사소한 이유로 직장을 옮길 경우 보증금 전액이 몰수된다'는 내용의 각서도 받았다.

<보증금 지침>에는 'HDR korea 확인서(근무기간을 채우지 못한 고용허가제 근로자용)'라는 제목의 양식이 딸려 있다. 'HDR korea'는 산인공을 뜻한다. 통상 3년인 고용허가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귀국한 이주노동자는 보증금 절반을 몰수 당한다. 나머지 절반이라도 받으려면, 산인공이 작성해주는 자신의 근무이력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산인공 확인서'엔 이탈보증금 제도가 운용된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이 문서의 수신란에는 "산인공 방글라데시 EPS 센터"와 "주방글라데시 대한민국대사관"라고 쓰여 있다. 주요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보에셀에 납부한 보증금을 환급받기 위해서는 '보증금 환급 지침 2020'에 따라, 한국에서 근무기간을 완료하지 않고 방글라데시로 귀국한 사실에 대해 한국산업인력공단 방글라데시 EPS 센터가 발급하는 확인서가 필요합니다.

아래 양식(의견 기재란_편집자)에 한국산업인력공단 방글라데시 EPS 센터의 의견을 기재하고, 직인과 서명을 날인한 후 보에셀 이메일로 통보하는 동시에 신청인이 기재한 이메일로도 보내주시길 센터 관계자에게 요청드립니다."

'UN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는 이주노동자가 입국 전 예치한 거액의 보증금이나 이직 시 부과되는 벌금을 인신매매 수단으로 규정한다. 한국 인신매매방지법에 따라 성평득가족부가 고시한 식별 지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가 자유롭게 일을 그만두거나 옮길 수 없는 강제노동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보증금 제도의 목적에서도 인신매매 지표가 확인된다. <보증금 지침> 1조의 제도 취지 중 하나는 "한국에서 방글라데시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이 장기간 동일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려는 태도를 함양시키기 위해서"다.

▲방글라데시 보에셀의 '한국행 방글라데시 고용허가제 노동자 보증금 지침(2020)' 중 보증금 환급 신청자가 받아야 할 '한국산업인력공단 확인서' 양식. ⓒ프레시안

방글라데시 언론 "산인공 조언 따라 보증금 만들어"…고용허가제 영향?

산인공의 지침과 조언이 보증금 제도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줬다는 방글라데시 현지 보도도 있었다. <쇼모이TV(SomyTV>는 지난달 13일 보에셀 관계자를 인터뷰해 "산인공 지침에 따라 보증금을 받는 것"이라는 답변을 보도했다. 이달 19일에도 보에셀은 <쇼모이TV> 측에 "산인공 조언 및 해외동포복지·해외고용부 승인에 따라, 반환할 수 있는 보증금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보에셀이 언급한 산인공의 지침과 조언은 한국이 방글라데시와 맺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이 확인한 양해각서에는 "사업장 무단이탈자나 불법(미등록) 체류 상태의 노동자 비율이 다른 송출국의 평균 비율을 초과하면, 한국 고용노동부는 송출국 고용노동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 배정 인원(쿼터) 축소, 송출 일시 중단 또는 양해각서 효력 해지 등 조처를 할 수 있다"는 제재 조항이 있다.

방글라데시가 이런 제재를 피하려면 한국으로 보낸 자국 노동자의 사업장 이탈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 수단이 보증금이었던 셈이다. 실제 보에셀은 자사 홈페이지 공고 글에서 "(미등록 체류로) 장래 한국에서 방글라데시 신규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취업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불이익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표현했다.

제재 조항의 배경에는 한국 고용허가제의 이직 금지 원칙이 있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 동의가 없는 경우 예외적으로만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허용한다. 권고사직, 휴업·폐업, 사용자에게 부당한 피해를 겪을 때 등이다. 이마저 녹음, 서류 기록 등의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인정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임금체불이나 성희롱을 겪어도 합법적으로 직장을 옮기기 어렵다.

국제노동기구(ILO),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등은 고용허가제가 '직장을 옮길 자유'를 원천 차단해 강제노동 폐지 협약(ILO협약 제105호)을 위반한다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방글라데시 보에셀의 '한국행 방글라데시 고용허가제 노동자 보증금 지침(2020)' 중 제12조 내용과 번역 내용. ⓒ프레시안

'이직 금지 원칙' 고용허가제가 낳은 이주민 인권 침해

한국 시민사회와 이주노동계에서는 산인공이 인신매매 성격의 방글라데시 보증금 제도를 알고도 용인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주노동 문제를 오래 다뤄온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최소한 산인공 방글라데시 현지 EPS 센터는 보증금의 존재를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확인이 필요한 사항으로 보인다"고 했다.

섹 알 마문 전국이주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보증금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 3년여 전 이주노조가 산인공에 공문을 보내 이미 항의했다"며 "그때 공단은 '모른다'고 했는데, <보증금 지침>이 운용된 걸 보면 이주노조에 거짓말했다"고 비판했다.

또 '산인공 확인서'에 담기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의 한국 내 근무이력은 "산인공이 알려주지 않으면 방글라데시는 알 수 없는 정보"라며 "한국 당국이 '모른다'거나 '다른 나라의 일'이라며 선을 긋는 건 책임 회피"라고 주장했다.

마문 부위원장은 나아가 한국 고용허가제에 내재한 강제노동 구조가 양해각서에 담긴 제재조항과 인신매매 성격의 보증금의 구조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등록 체류 상당수는 부당대우, 임금체불, 열악한 노동환경 등 노예처럼 일하는데도 이직할 수 없게 하 고용허가제의 문제에서 발생하는데, 여기엔 한국 정부와 제도의 책임도 있지 않나"라며 "이 책임을 송출국에만 불이익으로 지우는 건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8일 노동부와 산인공에 양국 간 고용허가제 양해각서, 보증금 제도 인지 여부 등에 대해 물었으나, 3일까지 답을 듣지 못했다.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의 노동 담당 참사관은 지난 1일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보에셀에 30만 타카를 보증금으로 예치한 은행 지급확인 영수증.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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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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