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골목 누비는 '라이더 후보'…"200만 원 벌어도 살만한 세상으로"

[다시 뛰는 독자 진보정치] ② 길한샘 정의당 청주시의원 후보

더불어민주당은 중도보수, 국민의힘은 보수를 표방한 가운데, 6.3 지방선거 구도도 양당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 독자적 진보정치의 도약을 꾀하는 이들이 있다. '신호등 연대'를 이뤄내고 이번 선거에 50여 명의 후보를 낸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다. 묵묵히 길을 내는 진보3당 후보들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 편집자

길한샘(34) 청주시의원 정의당 후보는 지난 19일 아침, '박카스' 같은 문자 한 통을 받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시대 주인인 청년들을 잘 대변하고 계시네요. 우리 아들도 복대동에서 12년 살았어요. 청주에서 살고 싶고 일하고 싶어 하는 우리 아들을 보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파이팅하세요!"

새벽 5시 반경, 친분이 없는 한 지역 주민이 보낸 문자였다. 길 후보가 만든 "청주에서 일하고 살고 싶습니다" 피켓을 보고 "우리 아들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며 그의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한 것이다.

이날 선거운동 동행 취재로 <프레시안>이 만난 길 후보의 하루는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었다. '가난한 살림'의 정당 후보로 모든 선거 실무를 손수했고, 라이더유니온 충북지회장 활동도 틈틈이 병행했다. 이날도 신규 조합원이 가입해 틈새 시간마다 휴대전화를 들고 상황을 챙겼다.

길 후보는 청주의 3년 차 배달라이더다. 노동법 사각지대의 특수고용 노동자로 살아온 진 9년째다. 그 전엔 학습지 교사, 프리랜서 강사, 건설 현장 형틀 목수 일 등을 거쳤다.

그에게 프리랜서와 특수고용노동자의 차별 설움은 남 일이 아니다. △4대 보험 반값 납부 △공공배달앱 상생협의체 구성 △누구나 상병수당·유급병가 △직장 내 갑질 전담기구 설치 △대중교통 확대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지방선거에 입후보한 이유다.

▲지난 19일 선거운동 중인 길한샘 청주시의원 정의당 후보. ⓒ프레시안(손가영)

"나 정의당 후보요" 대신 시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

길 후보 선거운동엔 재미가 있다. 길 후보는 지난달 1일 '시의원 연습생'이라 자신을 홍보하며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작업복인 라이더 옷을 입고 아이돌 연습생처럼 이름표를 배와 등에 걸었다. 그리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명한 밈인 '박스 피켓'을 준비했다. 박스 골판지에 손 글씨로 쓴 피켓이다. 시민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싶은 그만의 방식이었다.

문구도 고심 끝에 정했다. 길 후보 선거운동의 핵심은 소통력이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시민들이 진짜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한다고 했다. "다른 거대 양당과 똑같은 형식으로 할 거면, 군소정당은 선거운동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란 생각도 오래 했다.

젊은 세대를 주 대상으로 삼은 그는 "사회초년생 노동법 교육 필요합니다" "일자리는 AI가 아니라 사람에게" "취업해도 버티기가 힘들어요" 등 피켓을 자주 들었다. 지역 건설노동 현장을 위해 "건설업 지역민 우선 고용해야 한다"는 제안을, 주민 불편함을 듣고선 "전동 킥보드 지정위치 반납제 필요하다"는 공약 제안 피켓도 들었다. "맞아요. 이거 너무 필요해요"라고 호응하는 주민도 여럿 만났다.

▲길한샘 후보가 사용한 박스 피켓 일부. ⓒ프레시안(손가영)

▲길한샘 후보 선거 홍보물. ⓒ길한샘

현수막과 명함 전략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짰다. 지역구인 가경동·복대2동엔 건널목 인도에 차양과 의자가 없는 곳이 많아, 땡볕을 힘들어하는 노인 인구가 많았다. 그에게 허락된 현수막은 최대 4개다. 그는 현수막 문구를 "횡단보도 인근 차양막 및 의자 설치!"로 통일했다.

"나 길한샘이요. 나 정의당이요. 현수막에 이렇게 쓴다고 사람들이 읽을까요? 동네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또 보편적인 공약보다 진짜 지역구 시의원이 말할 수 있는 것으로."

같은 이유로 명함에도 얼굴과 이름을 크게 넣지 않았다. 대신 슬로건 "이백따리의 반란"을 크게 적었다. 길 후보는 "사람들이 후보자 이름, 얼굴을 보고 투표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백따리는 월급 실수령액이 200여만 원인 사람을 낮춰 부르거나 자조하는 신조어다. 지난 1월 KBS '추적60분'의 "200따리는 될 수 없어" 편이 널리 회자하며 유명해졌다.

슬로건 밑엔 "200만 원을 벌어도 살만한 세상으로 가는 길! 생활밀착형 정치로 시작하겠습니다"란 글을 새겼다. 길 후보는 노동하는 이가 근로소득으로 잘 살 수 있는 사회, 200여만 원 소득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갖춰진 사회를 이번 선거에서 말한다.

▲길한샘 후보가 19일 오전에 한 유권자로 부터 받은 응원 문자. ⓒ프레시안(손가영)

행정과 당사자를 잇는 연결고리가 정치

그는 라이더로 일하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어서 차별받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그중 4대 보험 반값 납부를 공약한 그는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100% 자신이 부담해야 하므로 적지 않은 이들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는다"며 "이런 선택을 안 하게 하는 게 정치다"라고 말했다.

그는 "행정과 시민을 연결하는 정치"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를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충북도에서 최초로 청주 이동노동자 쉼터를 만들어내며 이 필요성을 더 느꼈다고 했다. 청주시청이 이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라이더유니온 충북지회와 청주의 라이더들이 적극 참여하고 의견을 냈다. 하루 평균 80명이 이용하는 등 높은 호응을 얻으면서 청주시청은 오는 7월 2호점 개점도 예정해 뒀다.

그는 "우리가 시와 대화할 때 '당사자와 소통하면서 만들어야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거듭 설득했고, 그에 따라 쉼터 위치나 조건 등이 조정되면서 라이더의 의견이 반영됐다"며 "이런 연결고리가 없다면 절대 좋은 시정은 나올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정과 시민이 긴밀히 연결돼 있어야 사회가 건강한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할 정치인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 후보는 "나는 이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을 잘할 자신이 있다. 경험도 있고, 준비도 돼 있다"며 "지금 우리 사회엔 의회 내에서만 싸우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드는, 필요하면 실태조사도 하고 기자회견도, 1인 시위도 하면서 발 벗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선거공보물을 운반 중인 길한샘 후보. ⓒ프레시안(손가영)

▲충북대학교 앞에서 선거운동 중인 길한샘 후보. ⓒ프레시안(손가영)

그의 오토바이는 오늘도 뛴다

이날 오후 충북대학교 앞에서 30분가량 피케팅과 명함 인사를 이어가던 그에게 한 라이더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말했다. 그는 "내가 꼭 찍을 거니까, 피켓에 쓴 이름 좀 키워라. 이름이 잘 안 보인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유세차량은 자신의 오토바이다. '탑 박스(짐을 넣는 상자)' 4면에 선거 홍보물을 부착해 청주 시내를 활보할 예정이다.

원외 군소정당 후보인 그에게 3000만 원가량이 드는 유세 트럭은 그림의 떡이다. 그는 "지방선거 후보들이 보통 4000~5000만 원의 선거비용을 치르는데, 나는 1100만 원을 예산으로 잡았다"며 웃으며 말했다.

어렵사리 구한 한 달 짜리 선거사무소 자리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개소식을 며칠 뒤로 미뤘다. 2년 전 책방을 겸한 카페가 폐업한 자리로, 오랫동안 비어있어 관리가 되지 않은 탓이다. 길 후보는 조금이라도 선거비용을 아끼기 위해 선거 공보물 운반도 손수 맡았다. 이날도 오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선거사무소 여러 곳을 방문했다.

원외 군소정당 후보의 어려움을 묻자 그는 "그런 식의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스스로 약속하고 선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할 시간에, 우리가 시민들에게 왜 감동을 주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이제 다시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자고 다짐했다"며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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