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텃밭' 안동에서 인정받는 '녹색 후보'…허승규의 세 번째 도전

[다시 뛰는 독자 진보정치] ① 허승규 녹색당 안동시의원 후보

더불어민주당은 중도보수, 국민의힘은 보수를 표방한 가운데, 6.3 지방선거 구도도 양당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 독자적 진보정치의 도약을 꾀하는 이들이 있다. '신호등 연대'를 이뤄내고 이번 선거에 50여 명의 후보를 낸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다. 묵묵히 길을 내는 진보3당 후보들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 편집자

"저 친구 알지. 잘하지. 구닥다리들하고는 달라. 새로 하는 게 많대."(남선면 A 이장)

"자격있다. 다른 거 다 떠나서 좌고우면, 자리 연연 안 하고 8년을 이렇게 안 했나."(안동 시민 B 씨)

"그렇게 저거(녹색 옷) 입고 나오지 말라 해도. 여서 진보가 되겠나? 무소속으로만 나왔어도 벌써 당선이다."(임하면 C 이장)

엄지를 치켜 세우며 먼저 인사하는 이부터 "녹색당이 뭐고?"라며 눈을 흘기는 이까지, '녹색 점퍼 허승규'를 바라보는 안동 시민의 반응은 다양했다. 2018년, 2022년, 그리고 2026년까지 경북 안동 시의원 선거에 세 번째로 도전하는 허승규(37) 녹색당 후보다.

"'보수 텃밭' 안동에 녹색당이 웬 말이냐?" 8년 전엔 이런 말이 쉽게 들렸다면, 지금은 달라졌다. 지난 11일 <프레시안>이 본 허 후보의 선거운동 현장에선 냉소보다 희망에 대한 말이 더 자주 들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선면의 A 이장은 "우리도 다른 정치 좀 해보자"고 말했다.

▲지난 11일 남선면사무소 이장협의회에서 선거 출마 인사를 하고 있는 허승규 녹색당 후보. ⓒ프레시안(손가영)

"인생 삼세판" 산불 현장 누빈 청년에게 열린 민심

"인생 삼세판이다. 최선을 다해봐라."

오전 11시, 허 후보의 녹색 점퍼 등 뒤에 적힌 '세 번째 도전, 준비된 동네 일꾼' 슬로건을 보며 남선면 이장들이 말했다. 곧 있을 남선면 이장협의회를 위해 면사무소에 모인 이들이었다. 각 당 후보가 다 모여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으려고 연신 인사하러 돌아다니던 와중이었다.

남선면은 농촌이다. '저 후보를 아느냐'고 묻자, 모여 있던 5명의 이장이 한 목소리로 '산불'을 말했다. 지난 3월 안동·의성을 휩쓴 대형산불 재난 이후, 허 후보가 피해 지역 지원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것이다. 허 후보는 경북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으로 활동했고, 지난 3월엔 국무총리실 산하 산불피해 재건위원으로 위촉됐다.

곧이어 이동한 임하면 이장협의회에서도 격려와 농담섞인 훈계가 오고 갔다. 오대2리의 C 이장은 "거 참 이거(녹색) 입고 나오면 안 된다고 안 했나"라며 반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안동은 좀 그런 게(보수색채) 있지 않느냐. '진보' 이런 거 하면 (당선이)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장들의 알은 체는 4년 전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두 번째 도전이었던 2022년엔 농촌 지역 인지도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허 후보는 선거구인 강남동, 남선·임하면 세 곳 중 도심지인 강남동에서만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지난 11일 남선면사무소 이장협의회를 방문한 허승규 후보. ⓒ프레시안(손가영)

▲허승규 후보가 지난 11일 안동 강남동 행정복지센터 장수학교를 방문해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지역 밀착형 후보…"당만 보고 뽑는 시대 끝내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투표 날 전까진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쁘다. 이날 허 후보도 오전 7~9시 출근 인사를 시작으로 남선·임하면 이장협의회, 안동 가락중앙종친회 모임, 강남동 장수학교 등을 왔다 갔다하며 주민들에게 일일이 악수하고 명함 인사를 했다.

20분만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도 부재중 전화는 네 통이 쌓였다. 쉬는 시간마다 주민들에게 지지를 구하는 문자, 전화를 돌렸다. 방문한 지지자를 맞이하기 위해 틈틈이 선거사무소로 돌아가 자리도 지켰다.

'8년 차' 허 후보는 이제 길거리에서 지지 시민도 자주 마주친다. 이날도 서류를 제출하러 들린 안동세무서에서 한 직원이 그를 붙잡고 '돈사 악취 때문에 정말 힘들다'고 먼저 말을 걸었다. 가까이에 돼지 축사가 밀집한 강남동의 오랜 문제다.

돈사 악취 개선은 허 후보 공약이기도 하다. 강남동 주민자치회 위원인 그는 이미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몇 달 전, 그는 지역 주민 3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개선 촉구 의견을 시청에 전달했다. 그러자 시청은 냄새 측정기를 갖춰, 3번 넘게 기준치를 위반하면 해당 축사에 행정 조치를 한다는 개선책을 냈다.

꼼꼼한 지역 밀착 공약은 허 후보의 장점이다. 그는 이날 방문한 강남동 장수교실에서 넙죽 허리 인사를 하며 "제가 이번 주말에 700세대에 예비공약 공보물을 넣을 건데, 거기 어르신 공약도 넣었습니다"라며 "한 번 보시고, 안 괜찮으면 다음 주에 쓴소리해 주시고, 괜찮으면 허승규 주변에 소개 좀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허 후보는 멀리 있는 농협을 가리키며 "주민들이 잘 찾는 곳인데, 버스정류장이 멀리 있다"며 "젊은 사람들은 운동 삼아 걸어 다닐 수 있지만, 어르신들은 그게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 같은 도시는 마을버스가 있지만 안동은 그런 인프라가 없다"며 "안동형 마을버스, 수요응답형 버스, 마을공유차량 도입 등 이동권 개선 정책을 공약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경북의 무료 버스 조례를 활용한 청소년 무료 버스 정책도 공약에 있다.

▲지난 11일 안동 강남동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지지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허승규 후보. ⓒ프레시안(손가영)

기득권 맞선 18%의 가능성…"필사의 노력 다할 것"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입성하면 좋겠어요. 기득권 가지고 자꾸 정치하는 거 말고요." (장수학교에서 만난 시민 D 씨)

"안동도 변해야 된다. 언제까지 당만 보고 뽑아주노. (허 후보랑)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다. 근데 이번엔 좀 잘하는 사람 뽑아 줘야 한다."(신흥리 주민 윤효길 씨)

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난 일부 시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마음을 허 후보에게 투영하기도 했다. 가락종친회에서 만난 주민 E 씨는 "365일 신발 3~4켤레 떨어지듯 활동한 거 알고 있다"며 "젊은이가 의회 들어가서, 젊은 친구들이 잘 살 수 있는 곳,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이 결혼하고 일도 하고 나이 들고 그렇게 잘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들어 달라"고 허 후보에게 말했다.

녹색당은 허 후보의 당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 허 후보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18%를 얻어 3위로 낙선했지만, 당시 당선자와 표차는 불과 329표였다. 강남동에선 25%로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이철승 경북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번엔 유세 트럭도 준비한다"며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안 가리고 다 한다는 마음으로,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에서 허승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묻자, 허 후보는 녹색 정치를 답했다. 그는 "녹색당은 어느 정당보다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과제와 지역 사회의 방향을 잘 연결 지을 수 있는 정당"이라며 "특히 경북은 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인데, 이미 많은 농가가 위협받고 있다. 기후 정치 관점 없이 접근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공공교통 확충은 녹색 정치의 좋은 예다. 허 후보는 안동에서 5년 넘게 '버스타기 좋은 안동'이라는 공공교통 운동을 펼쳐 왔다. 그는 "변방일수록 교통은 불편하다. 즉 지역불평등이 교통불평등이고, 교통격차 해소가 곧 지역 격차 해소가 된다"며 "신공항 건설 같은 무분별한 개발보다 동네마다 마을버스 이동권을 강화하는 일에 예산과 정책을 우선하는 게 지구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가치를 담은 녹색 정치 세력이 안동시의회에 들어가면 더 역동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며 "거대 양당에도 도움 된다. 정책 경쟁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일 KBS대구 안동 시민 여론조사에선 의회에 진출하지 않은 정당들의 지지율이 1%로 집계됐다. 허 후보는 이에 "달리 생각하면, 1%도 안 되는 정당의 후보가 18%를 득표하고, 강남동에선 25%를 득표한 것 자체가 가능성"이라며 "오히려 이걸 축소하려 하는 게 기성정치의 논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녹색당이 생소하다는 건 당장에 누구도, 허승규도 해결 못 한다. 결국 당선돼 녹색 의정 활동으로 그 가치를 사후 증명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며 "오만 가지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당선이 돼야 한다. 필사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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