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민주당'의 부상…만약 김부겸이 대구시장에 당선된다면?

[박세열 칼럼] 문재인의 실패, 그리고 이재명의 '뉴민주당'

김부겸의 대구시장 출마는 이번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다. 모든 미디어의 관심을 오래된 내륙 도시 대구로 붙잡아 두고 있다.

김부겸의 대구 출마에선 몇 가지 포인트가 보인다. 첫째, 역대 민주당 후보 중 최고의 스펙이다. 민주당 점퍼를 입은 전직 국무총리를 능가할 스펙은 없다. 둘째, 역대 어느 선거보다 거침없는 '동진'이다. 김부겸은 대구를 돌아다니며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자고 외치고, 수도권과 호남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를 기꺼이 용인하고 전략적, 전술적으로 공히 김부겸을 뒷받침한다. 셋째, 민주당 대선주자급 인사의 TK 본진 출격이다. TK는 군사독재 시절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것 외에, 민주화 시대 이명박, 박근혜, 이재명 대통령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특히 TK는 민주진영 대통령까지도 배출했다. 이 사실을 인식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한명의 민주당 계열정당의 유력한 대선주자가 대구에 등판했다.

물론 TK 출신 인사들이 "결국 민주당 대구시장은 안될 것"이라거나 "대구 시민들이 막판에 국민의힘에 표를 몰아줄 것"이라고 하는 말들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강고한 지역의 정서가 있다. 선거 이슈는 '대구 지역 경제' 문제가 될 것이다. 수년간 경제적 발전이 없는 대구 시민들의 불만이 관건이다. 이번 선거를 다른 각도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김부겸의 출마는 진보 진영에서 '뉴민주당'의 서막이 될 수 있고, 보수 진영에서 '뉴국민의힘'의 서막이 될 수 있다. 전자는 긍정적 힘으로 추동되고, 후자는 '해체'에 가까운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수의 황금 시대는 70년대~80년대였다. 미국에선 존F케네디의 죽음에 따른 좌절, 무질서한 68혁명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70년대 새로운 보수주의를 끌어올렸고, 레이건과 대처로 상징되는 80년대 신자유주의 '벨에포크'를 열었다. 90년대 '리버럴 진영'은 정권을 잡기 위해 다른 길을 모색한다. 미국의 빌 클린턴은 '뉴민주당(New Democrats)'을 내세웠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을 천명하며 보수적인 정책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대중과 괴리된 '타협 없는 진보주의'를 벗어나 대중의 감각에 맞춰가기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러자 '경제 이슈'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사라졌다.

그리고 서구는 '계급 정치'에서 '정체성 정치'의 시대로 돌입했다. '경제 문제'가 아니라 '문화 전쟁'이 최전선이 돼 유권자의 표심을 갈랐다. 정체성 정치는 '부족주의'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민주당은 다시 왼쪽으로 옮겨갔다. 남편인 빌 클린턴이 '중도'로 이동시킨 민주당을,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선거에서 역대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되는 공약을 내세우고 다시 '왼쪽'으로 옮겨놓았다. 결과는 트럼프의 '마가(MAGA) 세력'에 참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에선 '리버럴 우위'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극우 열풍'이 불었다. 극우 선동가들은 세상을 퇴화시키는 '리버럴 악마들'에 대항하는 '부족주의 전사들'을 자처했다.

그런데 한국은 조금 다르다. 어쩌면 지금 미국이 겪었던 90년대 '뉴민주당'의 시대와 흡사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직선제를 쟁취한 후 서구 민주주의가 겪어온 과정을 짧은 시간동안 압축해서 겪었다. 이후 6공화국 체제는 근 40년 가까이 보수 우위의 시대였다. 중간에 민주당(리버럴 진영)의 반격(노무현)이 있었지만, 우린 그것이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 윤석열에게 정권을 넘겨준 문재인의 실수는 '노무현(진보 의제)으로의 회귀'를 꾀했던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박근혜 탄핵 여파로 정권을 쉽게 잡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보수 진영의 착각은 더 심각했다. '윤어게인' 세력은 윤석열이 한국의 트럼프고, 자신들이 한국의 '마가'라고 생각한다. 공유하는 시제도 가치도 다른 한국의 극우는 여전히 과거 냉전 구도의 도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은 다른 글에서 시도하고자 한다.) 그래서 한국의 리버럴 세력은 이재명을 선택했다. 이재명은 빌 클린턴의 '뉴민주당'이나 토니블레어의 '제3의 길'에 가까운 노선을 내세우고 거침없이 보수의 영토로 파고들었었다. 그리고 이제 민주당은 김부겸을 내세워 '보수의 심장'으로 동진 중이다.

한국에서도 '경제 이슈' 측면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노선 차이는 액상화되고 있다. 이건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적 투쟁의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학자이자 포린어페어스 편집장을 지낸 파리드 자카리아는 경제 성장이 어느정도 이뤄지면 '생산 수단'을 두고 싸우는 이념 투쟁(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장이 '정체성 정치' 투쟁의 장으로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실제 지금 한국의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은 대중의 관심사에서 멀어졌고, 대신 정체성 정치, 즉 페미니즘, 낙태 문제, 인종(이민자) 문제 등이 선거에서 표를 가르는 더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선진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은 2010년대 후반부터 경제 체제 면에서 국제사회가 공히 인정하는 글로벌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정체성 정치는 주로 포퓰리즘적 특성으로 나타난다. 계급 투쟁에서 포퓰리즘 정치로 이행한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미국 민주당 등 리버럴 진영은 이 포퓰리즘 전쟁에서 마가 세력에게 패했고, 유럽 역시 극우 세력에게 패하기 일보 직전이다. 반면 독특한 것은 한국의 포퓰리즘 경쟁에서 리버럴 진영(민주당)이 승리하고, 보수 진영(국민의힘)이 패배했다는 점이다. 리버럴 진영은 이재명을 발굴했지만, 보수진영은 '윤어게인'의 늪에 빠져들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압축 경제 성장'처럼 민주주의 역시 고도화를 '압축적'으로 이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또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인종 문제'나 '이민자 문제'에서 꽤 자유로운 '단일민족(?)'국가라는 점도 있다. 여기에 한국적인 '교육열'과 '엘리트 중심' 사회가 가지는 특유의 '선비 문화(?)'도 작용했다. 한국에선 선을 넘는 주장이 서구 선진국과 달리 '예의 없다'고 여겨진다.

한국은 서구의 민주주의 경향성과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가 '극우 포퓰리즘'의 열풍을 겪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에선 '리버럴 포퓰리즘'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정체성 정치'의 시대를 한국적으로 겪어내고 있는 셈이다. 서구의 포퓰리즘 경쟁이 트럼프나 극우세력의 과격한 방식, '회귀적 방식'(공동체를 회복하고, 전통을 지켜내자)에 승리를 안겨줬다면, 이재명의 포퓰리즘 정치는 확장적 방식으로 보수 진영을 공략하고 있다. 민주당의 대통령이 '고용 유연화'를 먼저 말하고 '핵잠수함' 건조를 추진하며 '자유무역'의 기수가 되면서 전통적 경제 이슈(성장이냐 분배냐)를 프레임 밖으로 밀어냈다. 이제 유권자들은 진보와 보수 경제 정책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구분하지 않는다. 검찰개혁 이슈에서 당 내 '진보파'를 제압했다. 어젠더를 밀어붙이는 방식에서는 거침없는 '트럼프적' 면모도 읽힌다. 거기에 '윤어게인'에 잠식된 국민의힘은 어설픈 음모론과 냉전 사고방식, 혐오에 기반한 정치로 표를 계속 잃고 있다.

다시 처음의 화두로 돌아가서, 김부겸의 등판과 대구시장 선거의 결과가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만약에 김부겸이 당선된다면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다. '보수의 심장'이 '새로운 보수'로 민주당 진영의 김부겸을 선택하는 것이지, '보수의 심장'이 '진보의 심장'으로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이건 '보수의 해체 재구성'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보수가 변하려면 진보를 잠식해갈 '뉴국민의힘'이 필요한데,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스스로 깨닿기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뉴민주당'은 이제 시작인 것처럼 보인다. 이재명과 김부겸의 '제3의 길'이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를 줄지 주목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0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2·28기념중앙공원에서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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