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선박 호위를 요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유럽 국가들한테는 협조하지 않으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미래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위협했고 중국에는 이달 말로 예정된 방문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15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해협의 치안 유지를 위해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다른 국가들과 논의하고 있다"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백악관이 전했다.
그는 미 해군과 파트너 국가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계속 개방된 상태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단지 해협을 계속 열어두는 것 뿐인 아주 작은 노력인데, 어느 나라가 우리를 돕지 않을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며 본인이 언급한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 등을 압박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이 나라들이 와서 자기들의 영토를 보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곳은 그들이 에너지를 얻어오는 장소"라며 "어쩌면 우리가 애초에 거기에 있을 필요조차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석유가 많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7개국과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대부분 NATO 국가들이다. 우리는 항상 나토를 위해 존재해 왔고,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그들을 돕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위해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 전화 인터뷰에서도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는 국가들이 해협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면서 "해협의 수혜자인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돕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맹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을 여는 데 협조하지 않으면 나토의 미래가 "매우 암울할 것"이라고 말해 영국과 프랑스 등을 겨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통화를 했다면서 "영국은 최고의 동맹국으로 여겨질 수 있는 나라다. 하지만 내가 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들은 오고 싶어하지 않았다"라며 영국 측이 미국이 이미 이란의 군사 능력을 상당 부분 약화시킨 뒤에야 함정을 보내는 것을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영국이 군함 파견보다는 다른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국방부가 성명에서 "해당 지역의 해상 운송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동맹국들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BBC 방송에 출연한 에드 밀리밴드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 장관은 영국이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해협 개방 유지 방안에 대해 논의해 왔으며, 기뢰 제거 드론(무인기) 파견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협 재개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경우 애초부터 군함을 포함한 군사 파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는데,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은 16일 중동 지역에서의 소규모 해군 임무 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2024년 홍해에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부터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EU 차원에서 '아스피데스'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이 임무의 반경을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EU의 외교관들과 관계자들이 전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해당 임무에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함정 각각 1척씩이 투입돼 있으며 필요에 따라 프랑스 함정과 또 다른 이탈리아 함정의 지원이 가능한 상태다.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15일 독일 공영방송 ARD와 인터뷰에서 아스피데스 임무가 현재도 효과적이지 못하다면서 "아스피데스 임무를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장하는 것이 안보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매우 회의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통신은 "외교관과 관계자들은 EU가 이러한 계획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말했다"며 아스피데스의 임무 변경은 EU 27개 회원국 모두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데, 한 EU 외교관이 "현재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을 보호하는 것은 각국 장관들이 가볍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면서 EU 내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도 아닌 중국에도 호르무즈 해협 선박 호위를 요구하는 다소 기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하기 때문에 중국도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 전에 중국의 입장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문 일정을 연기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던 지난 2월 28일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운송된 1000만 배럴이 넘는 원유가 중국을 향했다는 점, 또 이란 고위 관계자가 CNN에 특정 선박의 해상 통제 완화를 위해 중국 화폐인 위안화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중국이 미국의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군함 파견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른 형태의 지원이라도 받아내기 위해 동맹국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지원 내용에 대해 기뢰 제거함과 드론 및 해상 기뢰에 대응할 수 있는 기타 군사 자산이 포함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신문에 "우리는 그들(이란)을 매우 강하게 공격하고 있다"며 "해협에서 약간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 외에 남은 것이 없다"고 말해 사실상 이란을 초토화시켰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관리들을 인용해 미 정부가 이번주 내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호송할 연합군 구성에 여러 국가가 합의했다는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과 잠재적 연합국은 이같은 작전이 전쟁 종식 전후 중 언제 시작될지에 대해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백악관은 전장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이번 발표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라며 "많은 국가들은 이란이 해협에 기뢰를 매설하는 등의 위험을 고려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러한 호송 임무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백악관이 이러한 '연합'을 발표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부가 직면한 딜레마를 보여준다"라며 "휘발유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번 군사 작전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번 군사 작전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다른 정권 핵심 인사들이 사망했으며, 지금까지 6000개가 넘는 이란의 목표물이 타격을 받았다"며 "그러나 중동의 불안정 심화, 세계 에너지 위기, 그리고 국내 정치적 파장 등 전략적 문제들이 폭격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짚었다.
신문은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15일 기준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3.70달러로, 한 달 전 2.93달러에서 26% 상승했다. 디젤 가격은 같은 기간 36% 올라 3.66달러에서 4.97달러가 되었다"라며 유가 상승을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을 압박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이란이 협상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을 조급하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15일 미 방송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우리는 휴전을 요구한 적도 없고, 협상을 요구한 적도 없다. 우리는 필요한 만큼 스스로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우리는 미국인들과 대화해야 할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정부가 군함 파견과 관련해 한국에 공식 요청은 아직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 요청에 해당하는 조치가 있었냐는 질문에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미 국방장관 간 통화 계획에 대해 정 대변인은 "현재까지 결정된 것이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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