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산시장이 빚을 끌어온 공격적 투자로 불붙고 있지만, 경제의 근본 체질을 나타내는 실물 경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무너지고 있다. 일본식 장기 불황의 초입에 한국이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실제 최근 한국 자산시장의 과열과 실물 경제의 대비는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직전 상황을 여러모로 떠올리게끔 한다.
부실화하는 가계…소비 실종이 내수 붕괴로
한국 경제 체력이 급격히 약화했음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는 가계 부실이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이어진 가계의 '영끌' 부동산 투자로 인해 가계부채비율이 극도로 나빠졌다.
지난 16일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88.6%로 집계됐다. 전분기 말에 비해서는 0.8%포인트 하락했으나 이는 명목GDP가 직전해의 바닥을 딛고 급격히 상승한 데다, 인플레이션이 반영된 결과다. 가계부채 총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잠정치)은 1978조8000억 원으로 2024년 말에 비해 56조1000억 원(2.9%) 늘어나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같은 증가폭은 2021년(132조 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빚투'와 '영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가계빚이 2000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다. 전세보증금까지 더할 경우 한국 가계의 실질 빚 규모는 3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거대한 가계부채는 내수 소비를 짓누르는 가장 큰 요인이다. 가계 자산 70% 가까이가 부동산에 묶여, 가계의 소비여력이 극도로 나빠졌다. 월소득이 높은 가계도 아파트 빚을 갚는데 대부분 소득을 사용하다보니 정부가 각종 내수 진작 정책을 펴도 내수가 살아날 수 없는 구조다.
그 여파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하다는 자영업자 몰락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는 100만8282명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다. 23일 한국신용데이터(KCD)의 '2026년 1분기 소상공인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개인사업자의 연체 금액은 총 14조6000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1조6000억 원(12.6%) 급증했다. 빚을 진 개인사업자 중 50만1000개(13.9%)는 이미 폐업했다. 자영업자 100만 명 몰락 시대가 가계빚 증가와 얽히면서 실물 경제 3대 축(가계, 기업, 정부)의 하나인 가계가 완전히 부러진 모습이다.
한국 가계의 위기대응 능력은 일본 경제가 버블 정점기를 지날 때보다도 나쁘다. 일본의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1990년~91년 시기 일본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약 70% 수준이었다. 90%에 육박하는 한국 가계의 기초체력이 더 부실하다.
일본 경제는 거품이 꺼진 후에도 상대적으로 저축률이 높았던 가계가 30년에 걸쳐 내수 소비를 지탱할 수 있었으나, 한국에서 일본과 같은 파열음이 일어난다면 당장 가계가 정부의 인공호흡을 받아야 할 판국이다.
가계와 기업의 빚잔치, 커지는 신용위기에 정부의 선택은 '좀비 살리기'
기업 부문도 망가지고 있다. 일단 GDP 대비 기업부채비율 역시 100%를 오르내리면서 가계와 기업을 합산한 GDP 대비 민간부채비율은 2023년 기준 207.4%에 이르렀다. 이는 1990년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 같은 비율(208%)과 똑같은 수준이다. 가계와 기업의 빚잔치가 이제 한계에 달했다.
한국 기업 부문은 이미 새마을금고 사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채권 위기를 거치면서 신용 위기를 겪고 있다. 그간 내수 경기를 떠받치던 건설업 부문에서는 부동산 PF 익스포저가 200조 원을 오르내리는 수준(2024년 말 202조 원, 2025년 말 기준 174조 원)이다. 정부는 진보와 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위기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만기 연장이라는 '언 발에 오줌누기' 즉효약만을 사용하면서 위기 관리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체력이 '좀비기업 살리기'에 집중하면, 그 여파로 미래산업을 위한 정부 주도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부동산 발 위기가 건설업-금융권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 미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꼴이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발표한 '2025년 기업경영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 기업 3만4456곳 중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이 39.9%에 달했다. 이는 전년보다 1.4%포인트 늘어난 수치며,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3년 이후 최고치였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을 대출 이자로 나눈 값이다. 이 비율이 100%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대출 이자 갚는데 쓰는 데도 모자랐다는 뜻이다. 즉, 한국의 외부감사 대상 기업 10곳 중 4곳이 '좀비'라는 소리다.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기업 부문 고장은 이미 중소기업 부문에서 점차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다. 24일 한은이 공개한 '2026년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 규모는 올해 3월 말 기준 17조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58.9%였다.
이는 과거 부실 대출 규모가 최대였던 2016년 3월 말(32.2%)에 비해 크게 상승한 결과다.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유동성 위기에 이른 중소기업이 크게 증가했다.
하도급 체계 특성상 위기가 주로 중소기업에 전가되고 있으나, 이 불길이 대기업 부문으로 옮겨 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그룹의 신용 위기, 수년간 계속된 롯데건설 위기설은 한국 기업 부문 위험이 심상치 않음을 나타내는 지표다. 기업의 신용 위기는 곧바로 부동산-금융권으로 전방위 확산하게 된다.
경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경제 활력을 올리려면 이같은 좀비기업 쳐내기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경제 위기를 두려워해 이들을 억지로 연명하면 경제 활력은 더 떨어지게 된다. 정확히 현재 한국 정부의 경로고, 과거 일본이 금융권 부실을 은폐하려다 경제 장기 침체를 불러온 길이다.
이미 일본의 길에 들어섰나
한국 경제는 오히려 과거 일본보다 거시 지표에서는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가장 먼저 꼽을 요인이 인구 절벽이다.
'잃어버린 30년'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1990년 당시 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57명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이 수치를 보고 당시 일본 언론은 '1.57 쇼크'를 말했다. 자산시장 거품이 커지면서 부동산 격차 사회가 만들어지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한국은 당시 일본조차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위기에 이미 빠졌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0명으로 90년 일본의 반토막 수준이다. 20년 후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면 경제활동인구가 극도로 줄어들어 생산 활동 붕괴-세수 붕괴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자산시장에서는 부동산 시장을 떠받쳐줄 새로운 인구 유입이 마르고, 경제 활동 부문에서 활력이 떨어지며, 엘리트 인구 감소가 나타나게 된다. 한국은 일본이 이미 보여준, 가서는 안 되는 길을 뻔히 보고도 똑같은 경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자산 격차가 커지자 한국의 청년세대는 희망을 잃어버렸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진 폐허에서 비명을 지르는 청년 세대를 뒤로 밀어내고, 부동산 거품과 주식 '벼락 부자'를 찬양하는 목소리만이 넘쳐나고 있다. 일본에서 실물 경제가 본격적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한 건 거품이 꺼진 후였으나, 한국은 이미 실물 경제 부문이 무너지는 가운데 자산 거품만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일본의 길을 뻔히 보고도 한국 정부가 일본과 똑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는 데 있다. 거품을 꺼뜨리고, 가계부채 규모를 줄여 가계의 소비 여력을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내수가 활성화하고, 이에 따라 창업과 취업, 자영업 부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동성 공급을 끊고, 고통스러운 '빚잔치의 후과'를 견뎌내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표를 먹고 사는 민주주의 정부 특성상,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이같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는 못한다. 멀게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일어난 거대한 거품이 꺼지려 하자 뒤를 이은 이명박근혜 정부가 '빚 내서 집 사라'고 국민을 앞장서서 선동한 경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제로 금리 수준에서 대규모 유동성이 시중에 풀렸다. 그 유동성의 힘이 2021년 부동산 폭등이라는 후폭풍으로 돌아왔다.
이후 세계 주요 정부가 거품 꺼뜨리기에 나선 것과 달리, 뒤를 이은 윤석열 정부는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할 경제 부문 구조조정 후폭풍을 두려워해 역시 특례보금자리론을 위시한 각종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시장의 거품을 더 키우는 쪽을 택했다. 그 여파가 현재 이재명 정부 들어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지금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고(高)' 먹구름까지 한국 경제를 위에서 짓누르고 있다. 한국 경제를 두고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서늘한 단어가 조금씩 자주 인용되는 형국이다.
일단 긍정적인 면은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4년 부동산PF 사업성 평가기준을 개선했다. 기존 느슨했던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 평가 체계를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전면 개편해 하위 2개 등급(C, D등급)을 받은 사업장은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고 강제 조치하겠다는 게 골자다. 올 5월 말부터 PF 사업성 평가 기준 적용이 의무화됐다.
C등급을 받은 사업장의 경우 금융회사가 자율 매각이나 펀드를 통한 재구조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D등급(부실우려)이 내려지면 금융회사가 6개월 이내에 해당 사업장을 경·공매로 넘겨 강제 처분해야 한다. 대출금 상당 부분 손실을 보더라도 부실을 털어내라는 소리다.
그간 만기 연장으로 부실을 가리기만 해 왔던 PF 위기의 구조조정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경·공매로 사업장이 대거 나오면 이는 자산시장 거품을 꺼뜨리는 연쇄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부동산 시장 거품을 꺼뜨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실제 당초 당국은 부실 사업장 규모를 4~7조 원 규모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익스포저가 전체 PF의 10%를 넘어서는 20조 원 대에 달한 것으로 평가됐다. 악성인 D등급 사업장만 13조5000억 원 규모에 달했다. 이 부문에서 '폭탄'이 터진다면 위기는 곧바로 2금융권 전체로 전이돼 금융 안정을 뒤흔들 수 있다.
이같은 부작용을 정부가 견디기란 쉽지 않다. 당장 가계자산의 70%가 부동산에 묶인 상황에서 집값 조정은 당장 가계의 소비여력을 더 떨어뜨린다. 장기적으로 보면 집값이 조정되고 가계의 부채 부담이 줄어들어야 소비가 살아나지만, 당장의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정부가 전세대출을 옥죄자 전월세가 급등해 오히려 서민가계가 당장 고통을 겪는 상황과 같다. 지지율이 중요한 민주주의 정부에서 이런 당장의 부작용을 견디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구조조정은 모범답안이다. 그럼에도 모범답안을 고르지 못하는 게 정부의 딜레마다. 거품 꺼뜨리기는 무조건 '정권이 날아갈 위기'로 돌아온다. 당장의 고통을 피하려 정부가 거품 꺼뜨리기를 피한다면, 거품 폭탄은 점차 더 커질 뿐이다. 결국 우리가 보는 미래는 '구조조정은 안 되고, 거대한 가계빚으로 인해 내수도 살아나지 못하고, 인구 절벽으로 인해 미래 생산인구와 소비 인구도 끝을 보이면서, 마치 늪에 빠진 듯 길게 침체만 이어지는 L자형 침묵의 시대'다. 일본이 거품 붕괴 후 30년간 걸어온 길이다. 우리는 이미 그 길에 들어섰을 지도 모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