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내 자식. 불쌍하다, 너무 불쌍하다."
"정정아, 엄마가 꽃밖에 못 들고 왔어. 미안해."
"아들, 며느리를 다 잃었어요. 내가 왜 아직 살아있는지 모르겠어요."
- 아리셀 참사 유족들
24일 오전 11시 경기 화성시 전곡산업단지 아리셀 공장 인근에서 열린 '아리셀 참사 2주기 현장 추모제' 현장에선 행사 내내 유족들의 오열과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추모제는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주최로 공장 바로 옆 차도에서 열렸다. 청주, 울산, 시흥 등 전국 각지에서 온 20여 명의 아리셀 참사 유족이 참여했다. 4.16 세월호 참사 및 10.29 이태원 참사 유족, 산재피해자네트워크 다시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한익스프레스 참사 유족 등 다른 산재·참사 유족과 시민 150여 명도 함께였다.
불에 탄 아리셀 공장은 지붕에 안전 구조물만 설치된 채 폐허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건물엔 '위험. 절대 출입 금지' 등의 팻말이 걸렸다. 무대 바로 앞엔 이재명 대통령과 화성특례시장, 4·16재단에서 보낸 화환 세 개가 차례로 놓였다.
추모제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3대 종단의 기도회로 시작됐다. 류순권 목사는 추모 기도 중 '창세기 4장 10절'의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를 여러 번 읊었다. 그러면서 "아리셀 노동자들은 어디에 있느냐? 왜 그들의 생명은 허망히 쓰러져야 했나? 그들의 핏소리와 가족들의 한 맺힌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라 물으며 "이게 우리에게 던져진 하나님의 물음"이라고 기도했다.
이어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 5명이 무대에 올라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기도 전 시경 스님은 "사법부는 각성해야 한다"고 크게 외쳤다. 이어 "사법부가 사용자의 대변자로 전락하는 건 민주주의의 비참한 현실"이라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당신 자식이어도 그리했겠느냐!"고 소리쳤다. 지난 4월 박순관 아리셀 대표 등의 징역형을 대폭 감형한 2심 재판부를 향한 말이었다.
추모 기도가 이어진 15분 동안 무대 바로 앞 유족석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한 유족은 15분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고, 또 다른 유족은 영정을 앞에 들고 눈을 계속 뜨지 못한 채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추모 발언에 나선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노동자의 죽음 후에만 관심이 일시적으로 집중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이주노동자 생명의 가치는 국적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자가 출근한 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게 당연한 사회, 국적과 고용형태에 따라 생명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1999년 화성시에서 발생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의 유족 이상학 씨도 무대에 올라 "화성에서 더 이상 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며 운을 뗐다. 이 씨는 "정부도, 특히 화성시도 바뀌어야 한다"며 "얼마 전 지방선거에 나온 모든 사람이 시민을 위해 공원을 짓거나 체육관 같은 걸 짓겠다고만 하는데, 이런 게 아니라 시민들이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게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의 어머니 장연미 씨는 "영정 사진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겠다"며 눈물을 흘렸고 한동안 발언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장 씨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폭발할 수도 있는 배터리를 만들면서, 소방시설, 화재훈련 등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사람 목숨은 안중에도 없었던 박순관은 살인마가 아니냐"라며 "23명을 죽인 사람을 이렇게 용서해 주는 사법부를 이제 누가 믿을 수 있나. 힘없고 빽없는 노동자 유족들은 언제까지 이리 당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장 씨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 맞는지 모르겠다. 경제성장만 하면 뭐 하느냐"면서 "그래도 회사가 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건,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작은 힘이 됐는데, 아리셀 가족들에게도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에게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며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버리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옆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 내 새끼, 내 부인, 내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자"고 연대 인사를 건넸다.
김진희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은 "회복은 단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필요한 것들이 해소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는 3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사 초기 찾지 못한 유해를 온전히 찾는 것, 사법부가 박순관·박중언 등 주요 피고인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거두고 이들의 중대재해처벌법 위헌 소송 청구를 반드시 기각하는 것, 국회·정부가 2년째 제자리걸음인 '아리셀 재발 방지법'을 신속히 입법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민주노총 경기본부도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아리셀 재발 방지법은 외국인 노동자 안전교육 의무화를 담은 외국인고용법 개정안, 배터리 제조·보관시설 전용 소화기 설치 의무화를 담은 소방시설법 개정안 등을 뜻한다.
제사상 위 프링글스·젤리…"유해 수습 부디 도와달라"
추모제가 끝나기 전 유족들은 무대에 올라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순희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발언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이 대표는 "돈 있는 사람은 법도 무시하고 살 수 있는데, 피해자들은 이리 맨날 울며 땡볕에 다니고, 소리치며 다녀야 하느냐"며 "저희 유해 수습이 끝날 때까지 도와달라. 염치없지만, 저희 힘만으론 진짜 뭐 하나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국땅에서 일하다 죽었는데, (딸의) 손톱 하나라도 찾아서 편안히 보내고 싶다"며 "도와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참사로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고 이준봉 씨의 아버지 이병렬 씨는 목이 잠긴 목소리로 "내가 이리도 복이 없는 사람이다. 어째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진심으로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인사를 마친 이들은 곧장 아리셀 공장 내로 국화꽃을 들고 진입했다. 유족은 이날 참사 2주기에 맞춰 공장에 진입을 요구했고, 공장 측은 화재가 난 공장 입구 앞까지만 진입을 허용했다.
이들은 폐허가 된 채로 열려 있는 1층 출입구 앞에 간이 제사상을 차리고 음식을 올렸다. 사과, 참외, 체리뿐 아니라, 떡과 프링글스, 포도 맛 젤리, 삶은 달걀, 음료수 등도 올렸다. 유족 각자가 고인들이 평소 좋아했던 음식을 챙겨왔다.
서너 명씩 줄을 서 추모 묵념을 올리던 이들은 숨죽여 울거나 오열했다. "불쌍한 내 새끼" "미안하다" "아이고"등의 탄식이 연신 터져 나왔다.
제사를 마친 이들은 아리셀 공장 입구에 '아리셀 참사'를 상징하는 푸른색 리본 상징물을 붙였다. 유족 여국화 씨는 "저 공장에 소중한 가족들, 분신들이 남아 있다"며 "건물은 (붕괴 등으로) 위험하다. 하루빨리 찾아서 우리 손으로 온전히 보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전체댓글 0